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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마 Feb 14. 2024

어제 꾼 꿈.

발바닥 사진 세 장.



검은색 정장을 빼입은 삼성 투수 장원삼이 자기 일이 끝나면 사람들 몰래 나를 데리러 온다고 했다. (나를 데리러 올 때 장원삼이 타고 올 차는 검은색 제네시스 G80이었다) 생각보다 키가 크고 사투리가 부드러운 아저씨였는데, 미안하다는 듯이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투로 말했다.  나는 나를 숨기는 걸 정말 싫어하기 때문에 꿈속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장원삼은 그렇게 어디론가 훌쩍 가버렸다.


시계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이제와 추측하건대 그때는 밤 9시쯤이었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주위가 온통 새까맸고 어둠 속 켜진 성냥처럼 주황색 가로등 불빛만 몇 개 밝혀져 있었다. 처음엔 여기가 어딘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나는 우리 집 앞에서 장원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 사람이라고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도 불지 않고 개미새끼 하나 기어가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고요했다. 꿈 속에서 나는 옷을 얇게 입었는데도 추위가 느껴지지 않아 그대로 잠깐동안 서있었다. 꿈에서의 시간은 이상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내가 잠깐 멍하니 서있는 이 순간이 찰나가 아니게 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꿈이 꿈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질 때쯤 누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아끌었다. J였다.


그다음 시점은 J의 집이었다. (실제로는 예전에 가봤던 K의 집이었다.) 순식간에 집 안에 들어와 있었는데 그곳엔 나와 J, 둘 뿐이었다. J의 집은 짙은 청록색 벽지로 온통 도배되어 있었다. 헤어질 결심 속 서래의 집 같았다. 사실 그것보다는 좀 더 어두웠다. 햇빛을 받고 있는 까마귀의 깃털에서 언뜻 스쳐보이는 어둡고 푸른빛과, 가끔 가다 산속에서 만날 법한 풍뎅이의 반짝거리는 짙은 초록색 빛. 그런 종류의 색으로 집 안이 가득 차 있었다.


벽지가 어두워서인지 집 안이 밝지 않았다. 집이 참 어둡다 생각하면서 고개를 젖혀 위를 올려다봤더니 천장에 형광등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암흑은 아니었다. 조도가 낮은 주황색의 조명만 눈이 닿지 않는 곳에 몇 개 켜져 있었던 것 같다. 희미한 불빛은 느껴졌지만 끝까지 조명을 찾을 수는 없었다.


곧이어 나는 J의 침대에 엎드려 누워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꿈인 것을 자각했지만 그 이상으로 통제력을 발휘해 꿈을 장악하거나 하진 못했다. 꿈인 것도 금방 까먹고 계속 이야기가 진행됐다)


엎드려 누워있는 나에게 J가 조용히 다가왔다. 특유의 무심한 듯 흥미로운 목소리로 나에게 “피곤해? “라고 물으면서 본인의 침대 밑 바닥, 그러니까 내 발치에 앉았다. J는 움직일 때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만큼 동작이 부드러웠다. 나는 무어라고 대답했으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꿈속에서마저 센 척을 하느라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J는 나의 대답을 듣고(아마도) 바닥에 그대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잠시 후 J는 천천히 일어나 내 옆에 걸터앉더니 자신의 검지손가락으로 내 눈썹을 결대로 천천히 몇 번 쓸어내렸다. (남의 눈썹을 만지는 건 내가 종종 하는 습관인데 J가 꿈속에서 하고 있었다) 그다음엔 내 발을 좀 주물러 주고 나의 맨발바닥 사진을 몇 장 찍어갔다. (나는 평소에 남에게 발을 보여주기를 무척 싫어하기 때문에 이 순간 다시 꿈인 것을 알았다. 양말은 대체 언제 벗었는지, 그때까지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이폰으로 라이브 포토를 찍을 때 나는 「띠룽?」 소리 말고, 일반 사진을 찍을 때 나는 「찰칵-」 소리가 정확히 세 번 났다. 맨발바닥 사진이 세 장이나 찍혔는데도 나는 아무런 의문을 가지지 않고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엎드린 채로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렸는데 바닥에 가로 이미터 세로 오십 센티 정도 되는, 코너가 둥글러 진 직사각형의 나무 책꽂이가 보였다. 언뜻 봐서 나무의 재질이 아주 싸구려는 아니었고 적당히 고급진 어두운 색의 나무로 만들어진 듯 보였다. 반질반질한 책꽂이에는 다양한 책들이 의외로 질서 없이 꽂혀있었다. 그 집의 어두운 청록색 벽지와 대조되어 책들의 색깔이 정말 알록달록 했다.


나는 엎드린 자세로 J가 요즘은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했다. 침대와 책꽂이는 그리 멀지 않은 위치였기 때문에 책의 제목이 읽혀야 했는데 꿈이라 그런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흐리멍텅한 초점을 가지고 그 책들의 제목을 읽으려 부단히 노력하다가 잠에서 깼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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