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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마 May 15. 2024

싯다르타

그는 불안감, 그러니까 주사위 노름을 하는 동안, 그리고 막대한 판돈 때문에 걱정하는 동안 가슴을 죄는 듯한 두 려운 불안감, 바로 그 불안감을 사랑하였으며, 그는 언제 나 그 불안감을 새롭게 살려 내려고 하였으며, 언제나 그 불안감을 고조시키려고 하였으며, 그 불안감이 주는 자 극을 점점 더 높이려고 하였다. 왜냐하면 지겨울 정도로 물려 버린 미지근하고 맥 빠진 자신의 삶에서 그러한 감 정 속에라도 빠져야만 그나마 자신이 행복 같은 어떤 것, 도취 같은 어떤 것, 고양된 삶 같은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싯다르타는 내면의 아트만 (참된 자아, 영혼)의 존재를 어렴풋이 깨닫고 난 뒤, 자아를 비워내고 그 너머에 있는 진실, 무언가를 찾고자 했다. 그리고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어린 아이나 짐승에 빗대어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카말라를 만나 세속에 물든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싯다르타처럼 힘든 사문의 길을 걷고 자아를 비워내 참된 나에 도달하려 노력한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주위 사람들이 사회생활이랍시고 아첨하고 상대방에 설설 기는 모습이나 그런 종류의 모든 행위들이 웃겼다. 그래서 나는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솔직한 내가 되고 싶었는데 정작 그렇지 못했다.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점이 나를 불안하게 했고, 내가 추구하고 있는 모습도 결국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차이가 없는 하나의 행동이었겠구나 하는 지점에서 오만했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마음이 불안과 초조함이라는 감정으로, '좋은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불쑥 찾아왔었다.


  얼마 전에 제주를 다녀왔다고 적었다. 이 책 속의 '불안감을 새롭게 살려내려고 하였다'는 말이 내가 이유 없이 제주로 갑자기 떠났던 것과, 일전의 즉흥적인 선택과 행동들에 대한 해답처럼 느껴졌다. 그런 선택 속에서 나는 '갑자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도취되고, 즉흥적인 선택이 가져오는 일에서의 일차원적인 행복감과 해방감을 느꼈었다. 그리고 '나는 너네랑 달라!' 하는 멍청한 생각도 함께.


  싯다르타는 사문으로서의 수행과, 그 반대인 세속을 모두 경험한 후에 자신이 '바람에 나부끼다 땅에 떨어지는 나뭇잎 같은 존재, 어린애 같은 인간'이라고 말하던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허영심, 탐욕, 맹목적인 사랑, 열망, 자부심, 유치한 행동들이 더 이상 어린애 같다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들이 사람들을 살아가게끔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방금 <싯다르타>를 다 읽고 다른 사람과 똑같은 하나의 인간인 사실을 어제보다 조금 더 받아들인 나도,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보자고 마음먹었고, 건방지게 혼자만의 생각으로 다른 사람과 나를 다르다고 나누지 않기로 했다.

"당신의 내면에는 당신이 매 순간마다 그 속에 파고들어 가 편안하게 안주할 수 있는 그런 고요한 은신처가 하나 있어,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야, 그런 은신처를 갖고 있는 사람은 얼마 안 되지,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런 은신처를 갖고 있는지도 몰라"


  내가 온라인상 많은 곳에서의 닉네임(지금 일하는 곳에서 불리는 닉네임도 GOYO이다)을 '고요'라고 사용하는데 그 이유가 이것과 비슷하다. 고요라는 단어가 주는 조용함과 차분함이 싯다르타가 말한 내면의 은신처, 나의 버전이었다. 때로는 고요하게 생각하고, 살피고, 읽고, 배우려는 나의 모습이 은신처였다. 나의 모습에 지칠 때 들어가 다시 재정비하고 나오는 곳.


  '자기 색이 드러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라는 고 민은 아직도 매일 하고 있다. 제주에서 글쓰기를 통해 나를 알아가자고 마음먹었던 순간처럼, 싯다르타가 말한 고요한 은신처에서 더욱 나만의 색을 고집하고,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서로의 은신처를 내비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네들의 은신처도 구경하며 알아가고 싶다. 그러기 전에 싯다르타를 읽기 전의 우매한 나로 돌아가지는 않아야 할 테지만.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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