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시간 속에 피어난 꿈
이 글은 오래 전, 두 딸의 손을 잡고 주말마다 박물관 문턱을 넘나들던 한 워킹맘의 회고록입니다. 아이들이 역사의 흔적 속에서 미래의 꿈을 찾아 헤매던 시간, 저는 박물관의 고요한 벤치에 앉아 저만의 꿈을 향한 책장을 넘기곤 했습니다. 이것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은 이야기가 아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새로운 나를 피워낸 사랑과 성장의 기록입니다.
몇 년 동안 저의 주말은 두 딸과 함께 박물관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되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아이들이 3개월에서 6개월 과정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관련 봉사활동을 하며 자신만의 역사를 쌓아가는 동안, 제게는 텅 빈 기다림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워킹맘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란 얼마나 귀하고 또 막막한지요. 그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흘려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 시간을 나를 위해 써보는 건 어떨까?' 아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몰두하는 저 시간이야말로, 엄마인 저 역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최적의 순간이 아닐까 하고요.
그렇게 저는 한양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원서를 냈습니다.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하는 공부를 남편은 누구보다 격려해 주었습니다. 안방 한쪽에 저만의 작은 책상과 노트북을 마련해 주던 그의 따뜻한 미소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의 시간과 저의 시간이 '박물관'이라는 아름다운 공간에서 비로소 만나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저에게 박물관은 영감을 주는 캠퍼스였고, 집은 가장 든든한 도서관이었습니다. 고대 유물 옆 벤치에 앉아 온라인 강의를 듣고, 카페테리아에 앉아 리포트를 작성하며 배움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아이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에 상담 심리학을 복수전공으로 선택하며, 저의 공부는 더욱 깊어져 갔습니다.
물론, 공부의 과정이 언제나 낭만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다가올 때면 심장이 쫄깃해지는 순간들이 많았죠. 사이버대학교의 시험은 정해진 시간에 집에서 온라인으로 치러야 했는데, 주말마다 아이들 체험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이 시험 시작 시간과 빠듯하게 맞물릴 때가 많았습니다.
차가 막히는 도로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집에 도착하면, 남편은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 두고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트북은 켜져 있었고, 책상은 단정했으며, 혹여나 배고플까 작은 간식까지 놓여 있었죠. 남편 덕분에 저는 옷만 갈아입고 바로 시험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고요하고 완벽한 준비 속에서 저는 혼자가 아님을 느꼈습니다.
시험이 시작되면 온 집안에는 평소 조금은 크게 들리던 TV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이 흘렀습니다. 행여나 제가 방해받을까 봐, 방문 밖에서 아이들과 남편이 소곤소곤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어요. 솔직히 그 작은 소리가 오히려 신경 쓰여 웃음이 날 때도 있었지만, 그 소리마저도 저를 향한 가족들의 따뜻한 응원가처럼 들렸습니다. 그 사랑스러운 배려가 느껴져 코끝이 찡해지곤 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공부는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닌, 우리 가족 모두의 프로젝트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치열함과 따스함의 끝에서, 저는 '조기졸업'이라는 값진 선물을 받았습니다. 사이버대학교는 입학생은 많아도 졸업생은 적다는 통념을 깨고, 사회복지학사와 문학사(상담심리학 전공)라는 두 개의 학위를 품에 안았습니다. 제 자신에게 너무나 뿌듯했고, 묵묵히 저의 도전을 응원해 준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저의 공부가 저만의 만족으로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상담 심리를 배우고 나니, 아이들을 바라보는 제 시선과 언어가 달라졌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이들이 먼저 그 변화를 알아채주었습니다. "엄마, 요즘 우리를 더 잘 이해해 주는 것 같아요." 그 한마디가 제 모든 노력을 보상해 주는 듯했습니다.
저의 도전은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씨앗을 심어주었습니다. 수많은 주말을 박물관에서 보낸 큰아이는 자연스럽게 사학도의 꿈을 키우게 되었고, 다양한 경험을 쌓은 막내는 러시아 문화 탐방이라는 멋진 기회를 잡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아이의 꿈을 찾아주기 위해 시작한 주말 여정이, 역설적으로 엄마 자신의 성장을 통해 아이들의 꿈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준 셈입니다.
어느 늦은 밤, 제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보던 큰아이가 제게 건넸던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엄마는 회사도 다니고, 살림도 하고, 공부까지 하는데… 나는 공부만 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한 것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던 가장 큰 가르침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하는 '엄마의 뒷모습'이었다는 것을요.
주말의 자투리 시간을 모아 이뤄낸 저의 작은 성취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작은 불씨 하나를 피울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당신의 잠자는 시간,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시간 속에, 어떤 아름다운 꿈이 숨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