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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군고구마 Nov 09. 2023

오타쿠의 일본취업 1

슬럼프에 빠진 오타쿠의 일본취업

만화방에서 일본까지


어쩌다 일본에 취업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나의 추억들 중 가장 행복하고 걱정 없던 시절의 만화방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나는 10살 때부터 우리 동네에 있는 작은 만화방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 시절, 만화책 한 권의 대여비는 200원이었다. 하루 1000원이던 작고 소중한 용돈을 꾸깃꾸깃 주머니에서 꺼내 나는 꼭 5권을 빌려서 집으로 돌아갔다. 뜨뜻한 보일러 바닥에 배를 대고 누운 채 오른손으로는 만화책을 왼손으로는 귤을 쥐고 해가 서쪽으로 달려가는 동안 만화책 속 세상에 푹 빠져 있었다. 아니, 푹 빠지다 못해 책 속으로 아주 들어갈뻔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16살이 되던 해에 매일 가던 만화방이 없어졌다. 뭔가 내 안의 큰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한 기분이 들었고 다른 만화방을 찾아가 봐도 원래 가던 곳만큼 애착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만화책과 멀어져 가던 어느 날, 내가 좋아했던 만화책들의 제목을 인터넷에 쳐보자, "어라? 애니메이션도 있잖아! 이제 만화방에 안 가도 만화를 볼 수 있어!" 하며 유레카를 외쳤고 이 기념적인 유레카의 날을 시작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살았던 것 같다. 방학중에는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집에서 12시간이 넘도록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자막이 없어도 일본어를 듣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또 어느 순간부터는 야매이긴 하지만 기본적인 회화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애니메이션 사랑은 16살 때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애니메이션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일본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러다 수능을 마치고 그저 수능 등급에 맞춰 넣었던 학교의 인문문화학부에 합격하게 되었다. 인문문화학부에는 일어일문학과, 국어국문학과, 사학과가 있었고 그중에서 전공을 하나 골라야만 했었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배워 야매 일본어는 조금 할 수 있었지만 이때 처음으로 "이참에 한번 제대로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일어일문학과를 선택했다.


자칭 타칭 오타쿠의 어린 시절 방 (저 맥주캔 같은 것은 저금통이다)


오타쿠 경력 덕분에 일본어 듣기는 조금 자신 있었지만, 읽기와 쓰기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어 자신이 없었다. 좀 더 멋진(?) 오타쿠가 되기 위해 나는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부터 차근차근 열심히 공부하였고 대학교 3학년때는 JLPT 2급에 합격하여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갈 수 있었다. 일본 현지에서 열심히 일본인 친구도 사귀고 일본어로 된 학교수업도 조금씩 적응해 나가며 열심히 공부했고 마침내 JLPT 1급에 합격하였다. 교환학생을 갔던 경험은 언어뿐만 아니라 자립심과 도전정신 등 나를 내적으로도 더욱 성장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교환학생에서 돌아온 뒤 나는 슬럼프에 빠졌다. 지금까지는 JLPT 1급을 목표로 열심히 달려왔는데 막상 합격하고 나니 다음 목표가 사라져 상실감과 공허함에 빠지게 되었다. 일본어 자격증 중 제일 높은 JLPT 1급에 합격했지만 나 자신의 일본어 실력을 스스로 평가해 봤을 때 나는 아직 일본어를 잘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상실감과 공허함은 학교 공부와 JLPT공부로는 더 이상 채워지지 않았다. 일본어 공부는 JLPT 1급에 합격하고 나서부터가 진짜 시작인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자신 있게 잘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일본어실력을 키울 수 있을까 하며 매일 고민했다. 그렇게 계속된 슬럼프로 방황하던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우연히 부산에 일본 취업 박람회가 열린다는 공지를 보았고 꼭 가야만 할 것 같은 느낌에 사로 잡혀 홀린 듯이 이력서 작성과 면접 준비를 시작했다. 한국 취업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는데 하물며 일본 취업이라니 내가 봐도 꽤나 무모한 도전이었다. IT에 관해서는 1도 모르지만 한번 배워두면 나중에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해 연봉과 복지가 괜찮은 IT회사 두 곳을 정해 자소서를 준비하였다. 기교도 없고 화려하지도 않은 자소서였지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불합격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불합격도 받아들인다고 해놓고서는 지원한 회사 두 곳에 모두 합격했다는 결과를 받고 너무 기뻐서 침대 위를 콩콩 뛰다 바닥에 굴러 떨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면접날이 다가왔다. 인생 첫 면접, 하물며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진행되는 면접은 아직 까지도 내 인생에서 가장 떨린 경험이었다. 하체는 분당 1000번을 떨고 있었고 상체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자신 있는 척 할 수 있는 온갖 척을 다하며 면접을 보았다. 그렇게 최종 면접까지 합격해 버렸다(?)


일본식 면접복장인 검정 머리와 검정 정장 그리고 면접 후에 완전 뻗어버린 나


나는 사실 늘 마음대로 일을 저질러 놓고 나중에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당연히 부모님께도 취업준비 하는 것을 말하지 않았고, 덜컥 일본에 있는 회사에 합격해서 이제 일본에 가야 한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전했다. 외국으로 당분간 떠나 있어야 한다는 것은 꽤나 큰 소식이기에 미리 마음속으로 부모님께 혼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과 다르게 부모님은 "네가 결정한 거니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라며 갈 준비 잘하고 가기 전에 친구들이랑도 인사 잘하고 떠나라며 오히려 따뜻한 대답을 해주셨다.


만화책도 책이니까 읽어두면 뭐든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하루종일 만화책을 봐도 혼 한번 내지 않으셨고, 애니메이션을 하루종일 봐도 혼 한번 내지 않으셨던 부모님 덕분에 일본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일어일문학과를 전공하고 일본 취업까지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새로운 도전과 더 큰 배움들이 기다리고 있는 일본 취업을 앞두고 문득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슬럼프가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처음 도전해 본 일본 취업에 성공해서일까? 아니면 새로운 목표가 생겨서일까?


지금생각해 보면, 슬럼프에 빠져도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으려 해서 그랬던 것 같다. 슬럼프는 어쩌면 더 큰 성장을 위한 성장통이지 않을까. 슬럼프에 걸린 나도 소중한 나이기에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나를 놓지 않고 그냥 똑같이 대하면 슬럼프는 나도 모르게 사라진다. 매운맛은 통각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통각임을 망각하고 매운 음식을 즐긴다. 자주 많이 먹을수록 매운맛에 중독되고 강해져서 더 매운맛을 찾게 된다. 슬럼프도 자주 오면 점점 이겨내는 노하우가 생겨 오히려 좋을지도 모른다. 슬럼프가 끝난 뒤엔 항상 성장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러니 슬럼프를 망각하자! 앞으로 몇 번 더 성장할 수 있을까 하며. 슬럼프야 또 와봐라 내가 매콤한 맛을 보여주마.


그렇게 일본 도쿄에서의 첫 사회생활 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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