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 잡는 통역
의도와 달리 오해를 낳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자주 들어본 말이다. 구설수에 오른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입에서 종종 나오기도 하는 말이다. 간혹 상황을 모면하려는 그럴듯한 변명으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의도와 다르게’ 메시지가 전달 과정에서 곡해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언어를 써 말이 통하지 않는 것도 아니요, 하나의 언어만 쓰는데도 말이다. 왜 그럴까? 발신자와 수신자가 서로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같이 말이라도 개인의 배경, 현실, 세계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해석될 수 있다. 여기에 위계질서나 정치 이념까지 더해지면 같은 말이라도 서로의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자, 여기에 서로 다른 언어 사이에서 말을 옮기는 통역이 개입되면 어떤가.
한국어와 영어는 다르다. 한국어는 고맥락(high context), 영어는 저맥락(low context) 언어다. 말을 쓰는 사람끼리 문화적, 언어적 동질성이 높을수록 맥락도가 높은 언어라고 하는데 단일 언어를 쓰는 단일 민족인 한국이 바로 그렇다.
고맥락 언어는 상황이나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이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고 모호하게 표현해도 눈치로 감으로 화자의 의도와 메시지를 파악하는 경향이 크다. “갸가 갸가?”나 “좀 거시기해서 거시기할 수밖에 없었다.”가 좋은 예다. 반면 저맥락 언어인 영어는 직접적이고 세부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주어, 동사, 조동사, 목적어, 시제, 부사가 각각 중요하며 문장의 의미 자체를 바꿔 버릴 수 있다.
한국어와 영어는 고맥락과 저맥락 언어 스펙트럼 중에서도 양 극단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단어와 문장구조를 그대로 옮겨 1:1로 치환하면 의도한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잘한다
영어로 직역하면 ‘You are doing great.’이나 ‘Excellent work’ 등이 되겠다. 물론 그런 맥락으로 쓰일 수도 있겠지만 정 반대로 쓰일 때도 있다. “잘한다. 아주 잘하는 짓이야”에서처럼 말이다. 이때 영어로 한다면 “Look at yourself. Are you proud of yourself?”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달 같은 사람
한국어에서는 ‘달처럼 주변을 환하게 비추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풍성한 보름달처럼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나 ‘쟁반 같이 얼굴이 동글동글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영어에서는 “You look like the moon.” “She looks like the moon.” 은 딱 한 가지 의미다. 정말 아름답다 가 그것.
관용구(Idioms)나 속담도 대부분 1:1로 직역하면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예로 배가 떠난 상황을 나타 내는 관용구,
That ship has sailed.
배가 유일한 무역과 여행의 수단이던 시절에 유래한 이 표현은 배를 놓친 후 허망하게 선착장에 선 사람에게 했던 말이다. 이미 떠나간 것, 내 손을 벗어난 것, 다 끝난 이야기 등으로 해석해야 한국어에서는 직관적으로 이해가 된다. ‘배’ 대신 ‘버스’를 쓰면 더 확 와닿는다. ‘떠난 버스에 손 흔들기‘란 속담에 딱 맞는 표현이다.
설령 이 표현을 몰랐다 해도 중요한 점은 ‘ship’이라는 단어의 문장 내 쓰임을 보고 맥락상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다. 아래 예문을 보자.
We can't block technology for our kids – ‘that ship has sailed.
아이들이 기술에 노출되는 것을 더 이상 막을 방법이 없다는 뜻의 이 문장에서 ‘That ship has sailed’는 ‘그런 시절은 이제 갔다’나 ‘더 이상 불가능한 일’ 정도로 해석해야 한다.
Jennifer Aniston reveals she tried IVF but says ‘that ship has sailed.”
할리우드 배우 제니퍼 애니스턴이 시험관 아기 시술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이 문장에서는 ‘이미 다 끝날 일’ 또는 ‘다 지난 이야기’ 정도로 해석해야 한다.
이처럼 한국어와 영어를 1:1로 단순 치환하면 제대로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연사의 의도와 메시지를 분석하고 그 맥락에 적절한 도착어로 옮기는 것, 그것이 통역이다. 통역은 그래서 연사의 의도를 알고 시작하면 이미 끝난 게임이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