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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야 Oct 11. 2022

Epilogue ― 결국, 공존으로 가는 길

직업으로서의 국제개발은 내게 여러 차례의 분기점과 성장점을 주었다.     

 

시간이 갈수록 내 안에 쌓여가는 건 지배적인 이야기보다 비주류적이고 대안적인 이야기였다. 결과보다 과정, 수치의 변화보다 관계의 변화, 시스템보다 사람에 대한 경험이었다. 현상의 개발에서 더 근본적인 것과의 연결을 그려갔다. 인도주의적 위기와 개발, 그리고 평화의 순환고리. 모든 것이 결국 존재와 존재의 공존을 도모하는 일에 대한 것이었다.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공존으로 가는 길에도 중개자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제개발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는 동안 정부, 기업, 일반 대중들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는 일과 크나큰 장벽에 작은 균열을 내는 일이 앞으로 내가 가진 유한한 자원을 쏟아내야 할 일들이 되어 갔다.     


언젠가부터 가난을 동정하지 않는다. 지역의 발전을 위해 가난한 이들과 일하는 동시에 부유한 이들에 대한 저항과 재구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가난을 바라보는 사람들 뒤에서 가난을 보게 되는 것이다. 공존에 대한 감수성 높이기를 목표로 삼는다. 현장에서 주민들과 부대끼며 열혈 단신 발로 뛰는 활동가가 아닌 이상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책상 안팎과 근무시간 전후 따로 없이 일상생활에서 가난한 이들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 가난한 이들을 옹호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희망을 붙잡는다. 지속된 생각이 기어코 행동으로 연결되었을 때, 자신의 삶을 허상으로 남겨두지 않으면서 적절한 존중을 다 하게 됨에 땅에 붙어 겨우 한숨 고르게 된다.      

    

다른 여러 사회과학 학문의 태생같이 국제개발도 결국 식민지 개척과 문명화를 목적으로 발전했다는 점을 계속해서 복기한다. ‘타자화’와 ‘대상화’하는 것에서 벗어나 ‘같이 살아가는’ 관점을 담은 발전 담론이 더 확장되기를 기대해본다. 국제개발의 목표도 일방이 아닌 양방과 연결이기를 바라본다. 그동안 마땅히 나누어야 할 것을 나누지 않고 한쪽에 쏠린 불평등한 권력과 자원의 공유가 일어나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바일 것이다. 

    

얼마 전 앞서간 선배들이 기록했던 책을 읽으며 완전한 타인과 연결되는 경험을 했다. 공존과 연대의 유산들. 결국 그들이 남긴 언어와 같은 결의 궤도를 도는 내 모습을 본다. 반가움과 안도감이 들면서도 지금까지의 단상과 그로 인한 소결이 나를 또 어디로 이끌어갈지 알 수 없는 기대와 두려움이 스며온다.


누군가의 반대에 부딪히기 싫어서 선택하는 평화가 어느 한쪽에 갈등을 유발하지 않고는 지속될 수 없는 아이러니와, 평화를 얻기 위해 싸워야 하는 모순을 어설픈 얼굴로 마주하게 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나, 그 끝에선 순간에도, 나를 이끌어온 것들이 다시 나를 이끌어가지 않을까.


이 분야에 흘러들어올 이들에게, 같이 흘러가고 있는 이들에게, 혹은 이미 흘러간 이들에게. 일말의 격려, 위로 혹은 공감이 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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