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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보건교사 Nov 23. 2023

내가 환자가 되었을때

사실 나도 의료인이거든

가끔 병원에 간다.

물론 거기에서까지 내가 간호사임을 밝힐 필요는 없지만

나도 모르게 의료인의 서비스를 관찰한다.

이비인후과에서 사무적으로 성의없게 고막체온를 측정해서 기분이 상했다면

학교에 와선 학생들에게 조금 더 성의있게 체온을 측정해주고 기분도 살펴준다.


병원은 본디 친절하기가 힘든 곳인것 같다.

이미 의료진들은 업무가 너무 많고 병원이라는 환경자체가 저절로 인상을 쓰게 만든다.

다행히 간호사는 굉장히 눈치가 빠른편이라서 아주 응급할때는 빠른 진료를 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신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이다. 기형아검사에서 에드워드 증후군 고위험군이 나왔다. 해당 기형아검사는 다운증후군만 스캔하는데 의의가 있으므로 가볍게 무시하는 전직 산부인과 전문의 친정아버지의 말을 듣고 별다른 검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나도 서치해보니, 에드워드 증후군이면 출생 후에 빨리 죽는다고 해서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대학병원에서 출산하게 되었는데 기형사검사에 따른 추후검사를 왜 하지 않았냐고, 추후 좋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엄청난 warning를 하더라. 어쨌든 첫째는 우려와는 달리 아주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엄마를 잘 만난 덕에(?) 대학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다하고 퇴원을 했다.


  이미 간호사이기 때문에 초기 임신은 아주 흔한것이며,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임으로 지식으로는 알고 있다. 산부인과에서 소파술을 아주 간단한 수술이라는 것도 말이다.

그런데 막상 임신중에  내가 출혈이 되서 병원에 가니 참 무섭더라. 초음파상으로는 임신낭은 보이지 않고 의사는 비정상 임신으로 간단하게 소파술을 하면 된다고 했지만 나는 그 소파술도 무서워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연배출을 기다리면서 피검사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친정아버지도 소파술은 간단하고 그냥 자궁을 청소하는거라고 설명하셨지만 친정엄마는 소파술을 하고도 아이를 낳은것처럼 몸조리를 잘해야한다고 당부하셨다.


 1주일뒤에 병원을 내원하라는 산부인과 전문의를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2주일째 출혈때문에 병원에 갔더니 바로 유산이라. 출혈이 되지 않았다면 나는 확실하게 심장소리까지 듣으려고 더 늦게 내원하려고 했었다.

원래 내 성격같으면, 당장 소파술을 하고 집에 왔겠지만 생각지도 못한 유산이 나의 일이 되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다행히 심장소리까지 듣지는 못했던터라 가슴이 미어지게 슬프지는 않았고 그냥 생리가 조금 늦은것이라고 마음을 추스르기로 했다.






  예전에 간호사로 일을 배울때 사수인 프립셉터 간호사가 너는 뭐가 그렇게 좋아서 얼굴을 실실거리면 다녀니. 라며 표정가지고도 사람을 잡더라. 문득 그 프립셉터 간호사가 왜 내 표정을 지적했는지 이제야알겠다.

환자는 아파가지고 짜증스러운데 의료진은 방실방실 웃고있으면 정말 화가날까.

의료진이 환자의 기분까지 살펴줄 의무까진 없지만 산부인과 전문의가 조금 나의 기분을 헤아려서 위로의 말을 건냈다면 내 기분이 조금 나았을까. 물론 그 의사도 워낙 많은 유산를 보았기에 감정이 무뎌진거겠지만.



  간호사는 의사의 오더없이는 어떠한 의료행위도 할 수 없다. 투약에서부터 모든 의료행위가 의사의 처방에 의한다. 정맥주사도 사실은 의사의 업무이며 간호사는 보조할뿐이다.

학부시절 쓸데없이 간호과정에 관련해서 컨퍼런스도 많이 했는데 과제를 하면서도 의사가 하라는대로 하면 되지. 이런거까지 준비해야하나 싶었다. 간호활동 중에 제일 흔한게 정서적 지지였는데 환자가 되어보니 정서적 지지는 아주 필요한 것 같다. 나도 매일 똑같은 것으로 보건실을 찾아오는 학생들이 가끔 성가실때도 있지만 말한마디라도 따뜻하게 건네봐야겠다. 다정한 말에는 꽃이 피는 법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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