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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라이언 Feb 16. 2024

육아는 여행

<여행의 이유>를 읽다가 든 생각

조용하고 한적한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 졌습니다. 집에서는 이제 곧 두 돌을 맞이하는 아들을 키우느라 회사에서는 새로운 조직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면서 정신없는 상황에서 눈과 귀, 몸과 정신을 잠깐이라도 쉬게 하고 싶은 느낌이랄까요.


그러다 '여행'이라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고 남긴 메모를 펼쳐봤습니다. 거기서 이 문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 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지난 2년 간의 육아가 딱 저 문장 같았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꿈꾸던 기대와 현실 육아의 어려움이 부딪히면서 실망한 적도 많고요. 퇴근하자마자 달려오는 아이의 사랑스러움이 일상의 피로를 완전히 씻겨주진 못하다고 느낀 적도 있고, 아이 덕분에 행복하기보다 아이 때문에 해야 하는 가사 노동이 더 힘들다고 여길 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신 육아를 하면서 성장하기도 했습니다. 개인 시간이 더 소중해지면서 자투리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기 시작했고요. 체력과 건강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시간이 나면 짧게라도 운동하는 습관이 생겼고요. 화내지 않고 인내하는 역치도 최소 2배 이상 늘어난 것 같습니다. 저의 부모님과 모든 선배 부모님을 존경하게 됐고요. 뽀로로를 같이 보면서 무슨 일이 생겨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포비의 마인드에 감탄하고 "원래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야"라고 말하는 통통이에게 한 수 배우기도 했습니다.


저의 숨은 면면도 꽤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설거지를 싫어하는지. 주말에 화장실 청소는 안 하면서 자유 시간은 확보하고 싶은 나의 모습. 밖에 나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던 내가 육아하느라 집에만 있는데도 생각보다 잘 지내는구나 같은 것들이요.


김영하 작가가 말한 '여행'의 관점을 대입하면 육아도 정말 '여행'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육아가 여행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육아하면서 만나는 순간순간은 여행지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때와 비슷합니다.


갓 태어난 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 처음 이유식을 먹었을 때, '아빠'라고 처음 불러줬을 때, 책을 읽어달라고 손을 끌고 방으로 갈 때.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면 만나자마자 뽀뽀를 해줄 때. 무작정 안아달라고 울면서 생떼 쓸 때. 낮잠 자다가 깨서 아빠를 찾아 후다닥 뛰어나올 때. 뽀로로 그만 보라고 TV를 끄면 아빠한테 싸대기를 날릴 때. 꽉 막힌 주차장 차 안에서 똥을 싸서 트렁크에서 기저귀를 갈았을 때 등의 에피소드에서 말이죠. 여행지에서 만나는 즐거움과 시련, 고통 같은 것들이 육아에서도 고스란히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여행과 '육아'라는 여행은 큰 차이가 있죠. 바로 '육아 여행'은 끝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인데요. 여기서 <여행의 이유>의 다른 문장을 또 꺼내봅니다.


'여행이 길어지면 생활이 된다.
(중략)
어느새 뉴욕에서의 생활도 말 그대로 생활이 되어가고 있었다. 일상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해야 할 일들, 그러나 미뤄두었던 일들이 쌓여간다. 언젠가는 반드시 처리해야 할 일들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통제력을 조금씩 잃어가는 느낌에 시달리곤 한다. 조금씩 어떤 일들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생긴다. 욕실에 물이 샌다거나, 보일러가 낡아서 교체해야 한다거나, 옆집이 인테리어 공사에 들어가 너무 시끄러워진다거나 하는 일들. 우리는 뭔가를 하거나, 괴로운 일을 묵묵히 견뎌야 한다. 여행자는 그렇지 않다. 떠나면 그만이다. 잠깐 괴로울 뿐,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 그렇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일상이 되고, 통제력을 잃고 괴로운 일을 묵묵히 견디는 상황. 이게 또 현실 육아와 딱 맞는다고 느껴졌습니다. 결국 육아는 여행이었지만 일상이 되어가는 것이죠. 그래서 육아가 그렇게 힘이 드나 봅니다. 여행을 떠났다 싶었는데 다시 일상이 된 느낌이니까요. 그럼 여행의 즐거움과 일상의 괴로움이 공존하는 '육아 여행'을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 걸까요?


답은 하나인 것 같습니다. 육아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모조리 느끼고 흡수하는 것이요. 우리는 분명 아이를 키우면서 많은 힘을 얻고 있으면서도 현실에 치여서 놓치거나 흘려보낼 때가 많습니다. 앞으로는 더 아이를 사랑해 주고 옆에 딱 붙어서 행복한 순간을 놓치지 말고 마음속에 저장하려고 합니다. 힘든 일상을 살아낼 에너지는 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일 테니까요. 그리고 일상의 괴로움은 그냥 받아들이고, 다시 맞이할 행복한 순간들을 위해 버티는 것이죠.


"여행을 통해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라고 말하는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요.


그래서 여행은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물론 이번 여행은 아이는 부모님께 맡기고. 와이프와 단 둘이 갈 생각입니다. ^^



커버 이미지: UnsplashKelli McClin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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