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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라이언 Dec 01. 2023

21개월 아들의 응가를 치우면서 든 생각

누군가의 똥을 대신 치워준다는 것

21개월 아들 응가를 치우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살면서 누군가의 똥을 치워본 적이 있나?"

처음이었다. 


'똥'은 인간이 살기 위해 먹은 것이 소화되고 남은 찌꺼기다. 냄새나고 더러운 이 찌꺼기는 나 말고는 다른 사람은 볼 일이 거의 없다. 절대 남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굉장히 개인적이고, 비밀스럽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아들 응가는 매일매일 본다. 냄새나고 더럽지만 기꺼이 치워준다. 엉덩이 주변에 묻었다면 그것까지 아주 깨끗이 깔끔하게 닦아준다. 심지어 응가를 하면 기특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왜 그럴까? 

왜 아들 응가는 기꺼이 내가 치울 수 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아들이 응가를 처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변기에 앉을 수도 없고, 스스로 자기 엉덩이를 닦을 수도 없다.


또 다른 이유는 아들이 응가가 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들 입장에서는 기저귀와 엉덩이 사이에 불편한 뭔가가 끼어있을 뿐이다. 불편하니까 싫은 거지, 그대로 방치하면 본인 건강에도 좋지 않고 주변에 피해를 준다는 사실은 모른다.


마지막 이유는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위에 1번, 2번 이유에 해당하더라도 사랑하고 아끼지 않는다면 응가를 치우기 힘들다. 만약, 다른 아이의 똥을 치워야 한다면? 솔직히 그러고 싶지 않다.




남이 싼 똥을 치워야 하는 순간


우리는 일상이나 회사에서 남이 싼 똥을 치워야 할 때가 종종 있다. "OOO이 싼 똥 치우느라 고생했다", "OOO이 싼 똥은 왜 맨날 내가 치우냐"와 같은 말이 주변에서 들리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여기서의 '똥'은 누군가가 망쳐놓은 것, 잘못되어 있는 일을 의미한다. 실제 똥이 아니지만 마치 (리얼) 똥을 치우는 것과 똑같이 하기 싫고 불쾌한 감정이 든다.


보통 똥을 싸는 사람은 내가 똥을 쌌는지 모르거나 스스로 똥을 치울 능력이 없다. 마치 21개월 우리 아들처럼. 그러니까 치워줄 사람이 필요한데 본인이 아끼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위해 똥을 치워야 하니까 열이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아들은 이쁘기라도 하지.




누가 내 똥을 치워준 적은 없을까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내 똥을 치워준 적은 없을까?" 


똥 싼 사람은 보통 자기가 똥을 쌌는지 조차 모르니까 나도 똥을 싸놓고 모르고 있지는 않을까? 게임을 할 때도 나보다 훨씬 잘하는 유저가 내가 싼 똥까지 치우면서 그 판을 캐리 하듯이 회사에서도 선배, 후배들이 내가 저질러 놓은 일들을 잘 수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깔끔한 뒤처리, 신뢰와 친밀감


결론은 어떤 '똥'이든 뒤처리를 깔끔하게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스스로 똥을 치울 능력은 있어야 하고, 내가 '똥'을 쌌는지 아닌지는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주 주변 사람을 살펴야 하고, 일이 끝나면 회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혹시,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사전에 요청하여 쿠션을 한번 먹이면서 갑작스럽게 일을 떠맡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를 아끼는 친밀한 관계는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구시렁구시렁 하더라도 이 정도 똥은 내가 기꺼이 치워준다는 느낌으로 도와줄 수 있는 동료가 있다면 큰 힘이 되지 않을까? 


물론 '똥'은 언제나 더럽고, 치우기 싫은 것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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