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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라이언 Sep 03. 2024

뭔가를 바꾸고 싶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맥락을 이해하는 것에 대하여

'무언가를 옮기거나 바꾸려면 그게 왜 그 자리에 있는지부터 이해하자.'


<구글 엔지니어는 이렇게 일한다>를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이 문장은 '체스터슨의 울타리(Chesterton's fence)' 원칙을 인용했다. 아래는 이에 대한 설명이다.


파괴적인(Deforming) 변경과 달리, 무언가를 좋은 방향으로 변경(Reforming)하는 문제에는 한 가지 분명하고 단순한 원칙이 있다. 아마도 역설이라고 불릴 법한 원칙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도로를 가로지르는 울타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유형의 개혁가는 '무슨 용도로 울타리를 이렇게 설치했는지 모르겠군요. 깔끔히 밀어버립시다.'라고 말할 것이다.

반면 더 현명한 유형의 개혁가는 '용도를 모르겠다면 그냥 밀어버릴 순 없죠. 좀 더 생각해 봅시다. 용도를 먼저 알아내고, 그때 철거할지 결정하자고요.'라고 말할 것이다.

by 위키피디아, 구글 엔지니어는 이렇게 일한다 (*글쓴이 추가 의역)


얼마 전 우리 사업부 이사님도 나에게 비슷한 조언을 해주셨다. 내년 상반기에 전면 개편될 차세대 제품의 기능을 스터디하고 있다고 하니까 하신 말씀이다. "기능이 없어지거나, 개선되거나, 새로운 기능이 추가될 때는 기존 기능과 정책이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도 생각해 봐요. 그래야 정말 기능이 '좋은 쪽으로' 변경되는 건지 알 수 있어요. 과거에 그 기능이 만들어진 건 무슨 이유가 있는 거예요. 고객이 원했을 수도 있고,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못 찾아서 그렇게 만든 걸 수도 있고요."


눈과 귀, 2 연타로 같은 뉘앙스의 말을 보고 들으니 더 마음에 깊게 남았다. 사실, 기획 일을 하면서 "아니 이걸 왜 이렇게 만들었지?"라면서 기능 개선을 주장한 적도 꽤 있었고, "나라면 이렇게 안 만들었을 텐데"라고 오만함에 젖어 기존 기능이나 사용성에 대해 이슈를 제기하기도 했다. 의견이 받아들여지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때도 많았다. 다 기억나진 않지만 논리 싸움에서 밀렸거나,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받아들일 수 없어.'라는 감정이 앞섰다. 지금이라 말할 수 있지만 그때 '이해할 수 없어'라고 결론짓지 말고, 한 걸음 더 깊이 파고 들어갔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다.


<구글 엔지니어는 이렇게 일한다>에서는 코드 작성 측면에서 예를 든다. '누군가가 그렇게 코드를 작성했다면, 그렇게 작성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히, 정상이라고 보이지 않는 결정에 대해서는 먼저 맥락을 찾아 이해해야 한다'면서 '코드의 목적과 맥락을 이해하고, 그런 다음에도 변경하려는 방향이 여전히 더 나은지 고민해야 한다'라고 덧붙인다.


사업 측면에서도 쉽게 사례를 떠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SaaS 제품을 판매하는 스타트업이 사용자 수 10인까지는 모든 기능을 '무료'로 제공하면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번에 새로 입사한 10년 차 베테랑 사업기획자가 이러한 의견을 제시한다. "10인 이하 무료 정책은 장기적으로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존 정책은 폐지하고 30일 무료 체험 기간을 주는 것으로 바꿔야 합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기존 임직원과 대표가 '10인 이하 무료' 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먼저, 고객사 수를 확보하여 'Lock-in' 시킨 후에 나중에 유료 전환 전략을 펼칠 수 있다. 아니면, 무료 고객사를 최대한 끌어모은 후, 부가 기능을 유료로 출시하여 업셀할 수도 있다. 모든 사업 정책에는 이유가 있다.


최근, 정부가 외국인의 성명 표기 방식을 '성-이름 순서'로 통일하기로 결정(행정 예고) 한 것도 비슷한 관점에서 살펴보면 재밌다. 가수 존박이 "아니 저기 잠시만요"라고 한 반응이 화제가 되기는 했지만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하다.


기존 정책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추정해 보자. 어떤 기관은 타 국가의 문화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름-성(John Park)'을 쓰도록 했을 수 있다. 반대로 어떤 기관은 한국의 성명 표기 방법과 일치시키려고 '성-이름(Park John)' 방식을 채택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혼란이 생겼고, 이에 따라 신분 확인에도 불편함이 발생하여 통일하기로 한 것이다. 역시, 정부 정책이나 법률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엄밀히 얘기하면 일을 할 때 'As Is'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To Be'를 제시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하지만 우리가 자주 놓치는 이유는 3가지 이유에서 인 것 같다. 첫 번째, '기존의 것'은 이미 노출되어 있어 문제가 더 많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선하거나 바꾸자고 말하기 쉽다. 두 번째는 나의 아이디어가 '기존의 것' 보다 더 나을 거라는 과신 때문이다. 내 아이디어에 취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새로운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 때문이다. 변경하거나 새로운 것을 제안할 때는 그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까지도 상세히 분석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니까 "이건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 "이 법은 왜 이렇게 만들어진 거야?" "이 기능은 왜 이렇게 만든 거지?" "왜 가격을 이렇게 싸게 책정한 거지?" 등 일상에서, 회사에서 불평불만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면 잠시 호흡을 가다듬자. 그다음에 딱 10분만 맥락을 파악하려고 노력해 보자. 그럼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

모든 일과 정책, 의사결정에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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