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가성비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다.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 언급된 '분초사회'라는 키워드는 1분 1초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는 우리의 모습을 잘 설명한다. 이제 시간은 돈 이상의 자원이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시간을 잘게 쪼개서 자신이 하고 싶고, 즐기고 싶은 일에 시간을 투자한다. '투자하는 시간 대비 만족도(성능)' 즉, '시성비(時性比)'를 최적화하겠다는 의지다.
사람들은 영상을 1.5배, 2배속으로 본다. 드라마 정주행 전에 15분짜리 미리 보기 YouTube 콘텐츠를 찾는 것도 시간을 절약하고, 시간 쓴 것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다. 점심시간을 활용한 ‘틈새 PT’, ‘짬 PT’의 출현. 출퇴근 시간이나 설거지하면서 들을 수 있는 오디오북이 뜬 것. 돈을 내고도 YouTube 프리미엄을 구독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멀티태스킹으로 시간 효율을 높이기 위함이다. 테이블링 같은 줄 서기 앱이나 미리 주문하는 사이렌 오더, 내가 집에 없을 때 청소나 세차를 맡기는 서비스도 이미 일반화되었다. 모두 시성비와 연관이 있다. 시간의 양을 확보하거나, 질을 높이기 위한 투자인 셈이다.
나도 시성비를 꽤 신경 쓰는 편이다. 여유가 주어지면 어떻게든 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욕망이 끓어오른다. 출퇴근하는 데 15분 밖에 안 걸리지만 그 시간에 차에서 들을 수 있는 콘텐츠를 미리 준비한다. 점심시간에도 놓친 뉴스는 없는지, 업계 이슈가 무엇인지 계속 확인한다. 일상에서도 그렇다. 31개월 아들이 잠에 드는 순간 나는 책을 꺼내거나 노트북 앞에 앉는다. 공부든 글쓰기든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육아로 개인 시간이 줄어들면서 빈 시간은 알차게 써야 한다는 의지가 더 커졌다.
이렇게 '시성비'를 잘 관리하는 것은 '갓생'과도 연결되고, 더 생산적인 삶을 살게 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간을 잘 써야 한다는 과도한 욕심은 쉽게 강박으로 변질된다.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 가능한 의미 있게 시간을 써야 한다는 집착이다. 스스로 만들어 낸 '바쁨' 바이브에 휩싸인다. 그러니 여유가 없다. 효율성과 생산성을 무리하게 추구하려는 강박은 오히려 삶의 즐거움이나 만족도를 떨어뜨린다.
나도 강박일까? 한 걸음 떨어져서 일상을 관찰해 봤다. 아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놀아주는 시간에도 "오늘 밤에 글 업로드 해야 하는데... 주제도 못 정했는데 어떡하지? 우리 아들 일찍 자려나?"라고 조급해하며 일찍 잠들기를 속으로 바랐다. 설거지와 빨래 정리를 하면서도 "아, 오늘 집안일 너무 많네. 이따 강의 들어야 하는데"라고 한숨을 푹푹 쉬기도 했다. 최근 추석 연휴를 보내고 나서도 "5일을 쉬는 동안 난 뭐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박이었다.
이렇게 보면 시성비를 추구한다는 말의 기저에는 내가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들 위주로 시간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깔려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는 일에는 시간 쓰기 아깝다는 것이다. 그러한 일을 할 때는 우울, 걱정, 짜증, 조급함, 무기력함 같은 감정이 올라온다. 그래서 점점 하기가 싫어진다.
시성비를 따질 때 조심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다. 내가 우선시하는 일들에만 시간을 쏟겠다는 것은 '나' 중심적인 사고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쓰고 싶은 데만 시간을 쓸 수 없다.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만 할 수 없다. 함께 하는 상대방의 우선순위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육아하는 시간에는 옆에 있는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고려하여 진심으로 놀아줘야 하고, 집안일을 할 때는 가족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프로젝트일지라도 상대방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일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시간을 타협할 때와 그렇지 않아야 할 때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아이, 가족, 프로젝트. 모두 기꺼이 내 시간을 양보하고 투자할 수 있는 대상이다.
교과서적인 이야기 같지만, 이것이 시성비의 강박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다. 상대방의 우선순위를 고려한다는 것은 나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더라도 너에게는 중요할 수 있으니 시간을 투자하겠다는 말이다. 그러고 나서 그 시간에는 최선을 다해 충실하면 된다. 계획한 일이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든, 중요한 일이든, 하기 싫은 일이든 상관없다. 그 일을 하는 시간에 오롯이 집중했다면 분명 무언가 남을 것이고, 더 크게 돌아올 것이다. 최선을 다했다면 그 시간에 대한 아까움이나 후회의 감정을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마음 챙김을 위해서라도 그렇다.
시성비를 따지지 말라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나의, 나를 위한, 나에 의한 시간만 앞세우다가는 정작 중요한 시간을 놓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시간의 양과 질을 높이려는 노력만큼, 그 시간에 충실한 태도만 한 스푼 더하자. 주어진 매 순간에 집중하고, 진심을 다하면 시간의 밀도와 가치 또한, 덩달아 높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