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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껌정호랭이 Black Tiger Sep 13. 2023

21."남자들의 로망" 나이 50전에는 내 사업을~~

직장인 남자들의 로망은 "많은 돈을 벌어 재벌이 는 것 , 좋은 드림카를 갖는 것, 연하랑 결혼하는 것, 은퇴 후 귀촌해서 맘 편하게 살아 보는 것 등 등"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항상 가슴속에 품고 살고 있으면서도 무섭고 두렵고 어렵고 현실 속 생활을 유지해야 하기에 선뜻 실행하지 못하는 로망은 바로 자기 사업을 해서 성공하는 것일 것이다.


자기 사업한다는 것이 남이 하는 것은 쉽게 보이지만 본인이 시작하기에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 또한 이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재벌 2세라면 몰라도 일반 소시민의 셀러리맨들이 할 수 있는 로망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진실 씨도 일찍이 시작했다가 배신과 배반으로 뒤통수를 크게 한방 얻어맞고 나가 떨어 저서 그 후유증으로 겪지 말아야 할 고통과 고민을 등에 업고 젊은 시절을 다 보내야 했었다. 따라서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20여 년의 직장 생활 속에서 매일매일 가슴속 어딘가에서 꿈틀거리면서 자라온 것은 "나는 꼭 50세가 되기 전에는 내 사업을 할 거야!~!!"라는 그 남자들의 로망인 내 사업이었다. 재벌 2세가 아니다 보니 풍부하지 않은 자금에 문과 출신으로 중소기업에서 관리파트 분야에서 잔뼈가 굵어온 진실 씨 입장에서는 무슨 기술이 있어서 제조업을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친인척 중에 사업하는 사람이 있어서 관련된 업종을 배워서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아무리 긴 시간을 가슴속에서 키워온 꿈이라지만 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는 모든 여건 상 우리나라 대부분의 은퇴자들이 손쉽게 접근한다는 요식업밖에는 어떠한 다른 업종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몇 날 며칠을 인터넷사이트를 뒤지고 찾아가서 보고해 보았지만 거의 대부분이 허공에 뜬 뜬구름 같은 내용들로만 가득 채워 저 있는 사기성 사이트들이 대부분이고 진실 되게 안내해 주는 사이트는 찾기 힘들었다. 오로지 본인 스스로 개척해서 찾고 배우고 익혀서 충분히 검토를 한 후에 결정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가? 어느 날 거래은행을 갔다가 회사로 터벅터벅 걸어오다가 눈에 띈 "상가임대"라는 현수막을 보고 "야! 저기서 사업하면 뭐라도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걸어가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진실 씨 가슴을 또다시 뛰게 만들고 말았다.


수없이 많은 프랜차이즈 본사 사이트에 상권 및 입지 선정에 관한 상담의뢰를 해 놓았었는데 그중에 한 곳인 "와바"라는 세계맥주전문업체에서 입주조건에 맞고 상권도 이미 검증이 완료된 자리라면서 오늘내일 중으로 계약을 하지 않으면 다른 분 한테 상가를 넘기겠다고 하면서 빠른 시간 내에 결정을 해달라는 전화였다.


그 전화를 받은 후 회사까지 어떻게 걸어서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가슴이 두근두근 뛰면서 설레기까지 했다.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왠지는 모르지만 설렘이 극에 달할 정도로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곧바로 전화해서 장소를 묻고 마케팅 담당자와 만나서 확인한 가계는 진실 씨가 방금 전에 혼자 지나오면서 보았던 엄청 큰 신축건물의 1층이면서 6개 상가 중 제일 왼쪽 끝 상가와 바로 안쪽 상가 두 곳이 나와 있다면서 두 곳 중 원하는 한 곳을 택하라고 했다.


임대평수는 50평 임대료는 두 곳이 동일한 금액에 조건도 동일했지만 적지 않은 상당한 금액이었다. 진실 씨는 고민에 빠졌다. 본사입장에서는 상권검증이 완료되었다고는 하지만 과연 여기가 그렇게 큰 금액의 임대료를 감당하면서 운영이 될 정도로 장사가 될 것인가? 의문에 의문을 더하면서 급속도로 빠르게 머리를 굴려 가면사 상상을 해 보았다. 어떻게 하면 가능할 것도 같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나 큰 임대료가 부담이 될 것 같기도 해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결정장애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정을 못하고 있을 때 와바 담당자는 유창한 말솜씨로 진실 씨의 간지러운 마음을 살살 건드리기 시작했다. 요즘 제일로 핫한 아이템이 세계맥주이고 이 장소는 근처가 전부 회사인 전형적인 오피스 상권으로 젊은 직장인들이 퇴근하면서 반듯이 찾아올만한 장소이고, 건물 앞 분수대가 있어서 약간 가리는 시야는 건물 측에서 그 분수대를 철거하고 그 자리를 계단식으로 개방해서 상가로 바로 들어오게 하면 상가가 직장인들이 출퇴근하는 길에서 바로 보이기 때문에 많은 홍보가 됨으로써 장사는 분명히 잘 될 것이라면서 설득을 하고 있었다.


진실 씨 생각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계맥주가 유행을 하기 시작한 지가 한 1~2년은 되었을 시기이다 보니 이 업종도 반짝 경기를 타다가 훅 꺼저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약간의 불안함과 상가 앞의 분수대를 한 개인의 건물이 아닌 공동으로 일반분양된 지식산업센터 건물인데 정말로 철거하고 계단으로 만들어 줄 것인가?  등 한두 가지의 의문점은 안고 있었지만 내 사업을 할 수 있다는 부푼 꿈에 한쪽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밖이 환하게 보이는 왼쪽의 제일 안쪽 상가를 선택하고 로망인 50이 되기 전 49세에 내 사업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상가 계약을 마친 후 회사에는 사직 의사를 표했더니 대표이사님께서는 강력히 만류를 했지만 당시 회사 내에서도 오래된 창업 공신들은 하나 둘 소리소문 없이 알게 모르게 자연스럽게 집으로 돌아가는 분위기가 역력할 때였다. 아직 담당하는 업무 특성상 진실 씨까지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기는 아직 아니었지만 진실 씨에게도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는 않았음을 예감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랑 씨를 시켜서 가계는 운영을 하게 하고 진실 씨는 악착같이 달라붙어서 정년까지 근무를 할까 하는 생각도 잠깐은 들었지만 긴 시간 동안 가슴에 품었던 생각도 깊었고, 비록 세계맥주집이라고는 하지만 술을 파는 업종이다 보니 여자인 사랑 씨가 운영하기에 조금은 부담감이 있어서 조금 더 기다리다 초라하게 밀려나는 것보다는 이번 기회에 정리하는 것이 올바른 결정으로 판단을 하고 K전자에 입사한 지 19년 8개월 만인 8월 14일 광복절 전날에 사직을 하고, 우리나라의 독립기념일에 본인도 해방의 기쁨을 맞이했다.




50평의 크지 않은 상가이지만 개인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20여 년 전에 개인사업을 시작할 때는 아예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시작하다 보니 두렵지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그동안의 사회경험이 있다 보니 모든 것을 결정할 때마다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당시 강남이나 홍대 상권이 아닌 이상 동네 맥주집의 인테리어는 비용 절감을 위해 그저 허름하게 대충 페인트 정도로만 마감처리 하는 집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진실 씨가 선택한 세계맥주전문점 와바는 모든 실내를 비싼 고급 원목나무로 산뜻하면서 중후하게 세련된 인테리어를 했으며 천정은 전고가 높게 전부 개방을 해서 공간감을 좋게 했고, 벽과 천장 사이에는 수십 종류의 형형색색 세계맥주병들을 올려놓고 거기에 컬러풀한 조명장식을 넣어 줌으로써 분위기는 환상 그 자체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오디오 및 비디오는 실내 3면에 대형 스크린과 전문 오디오 기기를 설치해 동영상까지 상영함으로써 마치 콘서트 공연을 감상하면서 맥주를 즐기는 것과 같은 분위기로 연출을 했고, 전면은 개방형 창문을 설치해 여름에는 전면을 완전히 오픈해 운영함으로써 커다란 광장에서 맥주를 즐기는 것 같은 시원한 개방감까지 주어 마치 외국의 맥주집에 와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게 장소를 꾸몄다.


누구라도 인테리어 및 분위기를 보면 맥주 한잔 생각날 정도로 잘 꾸며졌고, 맥주 종류도 50여 종의 세계맥주를 구비하고 있어서 명실상부한 세계맥주 전문점으로 손색이 없었다. 거기에 양주 칵테일 등 모든 종류의 주류를 팔 수 있었고 안주류 또한 전문 요리사를 채용해 요리를 제공함으로써 고급스러운 요리점으로 소문이 퍼질 정도로 준비는 완벽했다.


인테리어 준비 과정에서 불필요한 본사의 요구에 몇 가지는 다툼도 있었지만 방염처리와 같은 만약의 비상상태에 필요한 시설이나 공사는 1층이기에 법적 규정이 없었음에도 비싼 금액을 부담하면서 방염처리 등 안전장치는 모두 갖추었고, 전문요리사를 채용해 실습교육까지 마무리를 했는데 중간에 못하겠다면서 퇴사를 함으로써 당황해하기도 했지만, 오픈 시점에는 진실 씨의 경험과 꼼꼼한 성격 탓에 완벽하게 잘 준비를 마쳤고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오픈과 함께 장사는 그런대로 수월하게 잘 되고 있었다. 점점 시간 흐르면서 알려지다 보면 더 잘 되겠지 하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했다. 맥주라고는 생맥주와 국산 맥주 밖에 모르던 진실 씨가 50여 종의 맥주 이름은 물론 맛과 특성 어느 나라 맥주인지 등등 맥주에 대해서는 모르는 내용이 없을 정도로 많은 지식을 터득해서 이제는 손님들이 질문하면 스스럼없이 답변을 하고 추천을 해 줄 정도의 실력까지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몸은 피곤했다. 20여 년의 직장 생활에 몸이 익숙한 사람이 밤 낮이 바뀐 밤에 일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거의 매일매일이 새벽 2시가 넘어서 영업을 마칠 수 있었고 어떤 날에는 술이  취해 주정하는 손임들 뒷 처리를 하다 보면 3시 4시, 밤을 꼬박 새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내 일이며 내 사업을 한다는 기쁜 마음에 피곤하지만 피곤함을 느끼지는 못했고 근처에 소문이 퍼지면서 손님들이 많아지기 시작하자, 직원들을 충원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다 한 다음에 지금처럼만 변동 없이 지속적이기만을 바라면서 콧노래를 부르면서 3년 차 장사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날벼락인가? 전혀 상상도 못 한 정부 정책이 발표되고 말았다. 이정책은 근로자들의 복지와 생산성 향상을 위한 휴식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면서 "주 5일제 근무"를 전격 시행하고야 말았다. 처음에는 무슨 영향이 있겠냐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진실 씨 가계에도 한주 두주 주 5일제가 시행되면서 손님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요식업들이 그렇겠지만 특히나 술을 파는 업종은 금요일 토요일이 대목날 장사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다음날 오전 근무하는 토요일과 그다음 날이 휴일인 일요일이기에 마음 편하게 동료들 친구들과 어울려 앉아서 지난 1주일 동안의 싸인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상사 들으로부터 받았던 스트레스를 휴일전날인 금요일과 토요일에 한잔 마시면서 상사들이나 회사를 안주 삼아 맘 편하게 실컷 마시는 것이 직장인들의 국룰이면서 피로회복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 5일제가 시작되면서 휴일이 이틀이나 된다는 직장인들의 여유로운 마음이 직장 근처에서 지지고 볶고 마시면서 회포를 풀던 풍습들이 이제는 직장과 거리는 상관없이 젊은 직장인들이 많이 모이고 좀 더 호화롭고 세련된 장소들이 많이 밀집해 있는 강남이나 홍대 쪽으로 나가서, 다채로운 경험과 즐거움을 만끽하는 밤문화를 즐기기 위해 직장 근처를 떠나기 시작했으며, 한편으로는 길어진 휴일 탓에 여행을 떠나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직장인들이 갈수록 늘어만 가다 보니 직장 근처 술집이나 요식업소들은 파리만이 손님인양 몰려와서 놀고 있기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 토요일이 대목날 장사였던 진실 씨네 가계도 목요일부터 손님들이 급격히 줄기 시작해 매출이 금요일에는 평상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토요일에는 많아야 한 두 팀에 불과할 정도로 변해 버렸다. 거기에 입주 당시 가계 앞 분수대를 없애고 계단으로 개방해 주겠다던 말과는 다르게 진실 씨 속 터지는 마음은 아랑곳없이 2년이 넘어가도 그 분수대는 오히려 더 위용 있게 물줄기를 뿜어 올리기만 했다.


매주 6일 동인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던 가계는 이제 월 화 수요일을 제외하면 거의 파리만 날린다 할 정도로 한가해지고 있었고, 매년 해가 바뀌면서 가계 임대료는 내려가기는커녕 오히려 올려 줘야 할 상황이었다. 여기에 부수적으로 직장인들의 주 5일제와 함께 아르바이트생들의 시급 또한 급격하게 올르면서 가계 운영은 갈수록 어려워 저만 가고 있었다.


진실 씨는 50세가 되기 전에 로망인 개인사업을 시작은 했으나 50세가 넘어가면서부터 어려움은 점점 더 가까이만 다가오면서 압박을 해오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라는 후회의 한탄만 수없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러나 답은 정해저 있었다. 날이 가면 갈수록 멋있고 아름답게 그리고 고급지게 비싼 돈을 들여 꾸며놓은 인테리어는 아랑곳없이 손님들은 자꾸 멀리 멀어 저만 갔고, 진실 씨 가계에는 보이지 않는 빚만 점점 쌓여 늘어 가고 있었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점점 더 빨리 다가오고 있었고, 그 진실 씨의 로망을 버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또한 뿌리칠 수가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그때 마침 K전자에 근무할 당시 그 많은 거래처 중에서도 유달리 진실 씨에 대해 좋게 대해 주시고 항상 챙겨 주시던 S정밀 회장님께서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는 몰라도 연락을 주셨다. 사업이 힘들면 정리하고 본인 회사에 와서 회사를 키우는데 힘을 합처서 기업상장을 해보자는 얘기였다. 


당시 진실 씨도 K전자에서 경리업무부터 인사 회계 구매 자재 총무 해외투자 노무업무까지 어지간한 업무는 다 경험해 보았지만 불행하게도 기업증권상장 업무만큼은 해 보질 못했었기에 기회가 된다면 그 업무만큼은 꼭 해보고 싶기도 했다.


S전자의 스카우트 제의에 진실 씨는 많은 고민이 되었다. 현실적으로 보면 세계맥주 가계를 정리하고 S전자로 이직하는 것이 맞지만, 50세가 되기 전에 내 사업을 하겠다는 욕심이자 꿈을 안고 시작한 사업을 포기하고 정리하자니 현재까지의 손실금액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지속적으로 늘어가는 손실금액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포기하면 현재까지의 손실금 충당은 물론이거니와 그토록 크게 꿈을 안고 시작한 진실 씨의 로망 또한 이제는 영영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 자명하기에 마음속은 갈팡질팡 진퇴양난에 처해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S전자의 스카우트 조건도 나쁘지 않은 좋은 조건에 20여 년을 해 왔던 업무를 그대로 이어 갈 수 있는 유사업종의 업무이기에 진실 씨의 마음은 점차 현실에 가까워지면서 S전자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따라서 여기저기에 폐업보다는 인수인계가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여러모로 손실을 줄일 수 있었고 진실 씨의 정성이 들어간 매장 인테리어도 살려서 사용할 수 있는 긍정적인 방법이기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가용 인맥을 다 동원해서 매매를 하고자 알아보았으나, 이미 전국적으로 주 5일제로 인한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이 알려진 마당에 쉽게 매매가 될리는 만무했다.


가끔씩 인터넷에 정보를 공개하다 보니 매입하겠다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은 있었으나 이들 중에는 진정한 소상공인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중간에서 장난치는 플랫폼 사업자들이 찾아와서는 소상공인양 속이면서 정보만 뺐어 갈 뿐 혹시나 하면서 기대하는 진실 씨의 약한 마음만을 들쑤셔 놓고 나타나지 않는 악성 영업사원들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래도 며칠만 며칠만 하면서 더 기다려 보았지만 마찬 가지였다. 때마침 상가 계약 기간도 2년 단위 계약이기에 4년 차 만기일이 다가와서 어쩔 수 없이 폐업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상가 건물주에게 통보를 했다.


음 상가 계약을 할 때 한 번만 더 깊게 생각할걸... 오피스 상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나라에서 진행하려고 하는 노동정책을 조금만 더 세밀하게 분석할걸... 한물 지나가고 있는 업종은 아닌지 한 번만 더 검토할걸...  등등 후회 안 되는 사항은 단 한건도 없이 모든 것이 다 본인 자신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고, 이 또한 한 번도 아닌 두 번씩이나 이런 실수를 범해 처참해진 자기 모습을 한탄하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다 못해 슬퍼지기까지 했다.




소상공인들은 상가를 돌려줄 때는 해당업종을 영위할 업자를 찾아 인수인계 하거나 아니면 원래의 모습으로 원상복구를 한 후에 건물주에게 반납해야 하는 조건에 따라서 진실 씨는 인수업체를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큰돈과 정성으로 꾸미면서 로망을 이루고자 꿈까지 함께 녹여 넣어서 설치했던 인테리어를 단 1원도 챙기지 못하고 다시  본인 손으로 다 부셔내야 하는 아픈 현실이 더 아프게만 느껴졌다.


인테리어를 모두 철거하고 비싸게 돈을 주고 들여왔던 집기비품들은 원가의 1/10도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값에 팔아넘기고 몇몇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귀한 장식용 액세서리 비품들은 나중에 본인이 분명히 다시 찾으러 갈 테니 그때까지만 잠시 보관해 달라고 집기업체에 부탁하면서 팔지 않고 맡겨 두었지만, 이미 날아가버린 진실 씨의 꿈을 다시 이루기 위해서 언제 다시 찾으러 갈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진실 씨의 포기 못한 허황된 꿈과 쉽게 버리지 못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진실 씨의 50세가 되기 전에 시작된 개인사업의 꿈은 50세가 갓 지나자마자 다시 아픈 물거품 속 어디론가 사라저 버리고 만 쓰리고 아픈 이야기이다.


누구나 남자들은 마음속에만 가지고 있는 로망이 있을 텐데, 현실의 삶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면서 그 로망을 이루기 위해 고이고이 깊은 곳에 숨기고 살아가시는 모든 셀러리맨 여분들께 용기와 응원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은 꼭 로망을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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