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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대장 Jun 03. 2024

당신에게 손 내밀어 줄 글

어느날, 글쓰기가 쉬워졌다 - 김수지(노파)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책’이라는 건 지금처럼 흔한 물건이 아녔다. 당시에는 비디오가 범람했고(8~90년대는 정규방송외에는 볼 거리가 마땅찮았다. 비디오 가게가 즐비해 서로간의 경쟁이 치열했다) 도서관이 지금처럼 동 단위로 위치해 있지도 않았다. 당시 유행했던 책 대여점만 봐도, 책을 읽기 위해 들여야 하는 품이 적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친척이 계몽사 외판원 일을 하는 바람에 엄마는 의도치 않게(?) 책을 자꾸만 사들였다. 한 두권도 아닌 전집으로 두 세질을 한번에 샀고, 대금은 분할납부였다. 아마도 적지 않은 금액이었으리라. 그렇게 집에 볼 책들이 쌓여갔고, 꼭 보지 않더라도 가지고 놀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본집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 우리가 나간 후 아빠는 그 책들을 다버렸다고 해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말도 안되게 예쁜 양장집 고전문학세트였다. 어렸을 땐데도 그 기억이 이리도 선명한 걸 보면 그때도 나는 책을, 그 물성을 몹시도 애정했나보다.


그렇게 책이 물성만으로도 의미 있었던 시절, 책 한권을 옆구리에 끼고 거리를 활보하면 마치 신지식인이 된 것 만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던, 그런 때였다. 응당 책이라는 건 가격과 내용을 떠나 ‘아무나’ 읽지도 않았고, ‘아무나’ 쓸 수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 판이하게 다르다. 그 ‘아무나’가 아무렇지도 않게 글을 쓴다. 생각해보면 지금처럼 사람들이 ‘글’에 쉽게 다가간 적이 있나 싶다. 내가 스물 언저리에 글을 쓸 때만해도 나의 글을 어딘가에 보여줄 수 있는 창구가 전무했다. 개인 sns의 시초격인 싸이월드만 해도 글만 쓰는 나에게 친구들의 면박이 끊이지 않았다. “너 뭐, 작가 될거야?”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평범하거나 자연스러운 일은 아녔던 것이다. 그렇게 ‘특별한’ 일이었던 글쓰기가 요즘처럼 ‘쉬워’진걸 보면 글쓰기 참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어느 날, 글쓰기가 쉬워졌다>는 딱 3가지만 기억하고 싶다.


소비자의 삶에서 생산자의 삶으로. 25


대부분의 시간을 타인의 sns나 ott에 할애하고 있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게 위해 끊임없이 타인의 창작물을 ‘소비’하고 있다. 이따금 머리를 식히기 위해, 멍때리는 시간이 필요해 뒤적이는 행위 말고, 말 그대로 과도하게 빠져드는 현상을 말한다. 눈치 채기 어렵겠지만 그렇게 화면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도 일종의 노동이다. 하지만 글을 쓰게 되면 ‘자기만의 언어’를 가질 수 있다. 자신의 언어를 가진 사람은 타인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분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영상과 글로 타인의 삶에 영향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 모드로 전환된다.


글은 재능으로 쓰는 것이 아니다. 72  


문학장르(시,소설)는 어느 정도 타고난 재능이 필요할 수 있다. 한강 작가나 권여선, 최은영 같은 작가의 글을 보면 이건 배워서 쓸 수 있는 영역의 문제가 아닌것 같다. 하지만 그런 주옥같은 문장이 없는데도 나의 글이 잘 읽히고 있다면 그건 바로 ‘전달력’이다. 나의 생각이 문장으로 잘 전달되기 때문인데, 일상에서 우리가 쓰는 글은 문학적 가치가 아닌 생각을 글로 전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활자를 그럴싸하게 늘어놓는 것이 아닌 바로 '생각을 옮기는 일'이다. 일상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접하고 경험하면서 느끼는 불편함,  분노, 설렘, 기쁨과 같은 강도 높은 감정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이 바로 생각 훈련이다.


얼마전 글쓰기 모임에서 쓴 글이 호평을 받았다. 3월 말 지인가족과 자연휴양림을 찾았는데 숙소 앞 커다란 벚나무가 아직 몽우리를 피우지 못한 채 널찍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보고, 저 나무가 내 나무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던거다. 그때의 마음을 글로 옮겼다. 2천자 내외의 그 글이 공감을 받은 데에는 이 책에서 말한 나의 생각이 잘 ‘전달’된 글이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으로 솔직함이다.


독자를 매료하는 솔직함은 바로 ‘작가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솔직함’ 이다. 얼마 전 읽은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함께 읽은 분 중 “이 책을 내가 왜 읽어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책 속 여인은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자신의 은밀하고도 내밀한 감정들을 굉장히 솔직하고도 정확한 언어로 이야기 하는 책이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가 공감되지 않음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 인간이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자신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가 느꼈던 쓰나미같은 감동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가타부타 설명을 이어 드렸다. 솔직함이 무기일 순 없지만 솔직함 속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인간의 보편성 안에서 나는 잠시나마(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쉬어갈 수 있었다. 그런 의미로 ‘솔직함’이 주는 작품의 감동은 책을 읽을 수 있는 크고도 강력한 동기가 된다. 한가지 더, 글 속에서 솔직하고 자유로워 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을 마치 약점이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말라는 조언이다. 그저 자신의 ‘유약한 면을 알아차리고 그런 나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야기 하는 작가의 말을 통해 앞으로 내가 쓸 글들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겠다.


내가 인상적이었던 3가지를 옮긴 것 뿐, 책은 글쓰기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일상에서 쓰는 글 중 형식이나 내용에 따라 어떤 것들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지, 글이 글로써 생명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넣고 빼야 하는지. 뒷부분 ’퇴고‘에 관한 언급은 따로 타이핑을 해서 보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디테일하고 성의 있게 느껴졌다.


책 서명의 ‘어느 날‘이라는 문구에서 희망을 찾길 바란다. 글을 쓰기 위해, 아니 글을 잘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아마도 ’어느 날‘ 그 글들이 그대들의 곁으로 가 손잡아 줄 것이다. 그 날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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