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이슬아 수필집 2018 - 이슬아
현슬이는 그렇게 속삭이며 자기 이름을 적지만 그 순간도 즉시 과슬이가 된다. 매일 용기를 내서 썼다.
-서문 중에서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물론 마음먹고 감추는 것은 응당 보이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한 지인이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고 한다. 브런치 작가는 물론, 실제 책을 출간하기까지 했다. 그의 행보로 보아 책과 글을 가까이하는 사람임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분이 출간한 책을 보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독서모임을 오래 해도 책의 메시지가 온전히 가닿지 않는 경우도 있고, 또 아무리 책을 많이 읽었다 해도 결코 더 나은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서 보이지 않는 것은 그런 유의 문제만은 아니다. 바로 ‘자신의 것’이 없다.
이 책의 저자 이슬아 님은 현재의 자신과 미래, 과거의 자신을 각기 다르게 호칭한다. 단순하게 보면 재미있게 느껴지지만 현옥(내 이름이다)이가 과옥이와 미옥이를 그려낼 수 있다는 지점들이 무척이나 의미 있게 다가왔다. 우연찮게도 지금 나의 이름에 ‘현’자가 들어있어 매 순간 현옥이로 살고 있지만 이따금 과옥이와 미옥이를 마주하는 일이 색다르고 또 기쁘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과옥이와 미옥이를 만나는 것은 단순히 과거와 미래를 떠올리는 것만이 아니었다.
지금의 현옥이가 만들어진 과정에서의 과옥이를 떠올려보고, 그런 현옥이가 하는 일들을 지켜보며 미옥이를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현옥이가 정말 중요하다. 현옥이가 지금 어떤 삶을, 또 어떤 것들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과옥이도 미옥이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옥이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나를 이루고 있는 지금의 나의 것’이 되겠다. 앞서 이야기한 지인을 이루고 있는 것들을 떠올려보면 선뜻 이것! 하고 보이는 것이 없다. 그것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 또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응당 필요한 면 들이다.(아닐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책을 접할 필요는 없다. 단, 어느 정도 책을 읽으면 그 사람이 추구하고, 생각하는 지점들이 다른 이에게도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그에게서 보이지 않는 이것! 이 이 책 <이슬아 수필집>에는 확실하고도 진하게 보인다.
단순하게 ‘솔직’한 것만을 토로하고 싶지는 않다. 전반적인 그녀의 에세이는 솔직함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 그 솔직함 아래를 단단히 받치고 있는 ‘그녀만의 것’이 더없이 빛을 발하는 글들이다. 그녀의 글을 보면 그녀가 보인다. 그녀가 갖고 있는 무엇이 보이고, 그것으로 인해 그녀의 삶이 어떤 갈래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가 그려진다. 아시다시피 이 글들은 그녀가 ‘메일로 매일 쓴다’는 슬로건 아래 하루 한편의 글을 독자에게 메일링 한 글들이다. 편당 500원, 주 5일로 상정했을 때 한 달 만 원이라는 금액을 내면 매일 자정 직전 그녀의 글, 그러니까 전혀 수정되어 지지 않은(그녀가 이 방법을 채택한 이유는 수입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글을 편집자의 손을 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글을 만날 수 있다. 당시만 해도 꽤 파격적인 메일링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현슬이가 지향하는 지점과 그 지점들을 향해 나아가는 현슬이가 보인다는 점이다. 글의 시작에 남긴 말 중, ‘매일 용기를 내서 썼다’라는 말속에 현슬이를 이룬 현재의 것이 명징하게 보인다.
그녀의 글이 지금에 와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받는 이유는 그녀만의 것이 잘 드러나는 덕분이다. 껍데기도 없고, 거짓도 없는 아연실색할 정도로 솔직하고 또 묵직한 그녀의 글은, 글로서 그녀를 대변한다. 그녀가 써낸 장편소설 <가녀장의 시대>만 보아도 단순히 소설이라는 장르 안에서도 그녀라는 사람이 온전히 보이는 것이다. 온전하게 보이는 그녀는 작가뿐만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매력을 뒤집어쓰고 있다. 그렇게 매력 있는 그녀가 쓰는 글은 오죽할까. 그녀가 가진 매력은 읽는 이나 그녀를 보는 이들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보는 인간 이슬아는 매우 다정한 사람이다. 그 다정함들이 수천, 수만 가지의 글자로 쪼개져 글이 되고 책이 되었다.
그녀의 다정함이 글이 되는 과정은 단순히 “나는 글이 쓰고 싶어”, “책을 내고 싶어”가 아니다. 자신의 글에 대한 믿음과 책임감, 또 독자를 향한 애정과 존중이 밑바탕 된 한 편의 선물 같은 글이다. 그런 따뜻한 글을 만나고 나면 그 하루의 나, 그러니까 이제 곧 과옥이가 될 현옥이가 명징하게 그려진다.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현슬이의 삶을 바라보며 언제고 내가 글을 쓴다면 그녀와 같이 자신의 것들을 애정하고 애정 하는 만큼의 진심과 책임감을 갖고 글을 써야지 마음먹게 된다.
용기라는 것이 겁내지 않는 마음만은 아니리라. 매 순간 자신의 자리와 자신의 말이 어떤 힘을 갖고 또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 글 속에 녹여내는 무수한 상황들을 자신의 것 안에서 여러 색을 물들여 밖으로 꺼내 놓는 것에 대한 일종의 믿음과 다짐이었으리라. 그녀의 글은 현옥이의 삶을 꽤 진지한 모드로 돌아보게 하고 현옥이가 하는 말과 글들에 보다 더 진한 의미를 밀어 넣어준다. 그녀처럼 나 또한 ‘용기를 내서’ 매일 쓰는 삶을 선택했다. 그 삶은 분명하고도 지치지 않는, 나를 포함한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메아리를 던져주기 위해 부단히 나의 것을 만드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