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해져야 하는 이유, 엄마라는 존재에 대하여
나에게는 초1 어린이가 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 제대로 신경 써 준 적도 없던 엄마로 살다가 유난스럽게 K초딩 입학에 맞춰 휴직을 했던 나. 언제나 가족보다는 일이었고, 일하는 게 힘들지만 즐겁던 그런 삶이었는데 오랜 고민 끝에 아이를 위한 1년을 갖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1년의 절반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시간으로 탈바꿈되었다.
온 가족이 모이면 어린이의 눈망울과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고,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모두가 행복했다. 그런데 유난히 길었던 이번 여름은 어린이보다 그의 엄마에게 즉, 나에게 온 가족의 시선이 머물렀다. 수시로 가족들이 집에 방문했고, 아무 일도 없으면서 북적거렸다. 두려움과 걱정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얼굴들 사이로 어느샌가 어린이는 뒷전으로 물러났다.
병명이 무엇인지, 어떤 병인지 알 수는 없었겠지만, 아이는 알았다. 어른들이 나누는 작은 대화들 사이로 무언가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이 펼쳐지고 있구나라고 말이다. 이 결과를 알게 된 건 불과 얼마 전이었다. 그 길었던 여름이 다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이 되어서야 아이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종종 오빠와 나, 우리 부부에게 사랑의 편지를 써준다. 엄마는 늘 예쁘고 사랑하고, 아빠는 늘 돼지다. 그런데 여름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된 이후부터 엄마와 아빠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에는 오래오래 살아야 해라는 말이 담기기 시작했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다. 늘 약을 달고 살기에(갑상선으로) 건강에 대한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고, 건강해야 해라는 말을 잘하는 친구라 그런 맥락이라 느꼈다. 그런데 그 빈도가 잦아지고, 강도가 커지는 모습에 걱정이 들기 시작했었다. 담임 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했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였다. 어린이 친구는 엄마의 아픔을 알고 있었고,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다녀야 한다는 것. 그래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 그렇기에 엄마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씩씩하게 버텨왔었다. 새 학기의 학습 활동에서도 엄마가 아파서 느껴지는 슬픔, 우울함, 걱정이 많았다. 가족에 대한 소중함이 매우 크게 작용하고 있었고,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엄마의 부재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는 양상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쌓아가기까지, 그 긴 여름동안 아이는 혼자 슬픔과 불안을 감내하고 있었나 보다. 어른들은 그것도 모르고 우리의 대화를, 우리의 행동을,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다. 터부시 했던 어린이의 감정은 그렇게 슬픔 속에 고여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내가 내 몸을 생각하는 건, 나의 어린이를 위함이나 같은 건데. 내 몸을 생각한다고 해놓고 결국 내 소중한 아이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겠다 생각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알아서 다행이지만 너무 속상하고 미안했다.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전문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현재 일반적이지 못한 양육 상황 속에서, 내가 아이에게 상처를 덜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아이는 그 무더웠던 여름에 생긴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는 방법을 말이다.
건강해져야 한다. 아이가 자라서 지금의 이 상황을 이해하는 날이 왔을 때, 지금의 상황들을 웃으며 과거형으로 말할 수 있는 날이 되어야 한다. 지금의 날을 이야기하며 슬퍼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보다 더 건강해지고 보다 더 밝아져야겠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