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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남미녀모친 Jul 21. 2024

내 마음 속에는 운주당이 있는가?

말의 품격 by 이기주 작가


   책은 나온 지 꽤 되었다. 베스트셀러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나는 읽지 않았다. 자기 계발서가  재미있기도 했고, 당장 재테크가 더 필요했으니까... 그러다 최근에 이 책을 빌렸다.

   첫 장부터 난관이다. 삼국지라니. 삼국지를 열 번은 읽어야 세상을 안다.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 역사를 논하지 마라 등.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삼국지는 나에게 무서운 책이 되었다. 책은  시작부터 나를 주눅 들게 했다. 목차는 더하다. 한자어다. 나는 초등학생 내내  5차 교육과정을 받은 한글세대이다. 교과서에는 한자 병용되지 않았고, 한자는 수능에 나오지도 않았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수업시간만 배워서 대강 알지만 대서툴다.


   그래도 용기 내어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천천히 글을 읽었다. 맞장구도 치다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어느 대목에서 책이 나를 빤히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는 사이 남을 웃겨야 한다는 강박감은 막말을 낳고, 무조건 튀어야 한다는 조바심은 망언으로 이어진다. 말에 대한 고민은 잘게 부스러지고 사방으로 흩날려 앙상한 뼈대만 남았다.
말의 품격 p.151

   나는 웃기는 걸 좋아한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내 덕에 분위기는 화기애애 해지지만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는 결국 우스운 사람이 었다. 그 이미지가 싫어서 분위기를 띄우는 일은 점차 그만두다.

   나중에 아이 어린이집에서 이 친구 엄마들과 친해지는데 꼬박 6개월이 걸렸다. 말을 걸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말을 걸어도 딱 대답 정도만 했다. 나중에는 잘 지냈지만 농담을 줄인 덕에 사람과 친해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 우스운 사람이었지만 누구와도 쉽게 친해졌던 예전과는 달랐다. 정답은 없다. 다만 선택의 문제였다. 정도의 적절함을 찾는 것이 나에게는 참 어려운 과제다.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닿으려는 진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가슴 한구석에 작은 운주당을 세워봤으면 좋겠다.
지금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은 당신의 입이 아니라 어쩌면 당신의 귀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말의 품격 p.39

  종종 내 자리에 와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있다. A는 주로 오전에 다. 오전에는 그날의 가장 중요한 업무를 집중적으로 마치기 위해 마음이 바쁘지만 아쉽게도 나에게는 대화를 끊거나 거절하는 능력치는 별로 없다. 나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생각을 가끔 넣어준다.

   A 업무 관련 의를 하러 왔다가 자신의 일상이나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시간이 되면 일을 하러 간다.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 사람이라고 판단해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가장 최근에는 " 부장님한테 상담비라도 내고 와야겠어요."라고 배시시 웃으며 왔다가 삼십 분 뒤에 갔다.


    퇴근 무렵에는 아래층 동료 B가 온다. 직장 최고 원로인 그녀는 주로 업무의 고충과 다른 동료의 험담을 내게 쏟아붓는다. 나는 B옆에서 2년간 했기에 그래도 현재 조직에서는 B나름 잘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가까워도 힘들지멀어도 곤란하다. 작년에는 오전에 와서 한 시간씩 이야기했는데 지금은 근무하는 층이 달라져서 이틀에 한두 번 온다. 무슨 말이든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10분은 기본이다.


   다른 동료들도 가끔 온다. 대화는 사람이나 일에 관한 것이다. 대개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며 나의 생각을 덧붙이는 재미없지만 결국에는 긍정적인 뉘앙스 대화를 마무리한다. 말이란 게 돌고 돌기 때문에 나에게 어떻게 돌아올지는 모를 일이다. 더욱이 지금처럼 소규모 인원이 일하는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을 되돌아온다. 말의 품격 p.126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다 보면 정작 내 일을 할 시간은 좀 벅찰 때가 있다. 생각해 보면 나도 한때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되는 동료에게 업무 고민을 나누곤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도 그날의 스트레스는 충분히 해소되었다. 동료들도 나와 이야기를 하면 스트레스가 해소될까? 그랬다면 다행인데, 음... 그래도 이것 하나는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종종 가슴에 손을 얹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 말과 글과 숨결이 지나간 흔적을, 그리고 솔직함과 무례함을 구분하지 못한 채 사는 건 아닌지를, 말이라는 악기를 아름답게 연주하지 않고 오로지 뾰족한 무기로만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를.
말의 품격 p.103


P.S. 운주당은 이순신 장군의 서재겸 집무실로 장군과 군졸, 백성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소통하며 전략을 수립했던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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