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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사 Dec 22. 2023

서대문구, 근현대 아파트의 보고

경의선 여행의 시작점에서 만난 아파트의 역사 

여행의 시작은 서울역이다. 서울역은 대한민국 제1의 간선 경부선의 시작점이다. 고로 흔히들 경부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서울역에서 시작하는 노선은 하나 더 있다. 그 이름은 '경의선'이다. 경의선의 '경'과 '의'는 각각 서울과 신의주를 의미한다. 신의주는 한반도의 서북쪽 변경지대에 위치한 국경도시로써 중국 길림성으로 향하는 관문이다. 그렇기에 경의선은 경부선과 함께 한반도를 종관하는 주요 간선의 역할을 하였다. 경부선과 동일한 위상이었던 것이다. 

조선열차시각표 | 조선총독부 철도국 | 1938년 2월

일제 강점기 경의선의 시각표를 보자. 신경(현재의 장춘), 봉천(현재의 심양), 안동(현재의 단동) 등 한반도를 넘어 중국의 행선지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즉 국제 열차까지 다녔던 위상의 노선이었다는 것인데, 그 위상이 어찌하여 낮아졌을까. 그야 분단과 전쟁 때문이다. 허리가 끊긴 경의선은 한반도를 종관하는 중장거리 간선에서 서울과 파주를 잇는 단거리 지선으로 격이 낮아졌다. 운행하는 열차도 비둘기호, 통일호와 같은 완행 열차가 되었다. 현재도 다양한 등급의 열차가 다니는 경부선과 달리 경의선에는 광역 전철만이 운행한다.


서소문아파트

씩씩하고 두려울 것 없는 난쟁이


낮아진 위상을 반영하듯 경의선 열차는 거대한 서울역의 한 구석에서 타야 한다. 서울역을 출발한 열차는 천천히 속도를 내기 시작하며 처음으로 건널목 하나를 맞닥뜨리는데, 그 이름은 '서소문건널목'. 이 건널목은 서울 시가지에 몇 안 남은 건널목으로써 '철도 덕후'들에게 입소문이 난 모양이다.

서소문아파트 (2023년 12월 촬영)

그 건널목에서 철도변으로 난 골목을 조금만 걸으면, 작지만 유독 눈에 띄는 아파트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아무래도 선형으로 지어진 특이한 형태가 시선을 끄는 듯하다. 


이런 형태가 나오게 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만초천'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한때 '욱천'이라고도 불렸던 만초천은 서대문구 안산에서 발원하여 경부선 철도변을 따라 용산으로 흐르는 하천인데,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구간이 복개되었다. 뱀 모양과 같다 하여 사행천(蛇行川) 이라는 말이 쓰이듯, 하천은 구불구불한 형태로 흐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소문아파트는 그러한 하천 위에 지어짐으로써 위와 같은 선형의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이곳에는 4층이 없다고 한다. 즉 3층 바로 위가 5층이라는 것인데 이는 한국 사람이라면 잘 알다시피, '사(四)'가 '죽다'라는 의미의 '사(死)'와 발음이 같아 사용을 기피하는 현상 때문이다. 연식이 있는 아파트인지라 미신이 큰 영향을 끼쳤던 그 때의 시대상 또한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서소문아파트가 자리한 곳은 경찰청과 농협생명이라는 높디 높고 그 위상도 높은 건물들 사이에 끼어 그 기세를 펴기는 어려운 위치인 듯하다. 하지만 서소문아파트는 씩씩하고 두려울 것 없는 난쟁이를 보듯,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당당히 뽐내고 있었다.


서소문아파트 (1971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6길 59 (미근동)


충정아파트

사라질 위기에 처한 신호탄


아마도 글에서 다룬 장소 중 가장 유명한 곳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앞서 둘러본 서소문아파트에서 충정로 쪽으로 와 도로변을 따라 걷다 보면 회색빛을 띄는 여타 건물들과는 달리 녹색으로 칠해진 것이 특징인 한 아파트가 눈에 들어온다. 그 이름은 충정아파트.

충정아파트 (2023년 12월 촬영)

우리는 공간 유산으로써 앞으로 수많은 아파트들을 둘러볼 것이고 이미 한 채의 아파트를 둘러보았다. 그렇다면 공간 유산으로써의 아파트 답사에 있어 충정아파트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현대 한국의 주거양식을 대표하는 아파트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1938년 지어진 이곳은 한국 최초의 아파트이자 현존하는 최고령 아파트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시선으로야 오래되고 낙후된 아파트이고, 이제는 철거를 논하는 지경까지 왔지만, 당시에는 상하수도, 수세식 화장실 등을 갖춘 최첨단 아파트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호텔, 북한군의 인민재판소 등으로 수 차례 용도가 변경되다 다시 주거 시설이 되었고, 칠십 년이 넘는 세월동안 도로 확장을 위해 일부가 잘려나가며, 불법 증축이 이루어지는 등의 풍파를 겪으며 현재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그렇게 역사적 가치를 보유한 유산으로써 꿋꿋이 자리를 지켜온 충정아파트도 결국 철거를 면할 수 없다고 한다. 안전등급 E등급을 받을 정도로 철거가 시급한 상태이지만, 그래도 거주 공간의 역사의 한 축을 이루었던 유산이 사라지기를 앞두고 있는 만큼, 변화의 바람에 거역할 수는 없어도 기록 하나 남겨두는 것은 어떨까. 내가 늘 말해오듯 말이다.


충정아파트 (1938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 30 (충정로3가)


미동아파트

놓칠 뻔 했던 공간유산과 '오래된 아파트'의 생경함


그렇게 충정아파트를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하던 도중, 내게는 또 하나의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한 눈에 봐도 연식이 있어 보이는 모습은 나로 하여금 카메라를 들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사전 조사 없이 갑자기 맞닥뜨리게 된 아파트인지라 글에서의 분량은 상대적으로 적다. 


옆에 있는 충정아파트가 너무나도 압도적인 연식을 지니고 있어 그렇지, 이 아파트 또한 꽤나 연륜 있는 아파트이다. 이 아파트의 사용승인년도는 1969년으로 서울 시내의 웬만한 '오래되었다' 하는 아파트들과 맞먹거나 앞선다. 

미동아파트 (2023년 12월 촬영)

특유의 회색빛 외관은 한국보다는 구소련을 위시한 동유럽의 아파트를 연상시킨다. 사실 앞서 본 서소문아파트에서도 홍콩의 정취를 나 뿐만 아니라 느낀 이들이 몇몇 있을 것이다. 1990년대와 21세기의 단지형 아파트의 모습에만 절여져 있는 우리에게는 이러한 '오래된 아파트'의 모습에서 생경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미동아파트 (1969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7길 9 (충정로3가)


좌원상가아파트

조명받지 못한 타이를과 또 다른 여한


주거 시설과 상업 시설을 한 건물에 넣겠다는 발상, 일반적으로 대중들에게는 중구에 위치한 세운상가가 그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아무래도 그리 알려져 있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튼 사실은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위치한 좌원상가가 그 시초라고 한다. 1966년 준공으로 1968년 준공된 세운상가보다 분명히 건축 시기가 이르다.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라는 역사적인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나 그 가치를 대중들에게 조명받지 못한 셈이다.

좌원상가아파트 (2023년 12월)

좌원상가 일대 또한 프롤로그에서 언급했던 '기록하지 못한 여한'이 남아있는 곳이다. 좌원상가 앞에는 경의선 가좌역이 있는데, 가좌역은 전철이 개통한 이후에도 한동안 과거의 역 건물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그 건물은 얼마 가지 않아 철거되고 만다. 매일 보던 풍경이었지만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해 흐린 기억 속에만 남아버렸다는 것이, 나의 또 다른 '기록하지 못한 여한'이다. 그래서일까, 이번 답사 중 좌원상가 일대의 사진을 가장 많이 남겨놓은 듯하다. 좌원상가 또한 철거를 앞두고 있다. 글을 쓰는 시점으로부터 거의 2년 간 미루고 미루다, 이러다가는 그 여한이 반복될 것 같아 마침내 카메라를 들었다.


좌원상가아파트 (1966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수색로 42 (남가좌동)


마치며


한편 본 글에서 다룬 아파트들 중 미동아파트를 제외한 모든 아파트들이 '재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철거를 앞두고 있다. 마지막에 앞서 내가 자주 사용하며 충정아파트를 보며 남겼던 문장 하나를 스스로 인용한다.


"변화의 바람에 거역할 수는 없어도 기록 하나 남겨두는 것은 어떨까."



공간기록

살아가는 공간에서 가치를 찾고, 그 유산들을 기록해나갑니다.


철사

사진 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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