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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밥 Oct 29. 2024

첫사랑과 첫사랑.

가끔 떠올리는 기억


오작교를 건너는 기분은 어떤 까.




만남이 주는 설렘은 사랑이 아니더라도 충만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이라면 이것만큼 시작부터 끝까지 가득 차 있는 것도 드물겠지. 거기에 '첫'이라는 관형사가 붙는다면 조금 넘쳐날 수도.


첫사랑과의 첫사랑. 첫사랑과의 끝사랑. 한 때 늘 술자리에서 회자되던, 과연 성공한 자가 있을까 싶은 첫사랑에 대한 단골 주제는 둘 중 무엇이 더 낫냐는 것이었다.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전제가 바탕인 무리들. 녀석들은 매번 '첫사랑과의 끝사랑'은 첫사랑이라는 순수 주제를 비껴가는 거라 토를 달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사랑에 근접한 자가 없어 그저 외로운 넋두리 정도를 넘지 못했었다. 그렇다면 '첫사랑과의 첫사랑'을 논하던 이들은 어땠을까. 첫사랑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외치며 정작 본인과의 어울림을 슬며시 화두에 던져 넣던 어설프고 유치한 무리 정도였다. 가득 채워지지 않을수록 좋았던 젊음에서 그래도 돌이켜보면 유치할 수 있을 때 꽤나 유치했던 건 더 유치하지 못함이 아쉬울 만큼 좋은 거였다.


사실 우리 대부분이 첫사랑을 짝사랑으로 겪었기에 이렇다 저렇다 할 논제 거리도 안되었지만, 그래서 더 열을 올리며 떠들어 댄 것이 유치하면서도 즐거웠던 게 아니었나 싶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에 유치함도 지금 보면 기껍다. 이젠 억지로 뱉어내도 그때만큼의 순수한 유치는 없다. 여유가 드물어진 세상에서 그건 유머로도 승화되지 못한다. 숙련된 개그맨의 영역 같은 거랄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지만 첫사랑엔 결코 적용되진 기에 모두가 내 첫사랑은 성공의 기미가 보인다며 기약 없는 여지를 보이 했다. 하도 첫사랑 얘기들을 읊어대서 마치 사정이 생겨 우리들끼리만 만나게 된 커플 모임 같은 생각도 종종 들곤 했다. 때론 친구에 친구나 그 친구에 친구를 대면하는 자리에서도 주제는 첫사랑, 짝사랑, 엇사랑들을 크게 빗겨 나질 못했으니 대화는 무르익음 보단 지겨움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표현은 솔직하지 못했고 감정은 진솔했다. 생각에 방이 많지 않던 그땐 그저 마음 졸이며 바라보거나 근처를 맴돌 뿐이었다. 알아봐 주길 바라는 지금으로 성장했지만 혹시나 눈치 채진 않을까 마음 졸이던 때였다. 가끔은 직선적인 생각과 감정이 그리울 때가 있다. 삶 따라 머릿속 방이 늘어났지만 경험의 축적들이 거슬린다는 느낌을 더러 받는다. 무겁고 답답하지만 으레 넘기며 살아간다. 큰 돌덩이가 얹힌 것 같은 무거움은 아니며 오히려 가벼운 풍선 하나가 날아가지 못하게 묶여있는 거와 비슷하다. 설렘 같은 작은 감정 하나를 빼고 살아갈 뿐인데, 어째 나사 하나 빠진 비행기처럼도 느껴진다.


허무한 것 같던 그 논쟁들이 미련 없이 떠오르는 추억의 한편을 차지한 이유는, 술이라는 매개체를 차치하고서라도 그런 결론 없는 수다가 주는 가볍지만 즐거웠던 설렘 때문인 것을. 그때는 물론 몰랐을 테고 지금까지도 알지 못하는 영역이 된 건 한편으론 다행인 것도 같다. 살다 보니 정답을 너무 알아간다는 것에 지칠 때가 있다. 육체의 피로도는 감정의 지침에 견줄 바가 못된다. 그래서 그 시절 첫사랑 같은 청량감이 종종 그리워지는 건지도.




쳐다볼 수 없는 부끄러움이었을까? 그러기엔 눈이 너무 예뻤다.




누구나 기억 어디쯤에 녹아 있는 첫사랑이라는 단어는, 사실 내겐 이도 저도 아닌 그저 그런 것쯤의 애매모호한 단상으로 알쏭달쏭하게 저장되어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지 알쏭달쏭하게 되어버린 건지는 알 수 없다. 한쪽이 너무 강하면 물 빠진 모래알 같은 게 첫사랑이다. 움직일 수가 없다. 더군다나 나는 약 중 약에 기운을 타고나 끊임없이 어필을 해도 유치한 기운을 넘지 못했었기에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흔해 빠진 고백은 첫사랑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그저 자잘한 기억들을 주섬주섬 만들고 안달 나서 애지중지 떠올리는 반복에 깊이 빠질 뿐. 뚜렷한 결과 따위는 없이 모호한 기억들만 켜켜이 쌓아 가면서 말이다. 어쩌면 불현듯 닥쳐올 외로움을 벗어날 해독제처럼 애써 만들고 없애는 단순한 감정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선명함은 좀 더 또렷하고 구체적이다. 내게 남은 기억은 눈이 무척 예뻤다는 것. 알쏭달쏭해져 버린 지금도 설레고 반가운 기억에 들어간다는 것. 이렇다 할 고백 한 번 없는 짝사랑에 편중된 외기억이지만 돌아보면 아련한 뭔가가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기억의 반가움이 때때로 삶에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는 것.


첫사랑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느낀 반가움은 어쩌면 한두 개 정도의 감정만으로 살아가는 안쓰러운 나에 대한 기억의 면역력 덕분일 거다. 지금은 낯설어진 설렘도 오래전에 잃어버린 즐거움도 목표를 향한 흥분도 아직은 조금 살아 있으니 잊고 살지 말라고. 그게 옛 사진을 보며 갖게 되는 감정에 조우든 옛 추억을 되새기며 갖게 되설레는 기억이든. 아직은 건드리면 꿈틀거린다고. 그러니 건드리고 밟아보라고.


어떤 기억은 때때로 오작교를 걷는 기분을 선사하지만 기억의 감가상각은 나이와 정비례 함이 분명하기에 연례행사 같은 무딘 발걸음으로 감정 또한 오작교를 더디게 걷고 있을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 아이의 눈이 예뻤을 거라 기억하고 싶은  아닐까.


비밥.

그 더딤 속에도 설렘은 아직 들어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언저리. 차갑고 시린 바람이었다.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진 철길 하나를 두고 휑한 벌판뿐이었는데 언제나 특유의 차가운 기찻길 냄새를 지나쳐 가야 했다. 그날의 바람 냄새가 더 각인되는 건 첫사랑과의 마주침. 아니 지나침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이상하고 요상한 것 중 멀리서 뭉개져 보일 때도 찰나에 쓱 지나칠 때도 첫사랑은 묘한 기운을 뿜어내어 다시 한번 쳐다보게,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들고야 만다.


그저 쓱 지나기엔 아쉬웠던 그 아이의 잔상과 언젠가 꿈에서 본듯한 머뭇거림이 고개를 돌려세웠다. 소설 같은 시선의 마주침은 멀었음에도 여전히 예뻤던 그날을 기억에 남겼다. 꽤나 먼 거리를 지나고서야 우린 우연처럼 고개를 돌렸고 어색한 듯 다시 멀어져 갔다. 기억에 선명도는 아직 푸릇푸릇하고 감정에 떨림은 여전히 살아있다. 내게 안긴 기억인지, 내가 붙잡은 기억인지, 그 생각도 그 생각에 시간도 모두 두근거렸던 그날.


그리고, 조금 무딘 것도 같은. 그래도, 여전히 설레는 것 같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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