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했던 그 시작 ; 수습기자(1)
"안녕하세요, 저는 안동대학교 신문사 사회부 OOO 기자입니다~"
기자가 된 후 나 자신을 소개하는 한마디이다. 물론 지인들이나 대뜸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나 자신을 소개하지는 않는다. 취재를 위해 인터뷰 대상을 물색할 때 사용하는 멘트다. 조금이라면 조금이고 많다면 많이 바뀐 내 삶이다. 먼저 연락하는 것을 귀찮아해 대부분 지인들의 연락을 받는 목적으로 사용했던 내 휴대폰은 이제 업무를 위해 내가 먼저 전화를 거는 도구로 변모했다. 인생 처음으로 내 이름과 직책을 걸고 내미는 명함도 생겼다. 취재에 협조해 주길 바란다며 나 대신 무게감을 잡아주는 기자증까지. 속된 말로 좀 간지(?)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참에 얼마 되지 않아 내세울 건 없지만 한 번쯤은 얘기하고 싶었던 내 기자 생활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지난해 9월 중순에 신문사 지원 후 면접을 보고 10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면접 당일 날 어쩌다 보니 과제를 위해 지역축제를 방문했다 지갑을 잃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가는 길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면접 보기로 했던 OOO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제가 지갑을 잃어버려서 면접에 불가피하게 10분 정도 늦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면접 때부터 지각이라니.. 끔찍했다. 멘탈이 금이 간 상태로 본 내 면접은 더 최악이었다. 말로만 듣던 압박면접을 직접 당한 것은 처음. 내 면접 준비가 허술했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면접은 끝났다. 원래는 면접이 끝난 후 동아리방으로 가 전공 공부를 하다 밤늦게 귀가하려 했던 나지만 그날만큼은 말 그대로 멘탈이 나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집으로 갔다. 다행히도 면접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냥 인력난 때문에 뽑은 것이겠거니 싶다. 그렇게 내 기자 생활은 순탄치 못하게 시작됐다.
기초 교육을 받고 연습 차 원고도 써보고 교열도 받아본다. 10월 한 달은 평안하게 지나갔다. 조금 힘들었던 것이라고 하면 마감 주에 모두가 달라붙는 오탈자 검수. 그래봤자 8면짜리 월간신문이지만 글자로 빽빽한 편집지 위를 글자 하나하나 훑어야 한다.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 더 고통스러운 건 따로 있다. 중간중간 보이는 내 눈에는 실수(?)라고 보이는 것들이 정말 실수인지 아니면 허용되는 표현인지 고민의 연속이다. 그렇게 다른 정기자들보다 약 2배의 시간이 걸려 8면짜리 편집지를 모두 훑어본다. 마침 중간고사 기간과 겹쳐서 공부하던 도중 환기 차원에서 갔던 것인데 환기는 무슨... 더 큰 고통만 받고 나왔다.
본격적인 활동은 11월부터였다. 12월 초에 발행될 신문에 실을 기사들을 준비하기 위해 가안을 찾아야 했다. 낯설었다. 남들보다 문제의식이 둔감한 편이라 평소 학교생활 동안에도 큰 불편함을 느낀 적도 없어 대학 지면에 실릴 기사거리를 찾아오는 건 힘들었고 지역과 우리 대학에 연관된 사회 지면 가안을 찾아오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겨우 찾아간 5~6개 가안들 중 채택된 것은 고작 하나. 지역에서 개최되는 시민공유회 기획취재 기사였다.
의문이었던 점은 가안이 채택됐다는 소식도 취재계획서를 마감 이틀 전에야 쓰라고 얘기해 준 사수를 통해 알게 됐다는 점이다. 왜 안 알려주었는지 아직도 이해 불가...
*취재계획서
= 말 그대로 취재를 어떻게 할 건지 계획서를 작성해 편집국에 제출한다. 여기에는 기사의 서-본-결, 핵심 주장과 근거 등이 들어간다. 따라서 취재계획서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편집국과 기자 모두에게 득이다.
아무튼 취재계획서를 쓰라는 말에 써보았다.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사수가 예시로 보내준 취재계획서를 그저 따라가기만 했다. 돌아오는 답변은 "잘 썼네요!"와 몇 가지 소소한 피드백. '이게 맞나...' 싶은 마음에 신문사 최고선임 기자를 찾아가 피드백을 요청했다. 역시나 신랄하게 물어뜯어주었다. 내 심리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꿰뚫고 있었다. 마침 이 최고선임 기자는 면접 때부터 내게 압박을 가했던 사람이다. '이게 짬이구나..' 생각하면서 취재계획서를 수정..
12월호에 실릴 기사들 중 내가 맡은 기사는 2개. 짧고 간단한 보도 기사 하나와 꼼꼼한 준비를 요하는 기획기사 하나였다. 애석하게도 보도 기사 취재와 기획 기사 취재 모두 마감주를 코앞에 둔 22일에 잡혀있었다. 두 기사의 핵심이 되는 행사가 모두 22일에 있었기 때문. 오전 수업을 마치고 신문사로 가 카메라와 수습기자증을 챙기고 보도 기사 취재를 갔다. 당황스러웠던 점은 아마도 본인이 동행할 거라던 보도 기사 취재를 다른 선임 기자가 맡게 됐고 난 그것을 취재 전날에야 알았다는 것.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나라는 존재 자체를 거들떠도 보지 않은 것 같다.
오후에 있던 보도 기사 취재는 필자가 재학하는 학교에서 작가들을 초청해 개최하는 북콘서트를 취재하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만져보는 카메라였다. 물론 교육 때 만져보긴 했으나 오늘 내가 찍어가는 사진이 그것도 컬러로 지면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니 사진에 대한 부담감이 꽤나 컸다. 나와 선임 기자 둘 다 수업 일정으로 인해 행사를 끝까지 팔로우하지 못했고 난 결국 사진에만 몰두하다 강연 내용을 다 놓치고 말았다. 아무리 단순 보도 기사라고 하지만 개괄적인 내용은 들어가야 하거늘... 정말 다행히도 선임 기자가 내용을 요약해 보내주었고 덕분에 보도 기사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마감할 수 있었다. 그 선임 기자는 지금 우여곡절 끝에 신문사 최고봉인 편집국장을 맡아 신문사를 이끌어 가고 있다. 필자와 동갑인데다 개방적이고 협동적인 분위기에서 같이 일하는 중이다. 배울 점도 많고 참으로 고마운 친구다.
앞서 언급한 북콘서트 기사 본문이다. 정말 영양가 없는 내용의 기사이지만 그 결과물이 궁금하다면 여기로
https://news.andong.ac.kr/news/articleView.html?idxno=1257
큰 문제였던 것은 기획 취재 기사. 내용이 길어지기에 다음 편에서 얘기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