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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원 Nov 16. 2023

비가 오는 수능날이라니

일상 12


수능 때에 비가 온 적이 있었나? 아침에 커튼을 걷자마자 튀어나온 말이었다. 글쎄, 온 적 없었던 것 같은데. 뒤에서 들려오는 대답을 듣자마자 아... 하며 한숨이 흘렀다. 땅이 질척일 텐데. 기껏 예쁘게 입고 나온 따뜻한 코트가 젖을 텐데. 괜찮았으면 좋겠지만 어쩌면 아플 마음 생채기가 많이 따가울 텐데, 왜 하필 오늘 비가 올까. 아빠의 출근길을 따라 종종걸음으로 나오며 우산을 챙기던 차에 쫓아 나온 목소리가 "오늘 이 시간이면 사람 많을 거야!" 하고 주의를 줬다. 전철을 타게 되면 우산을 잘 접어 단단히 밑으로 내려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길을 나서는데, 문득 나의 수능날이 어물어물 떠올랐다.


한국의 대학에 응시할 생각이 없었던 내게 수능은 엄청나게 진부한 이벤트였다.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던 것도 아니라 굳이 꾸역꾸역 가봤자 풀 수 있는 문제가 있을 리도 없었고, 내년이면 비행기 타고 뜰 나라에서 시험을 봐봤자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때도 수능은 대단한 연례행사였던지라 내가 벌써 수능을 보는 열아홉이 됐다는 것을 전해 들은 주변 사람들이 다 먹지도 못 할 수능 엿과 찹쌀떡들을 왕창 집에 보내준 바람에,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고자 수능길을 결정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와 함께 살고 있던 새엄마는 뚜레쥬르에서 사 온 BLT 샌드위치와 맛없는 편의점용 포르치니 수프를 싸주었다. 굳이 수능을 잘 보지 않아도 되니 적당히 보고 돌아와서 학원이나 가. 그 말에도 서운할 것 없이 샌드위치를 꼭 쥐고서 양상추 먹으면 배 아픈데... 하고 생각하며 터덜터덜 버스를 타고 고사장에 갔던 기억이 나.


나 하나쯤 수능을 못 봐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외려 간절한 사람들을 위해 성적 바닥 깔아주기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의협심이 생겼던 것 같기도 해. 그나마 제일 좋아했던 언어만 시간을 꽉 채워 풀어보고, 수학부터는 냅다 책상에 뺨을 붙이고 잠만 잤다. 그러다 훌쩍 점심시간, 그래도 점심이라고 싸준 도시락이 있으니 이거라도 먹어야지 싶어 종이 치자마자 일어나 주섬주섬 봉지를 풀어헤치는데, 맨 끝자리 창가에 앉은 어떤 여자애가 빈 손으로 허공만 보며 펜을 돌리고 있었다. 쟨 밥 안 먹나? 샌드위치 하나를 물고, 찬 물을 부어버리는 바람에 처참하게 망해버린 포르치니 수프를 플라스틱 스푼으로 휘휘 저으며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그 황금같은 점심시간에 냅다 책상에 엎드려 버리는 것이다. 쟨 도시락이 없나? 또 궁금증이 몽실몽실 떠올랐지만 섣불리 다가가 냅다 내 샌드위치를 나눠줄 분위기도 아니었어서 먹으면 배가 두 배로 더 아플게 분명한 식은 수프를 마셨다. 그리고 그 친구는 점심시간이 10분 남았을 때까지 엎드려 있다가 비척비척 일어나 (내 눈에는) 쫄딱 굶은 기운 없는 얼굴로 다음 교시를 준비했다. 난 여전히 그 친구에게 눈이 박혀있었다.


아무것도 안 할 거면 제2 외국어로 일본어나 보고 오라는 학원 선생님의 말에 호기롭게 신청했던 5교시까지 남아있는데, 그 친구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내 눈에는 여전히 비쩍 말라서 엄청나게 배고파 보이는 얼굴로 마지막 교시를 준비하는 손이 안쓰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설마 이 시간까지 아무것도 못 먹은 걸까, 아니면 긴장이 되어 배가 아플까 봐 입에 아무것도 못 넣는 걸까 생각하던 차에 그 친구의 가방에서 보름달이 나왔다. 보름달! 학교 앞 매점에서 사면 개당 700원밖에 하지 않던 그 빵. 그걸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는 모습을 보는데 왜인지 물이라도 갖다 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치밀었다. 아빠가 그랬는데,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면 그게 결심이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챙겨 왔던 삼다수 생수병을 그 친구의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놀라서 나를 쳐다보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꼭, "뭐야? 어디서 튀어나왔어?" 하는 낯으로 빵을 물고 있는 그 친구에게 그냥 물통이 남았는데 네가 빵을 먹고 있길래 주는 거라고 말했더니 어안이 벙벙했는지 고맙다는 말도 어물어물이었다. 


그러고 나는 그 자리에서 너무 부끄러워져서 (왜냐하면 그 친구의 표정이... 정말로 당황에 젖어있었으니까...) 자리로 얼른 돌아와 앉았다. 그 뒤론 그 자리를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았다. 마시든가 말든가! 하는 마음으로 5교시를 부끄럽게 보내고 종이 치자마자 가방을 챙겼다. 이럴 거면 물병 주지 말걸, 하고 얼굴이 또 시뻘게져서 계단을 우당탕탕 내려가는데 뒤에서 자꾸 누가 저기를 찾는 것이다. 공포영화에서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문을 쓸데없이 굳이 열어보는 주인공처럼 고개를 돌려보니, 그 친구였다. 화들짝 놀라 멈춰 서지도 못하고 쳐다본 채로 계속 걸으니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다.) 그 친구도 황급히 나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들은 말은 "물 고마워."였다.


참고로, 그 뒤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진 않았다. 물을 잘 마신 그 친구는 그 친구대로 부끄러웠는지 냅다 교문으로 뛰어가버렸고, 나는 내가 뛰어가면 같이 뛰어버리는 꼴이 되니 발맞춰 부끄럼 마라톤을 하게 될까 봐 굼벵이처럼 걸어갔으니까. 어떤 학교의 교복이었는지도 못 보고 보내버리는 바람에 이젠 영영 찾을 수도 없게 되어버렸지만, 헐레벌떡 뛰어가는 그 친구의 가방 옆주머니에 내가 건네준 삼다수병이 끼워져 있던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친구는 수능을 잘 봤을까. 보름달빵은 배를 채우는 데에 도움이 좀 됐을까. 내가 준 물은 목을 축이기에 적당했을까. 그 날, 수능이 끝나고 따뜻한 곳에서 긴 여행을 한 차례 끝낸 스스로를 축하해줬을까. 아직도 궁금하다. 


수능이 끝난 이후 외국에서 유학생활을 이어나가던 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꺾을 많은 굴곡을 넘었다. 수능이나 다름없는 시험들을 몇 번이고 치뤘고 수 번 떨어지고 절망하는 일도 많았어. 그래도 매달려 살다보면 어떻게든 무너진 하늘에 솟아날 구멍을 만들긴 하더라고. 지겨운 운명론보다는 운명개척론을 믿으라고, 스스로에게 되뇌다보니 어떻게든 되더라는거야. 그래도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묵묵히 나를 지켜봐주던 시선들이다. 몇 마디 말보다, 이 방법이 안 되면 저 방법을 해보겠노라고 말하는 내게 묵묵히 보름달빵과 함께 마실 물병을 넘겨주는 것. 그런 것들.


비가 많이 오지만 이 비가 시린 비처럼 남지 않길 바라. 외려 큰 일을 한 번 지낸 마음을 씻어주는 단비로 생각하길. 


나도 어제 새벽부로 커다란 프로젝트를 끝냈다. 이제부터는 실전이다. 나도 이제 이 악물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크게 자랄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가려고. 힘내자. 이 비가 싫어도 언젠가는 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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