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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원 Mar 16. 2024

봄에 부는 바람에는 풀비린내가 섞여있다

일상 24



봄이 왔다. 오늘 창문을 열자마자 바람결에 미묘한 향기가 어렴풋이 실려 들어왔다. 하늘은 맑고, 바람이 그리 차지 않은 채 햇살은 따뜻해서 딱 그 순간에 취해있었다. 나는 봄을 참 좋아해. 어렸을 때에는 봄이 참 서늘하고 싫었는데, 지금은 그 때의 그 마음이 나의 우울한 그늘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금방이라도 숨이 막혀 내일 아침에는 죽은 채로 깨어나지 못 했으면 좋겠다고 울던 어린 나를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달래서 저 멀리 피어있는 봄꽃을 보여주고 싶어지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유독 그랬다. 


작년의 봄은 참 행복했지. 4월의 시작부터 4월의 마지막날이 될 때까지 행복한 시간들이 제법 많았다. 아직도 그 얼굴과 쏟아지던 햇살을 잊지 못하는 것을 보면 사무칠 존재로 머릿속에 남은 이름이 되어버렸다는 생각. 그 때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이번 봄은 더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 뿐이다. 많이 놀러다니고, 많은 걸 경험하고, 많이 아름답고 싶다.


입사 한 달차.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사이에 나는 부쩍 지쳐 기절하듯 잠드는 일이 많아졌고, 연인의 집에 더 이상 발을 들이지 않게 되었다. 근처의 사람들이 종종 우리가 괜찮은지 물어본다. 나는 요즘 우리가 괜찮다고 말할 수 없다. 헤어진 이유는 헤어진 이유였기 때문에, 다시 만나 사귀어도 변하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렸거든. 그럼에도 사랑한다고 말할 기운이 남아있어 화해를 하기로 했다. 하루에 두어번 카톡이 오고 가는 일 말고는 딱히 특별한 것이 없다. 생각이 너무 많은 내 탓일까, 조금은 그냥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이 짙다. 그리워하지 말아야 할 순간을 자꾸만 그리워하게 된다. 나는 이 그리운 감정을 내게 명백하게 인지시켜주고 싶어 자꾸만 나를 다그치고 있다. 감정을 받아들이지는 못할 망정, 내게 너무 가혹해져 내가 초라해질 때도 있지만... 그마저도 그냥 내 아픔이라, 무시하지는 못 하고 상처로 끌어안고 있다. 


서울에서부터 서울로 가는 것뿐인데 집과 회사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거의 한 시간 반이 걸린다. 한 번에 직통으로 가는 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버스를 타고 나가서 전철을 타고 또 전철을 갈아타서 회사까지 또 몇 분을 걸어야 한다. 왕복으로 세 시간인데, 와중에 일어나 씻고 들어와 씻고 집안일을 해야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회사를 오고가고 하는 준비에 거진 5시간을 낭비한다. 할 일이 많아 늦게 퇴근하다보니 잘 시간도 거의 없다. 변명을 삼아 운동을 등록하고 나가 살 준비를 하고 있다. 회사까지 딱 20분 거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최대한 나와의 합의 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재밌어서 버틸만 하다. (문제는 재밌기만 하다는 점이다.)


세상엔 참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을 하나하나 다 이해하고 납득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사람은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것 정도는 내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잘못이 아닌, 나를 도와주는 사수의 어리숙한 판단으로 생긴 문제로 내가 얼굴 붉어질 일이 있어도 담배 한 대 피우면 괜찮아진다는 것 정도를 알아냈고, 사람들이 모두 다 처음부터 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특정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법을 배웠다. 서로가 서로를 서운해 하는 상황 속에 있으면 가끔은... 결과를 위한 중재보다는 그 상황을 일단 멈추는 게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았고, 무작정 내 행동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성과 감성이 충돌할 때에는 감성적으로 공감해주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한 편으로는 간단한 일인지도 알았고... 아무튼 그렇다. 


글을... 좀 쓰고 싶었다. 그리고 그걸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을 다시 하고 싶어져서, 시간이 날 때마다 메모장에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끄적인다. 나는 바쁘게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유유자적한 곳에서 바람을 쐬며 좋은 노래를 듣고, 이를테면 핑크 플로이드나 시가렛애프터섹스나 검정치마의 음반을 틀어놓으면서, 글을 쏟아내는 것도 참 좋아하는데. 감히 내게 그럴 시간을 자유롭게 주지 못 한 것이 미안해졌다. 나는 이틀이고 삼일이고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아도 좋을 곳에서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다. 빳빳한 종이 위에 펜이 부딪히는 소리를 즐기며 쓰고 싶었는데, 요새는 팔꿈치와 손목이 좋지 않아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새끼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도 힘들다. 그래도 의미 있는 글을 쓸만한 머리는 남아있으니 축복이지.


아무쪼록 조만간은 내가 나와 원만한 합의를 이뤄서 잘 화해를 했으면 좋겠다. 고민도 많고 생각도 많으니 좀처럼 쉬지 못 하는 것 같아서 안쓰러워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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