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도시락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오늘은 금요일. 아마도 사회생활을 하는 모두가 가장 기대하는 날일테고, 학교 가는 아이들도 가장 좋아하는 날일테다.
나도 금요일이 좋다. 그 이유는 바로 매주 금요일은 피자데이 이기 때문이다. 피자데이라니! 덕분에 나는 도시락 싸는 시간을 아껴 20분은 더 잘 수 있고 심지어 하루 전날 잠들기 전 매일같이 고민하는 '내일 도시락 뭐 싸지?" 하는 고민을 안 할 수 있는 최고의 날이다.
내가 도시락 지옥에 빠질 줄이야. 그것도 앞으로 최소 12년은 더... 정말 최악이다.
우리 집의 모든 요리담당은 나 이기에 아침식사부터 밤에 잠들기 전까지 먹는 모든 식사과 간식이 내 담당이다. 우리 남편은 참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마누라 도와주기를 잘 하지만 딱 한 가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요리이다. "요리는 못해. 난 정말 못해. 여보가 아프면 우리 애들은 어떡해. 맨날 맥도널드만 사 먹어야 하는 우리 애들은 어떡하느냐고." 하는 남편. 배워보라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관심이 없는 분야엔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람이기에, 그리고 한두 번 시도했다가 먹지도 못할 음식을 만들어 낸 그 이기에 나도 더 이상 요리를 해보라고 권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 넌 돈을 벌어라.. 요리는 내가 할 테니..'
이런 남편을 둔 덕에 나는 급식도 없는 캐나다에서 집밥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남편의 도시락까지 만들게 되었다. 보통 남편의 도시락은 전날 싼다. 어차피 남편 직장에서는 전자레인지에 데워먹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만들 필요는 없다. 전날 먹은 저녁반찬을 미리 덜어서 밥과 반찬으로 한 끼를 싸고, 무조건 다른 하나는 만들기 쉬운 볶음밥. 이렇게 하면 두 끼가 완성된다. 나무젓가락과 수저까지 꺼내놓으면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남편이 본인 도시락을 알아서 챙겨 나가는 루틴이다.
문제는 내일도 데이근무 12시간, 아이들도 학교 가는 평일인 경우다.
나의 하루를 예로 들어보자면,
아침 6시 50분에 일어나서 아이들 도시락 3개를 싼다.
학교 데려다주고, 장 보러 2~3군데 마트 갔다가 집에 와서 내 점심은 대충 때우고 바로 애들 먹을 저녁준비를 시작한다.
'하.... 저녁 뭐 하지..? 장은 봤는데.. 뭘 만들어야 하지?'
장 본 것 중에 고르고 골라 대충 저녁거리 만들어두고, 아이들 학교에서 픽업.
만들어둔 저녁을 따뜻하게 덥혀서 먹이고, 설거지 하고 쉬고 싶은데 생각나는 남편 도시락!
분명 난 저녁까지 해 먹였는데, 정리가 끝났는데, 또 한 끼를 만들어야 하는 이 기분.
'하... 도시락 뭐 하지...?' 또다시 반복되는 저녁 먹기 전 덜 어둔 반찬과 밥, 그리고 종류가 다른 도시락 하나. 음식을 또 하나 했으니 설거지가 또 나온다. 오늘의 마지막 설거지가 되겠군..
진짜 마지막 설거지를 하고, 애들 재우면서 생각한다. '하... 내일 애들 도시락 뭐 싸지...?'
그놈의 도시락!!
한국엄마인 나는 아이들에게 웬만해선 밥을 먹이고 싶다.
아침엔 입맛 없다고 초코파이 하나에 우유 반컵 마시고 가는 애들이 안쓰러워서라도 밥을 먹이고 싶은데 문제는 애들 셋이 원하는 바가 다 다르다는 것이다.
첫째: 엄마! 나는 고기랑 밥이 좋아요. (샌드위치 싫어함. 한식파)
둘째: 엄마! 나는 내일은 샌드위치 싸주면 안 돼요? 난 밥 싫은데 (빵 좋아하는 외국인 스타일)
셋째: 엄마! 나는 미니피자! 밥 싫어~~ 샌드위치도 싫어. 난 피자~~ (삼시 세 끼 피자만 줘도 좋아하는 애)
좋고 싫음이 개인별로 다양하니 대~충 분위기 맞춰, 어느 날은 스파게티, 어느 날은 둘째 무시하고 볶음밥, 어느 날은 첫째 무시하고 샌드위치, 어느 날은 엄마 맘대로 냉동만두, 어느 날은 셋 다 좋아하는 돈가스 삼각김밥...
어제 싸준 거 또 싸주기 싫고(애들도 싫어함), 매주 레퍼토리가 똑같은 것도 싫고, 그렇다고 아이디어는 없고, 뭘 싸줘도 점심시간이 20분 밖에 안돼서 빠르게 먹을 수 있을걸 싸달라고.. 원하는 것도 가지가지인데 도시락 먹을 시간까지 내가 계산을 해야 하는 거냐고..! 도시락 하나 싸는데 따질게 왜이렇게 많은건지..
그런데 드디어 내일은 금요일이다! 피자데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피자데이를 한다. 물론 선택사항이며, 개인이 먹을 피자 개수별로 가격을 미리 지불하면 학교로 따뜻한 피자가 배달된다. 집에서 가져갈 것은 피자와 먹을 주스 하나 정도. 이 얼마나 좋은 시스템인지!!
매일매일 급식을 주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도시락 싸기. 누가 제발 아이들 좋아하는 것 위주로 식단표 좀 짜줬으면 좋겠다. 남편은 아무거나 먹여도 애들은 그렇지가 않아서 매일매일 고민하는 도시락.
한국 엄마들끼리 모이면 빠지지 않는 주제이기도 하다.
"오늘 애들 뭐 싸줬어요? 주로 도시락 뭐해줘요? 그거 잘 먹어요? 우리 애는 안 먹는데.. 아이디어 있으면 나도 좀 알려줘요. 도시락 때문에 살 수가 없어!!"로 끝나는 대화.
캐나다 살면 어린 아기부터 직장인들까지 싸들고 다니는 도시락이기에 이 문화에 적응을 해야 한다.
큰 아이가 5학년쯤 되다 보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어려운 도시락 싸기.
아침에 도시락 한번. 점심. 저녁. 또 도시락 한번.
이 끝나지 않는 굴레에서 어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
다른 캐네디언 아이들은 식빵에 쨈 발라온다던데. 나도 한번 그렇게 보내볼까. 하다가
다음날 아침, 아무래도 밥을 싸야겠어. 하는 엄마의 마음.
왜 이렇게 안 먹는 음식들이 많아! 버럭 하다가도 막상 돌아서면 애들이 좋아하는 거 싸줘야지 하는 엄마의 마음. 여러 가지 마음들이 뒤섞인, 매일아침 도시락 싸는 엄마의 마음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다녀오면 "엄마! 오늘 도시락 진짜 맛있었어!" 해주면 뿌듯한데
"엄마! 이제 오늘 싸준 거 말고 다른 거 해주세요. 질렸어요." 하면 짜증이 솟구친다.
내가 어떻게 싼 도시락인데 그런 말을..!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물으면 저도 몰라요 하는 아이들.
피자데이는 무조건 옳다.
저녁형 인간인 내가 덕분에 조금 더 아침잠을 잘 수 있다는 것과, 무엇을 싸줘야 할지 머리 싸매고 고민하지 않게 해 줘서 인 것과, 맛있었다, 맛없었다 평가를 들을 필요도 없게 해 주니까.
주 2회로 늘려주면 더 고맙겠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