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찐주언니 Feb 02. 2024

캐나다에서 두 번째 하우스 짓기

캐나다에서 하우스 짓기 2-2

소중한 첫 집이었지만 입주 전부터 생긴 어려움은 새 집에 대한 반감을 키워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들어왔으니 된 거 아닌가 생각하며 이삿짐을 정리하다 보니 봄이 되었고 앞뒷마당에 흙들이 바짝 마르기 시작하자 슬슬 잔디를 깔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잔디와 자갈등을 파는 가게에 가서 먼저 잔디 깔기 전에 깔아야 할 흙부터 주문했다. 약속된 날짜에 맞추어 집 앞으로 거대한 트럭이 다가오더니 드라이브웨이 위에 고운 모래흙이 거대한 산이 되도록 쏟아놓고 갔다. 남편은 그날부터 하루에 6시간씩 2일에 걸쳐 삽질을 해 흙을 퍼 나르고 편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큰 도르래 같은 것을 빌려와 바닥을 꾹꾹 누르며 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미리 주문해 두었던 잔디가 또 한 산을 이룰 만큼 우리 집 앞에 놓였고 나와 남편은 그 잔디를 앞뒷마당에 깔기 시작했다. 집은 작아도 집에 비해 뒷마당은 넓은 편이었고 앞마당은 거대했다. 이 앞마당의 사이즈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이 땅 위에 집을 지었다. 그리고 그 넓은 자리에 빽빽이 잔디를 깔았다. 잔디를 다 깔고 나니 물을 듬뿍 주어야 한다길래 한여름, 아침저녁으로 잔디를 밝으면 물이 뿜어져 나올 만큼 물을 주고 또 주었다. 그래서 알게 됐다. 잔디가 제일 싸다고 해서 잔디를 깔았더니 물세가 엄청나게 나온다는 걸. 유독 다른 주보다 물세가 비싼 위니펙이었다. 

데크를 만들 차례였다. 다행히 주변에 아시는 한국분이 있어 인건비를 드리고, 점심도 드리며 남편과 같이 데크를 만들었다. 나무데크가 가장 싸다고 해서 만들었는데 또 하나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무데크가 싼 만큼 손이 많이 간다는 걸. 삐죽삐죽 튀어나온 나무들이 아이들이 놀기엔 위험했고 그래서 자주 사포질을 해주어야 하며 시간이 지나면 나무가 뒤틀리기도 한다는 걸. 아무것도 몰랐기에 사람들이 주는 정보가 최고인 줄 알고 들은 그대로, 그렇게 만들었다. 우리의 첫 집을.


이곳에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셋째 아이가 태어났다. 사실 이 집을 짓기로 하고 계약을 했을 때만 해도 우리에겐 두 아이만 있었다. 좀 작아도 넷이 살기엔 나쁘지 않은 집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섯은 이야기가 달랐다. 남자아이만 둘. 남편까지 셋. 남자 셋에 여자 둘이 살기엔 이 집은 작은 집이었다. 이미 넷 만으로도 충분히 꽉 찬 집이었으니까. 그런데 다섯이라니.. 이사를 하고 막내가 태어나자마자 생각했다. '이사를 가야 할 수 도 있겠다.' 

그리고 정말 문제는 집을 지은 지 1년도 되지 않은 그 해 봄에 찾아왔다. 겨울에 얼었던 얼음이 녹아내리기 시작하면서 집 안의 물들을 바깥으로 빼내는 시스템이 있는데 그게 계속 쉼 없이 돌아가는 것이다. 돌아가다 멈추다를 반복해야 하는데 이게 왜 자꾸 돌아가지? 남편은 급히 창고 안에 기계를 둘러보았다. 불길했다고 했다. 남편은 나에게 당장 내려와 보라며 지하로 불렀다. 내려가보니 베이스먼트 창문으로 물이 들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겨울에 쌓인 눈들이 녹기 시작하면서 그 물이 설치된 굵은 호스를 타고 땅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부분이 막혀서 창문 안으로 물이 폭포수처럼 밀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콸콸 넘치는 물을 보면서 너무도 어이가 없었는 중에 남편이 동영상 촬영을 하라고 내게 지시했다. 나는 남편의 지시에 따라 여기저기 물이 넘쳐흐른 곳을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남겼다. 남편은 화가 잔뜩 난 채로 업체에 전화했고 집을 지은 업체에선 바로 달려왔다. 실제로 물이 콸콸 넘쳐 들어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관계자는 자기도 어이가 없는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며 바깥으로 나가 살펴보기 시작했다. 말로는 호스가 돌멩이에 막혀서 그렇다기에 그걸 당장 뚫어주겠다며 사람을 불러 해결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물에 젖은 벽과 바닥은 어찌할 테냐고 물었다. 이 집은 새 집이라 1년간 워런티가 있다. 이 집에 입주한 지 1년은커녕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 이건 반드시 너희의 문제가 아니면 이게 누구 문제냐. 관계자는 일단 자기들이 문제를 해결은 한 것 같으니 그냥 넘어 자가는 눈치였다. 관계자는 남편에게 물을 뽑아내는 기계를 호스를 연결해 바깥으로 흘러나가게 두면 더 이상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너무 화가 났지만 이렇게 하면 해결이 된다니 그날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돌멩이를 뚫어낸 효과가 하루는 있었던 것 같다. 밤이 되면 기온이 뚝 떨어져 바깥에 녹던 물도 다시 얼었고 그러면 밤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침에 기온이 오르면 다시 물을 빨아들이는 기계가 작동을 하면서 고여있는 물들이 저 멀리 흘러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두 주 뒤에 다시 찾아온 관계자는 호스를 보더니 안에 구멍도 다 뚫렸고 하니 더 이상 문제는 없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그 주 일요일이 되었다. 남편은 출근을 했고 나는 아이들과 교회를 다녀왔다. 이것저것 정리하고 나니 문득 지하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려가자마자 나는 비명을 질렀다. 내가 지하로 내려가자마자 본 광경은, 지난번과 똑같이, 하지만 더 심하게, 창문 바깥에서 물이 폭포수처럼 콸콸 벽을 따라 흘러내리며 이미 바닥이 한강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조금만 더 늦게 봤더라면 지하 안쪽에 있던 방 안에까지 들어갔을 것이다. 나는 만삭이었고, 물은 콸콸 쏟아져 들어오고, 이미 물은 한강이고, 남편은 오늘 밤 12시에야 들어온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도저히 나 혼자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이야기하고 남편이 가능한 한 빨리 집으로 돌아오겠다며 일단 부를 수 있는 지인들을 부르겠다고 했다. 집에 있는 온갖 걸레와 수건을 가져다 닦고 짜 내어도 감당이 안될 양이었다. 내 몸뚱이조차 무거운데 쪼그리고 앉아 바닥을 닦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곧 지인 두 명이 온갖 걸레를 들고 우리 집으로 출동했고 다 같이 벽과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곧이어 조퇴한 남편도 집으로 돌아오고 건축 관계자도 왔다. 관계자는 상황이 심각함을 인지했다. 다시 제대로 문제를 찾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지난번 보다 더 크고 무거운 기계를 가져와 다시 작은 공사를 하기 시작했고 그날 이 이후로 다시는 우리 집 베이스먼트에 물이 새지 않았다. 우리는 물이 샌 벽과 바닥을 다시 교체해 주기를 요구했고 업체는 50/50으로 하자는 제안을 했다. 반반을 하라고? 아니 무조건 100% 너희 과실이지. 우리는 너희를 믿고 건축을 맡겼고 이 집에 이사를 온 죄 밖에 없는데 반반이라니? 이리 따지고 드니 그제야 100% 해주겠단다. 당연한 이야기를 인심 쓴다는 듯해준다는 이 사람들. 

1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 얼음이 녹을 때가 되면 매일같이 가슴 졸이며 지하로 내려가 보았던 기억이 있다. 새 집도 충분히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아이가 셋이 되었다.

남편이 지하에서 클리닉을 열고 싶어 하는데 이 집에선 말도 안 될 이야기다.

코로나 시국에 접어들까 말까 한 초창기였다. 


첫 집에서 만 2년밖에 살지 않았는데 이 집이 주었던 이미지 때문인지 첫 집에 대한 정이 없었다. 처음 첫 삽을 펐을 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는데 물이 넘치는 걸 본 순간 떠나고 싶은 생각이 확고해졌다. 다행히 문제는 완전히 해결됐다. 이 집을 팔자. 이사를 가자. 집을 보러 다니자. 


또다시 시작된 집 찾기. 이번엔 원하는 집을 찾기 위해 집집마다 방문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요구조건이 좀 더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방 4개. 

집 바깥에서 베이스먼트로 바로 들어가는 사이드 문이 있을 것.

우리가 원하는 가격대 안에 들어올 것.


아무리 찾아도 온라인상에서, 아니 지금 나와있는 어떤 집도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다행히도(?) 코로나 시국에 접어들었다. 사람들과 접촉은 할 수 없었지만 꿈쩍 않던 위니펙의 집값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집값이 두 배 세 배 오른 건 아니었지만 기존 가격에 1억씩 더 받는 집들이 수두룩하게 생겨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싸구려 이 집도 좋은 가격에 팔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난번처럼 집을 팔아 생긴 여유자금으로 집을 짓는다면..? 지금은 집 지으려면 얼마 정도 있으면 될까? 

한 번 지어봤다고 두 번은 두렵지 않았다. 

집. 그까짓 거 지으면 되지. 한번 해봤는데 두 번은 어렵겠나.


우리는 또다시 새집 짓기에 나섰다. 지난번 우리가 첫 집을 지었던 회사는 여러 건축업체중에 가장 저렴한 곳이었다. 저렴한 곳이라 저렴한 자제를 쓰는 것이 아니라 고급 업체와 다르게 기본 옵션이 적다는 것이다. 고급 업체는 쇼홈에 들어가 보면 휘황 찬란하다. 바닥도 아주아주 고급으로 쓰고  집 외곽도 기본이 비싼 돌을 붙이는 것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난번 고른 업체는 외관에 돌을 붙이고 싶으면 돈을 내면 붙여주지. 하지만 우린 기본적으로 그런 거 안 붙여서 팔아. 하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렴했던 것이고 그래서 맘에 들었다. 그리고 이 업체가 저렴했던 또 한 가지 이유는 이제 막 위니펙에 집을 한 두 개 짓기 시작한, 한마디로 다른 경쟁 업체보다 한참 늦게 시작한 회사였기 때문인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집을 지은 지 만 2년 동안 이 회사도 참 많은 집을 지었나 보다. 2년 전보다 쇼홈이 다른 고급 쇼홈만큼이나 멋있어졌고 내부도 다른 쇼홈에 못지않게 멋있어졌다. 하지만 이번엔 절대 너희랑 집 짓지 않겠다 다짐하고 여러 업체를 보러 다니는데.. 우리는 결국 다시 예전 그 업체를 선택하는 결과를 맞았다. 그 이유는 딱 하나. 결국 또 돈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가격 내에서,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 맞춰 집을 지어줄 집. 결국 또 여기였다. 다행이라면 지난번과 다른 엄청난 체격의 백인 남자 리얼터가 우리와 함께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 아저씨 덕분에 첫 번째 집도 아주 좋은 딜에 팔았고, 자재값이 오르기 시작했다는 귀띔을 해줘서 우리는 자재가 오르기 전에 집 계약을 마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집은 1층에서 2층이 되었고 사이즈는 두 배 가까이 늘었는데 추가 비용은 10만 불도 되지 않았다. 천운이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그때 집을 짓기로 마음먹지 않았다면 우린 결코 이 가격에 이 집을 짓지 못했을 테니까. 


집을 짓기로 계약을 했다. 계약금도 지불했다. 코로나가 시작되어 리얼터와 우리가 서로 두터운 마스크를 쓰고 1주일에 한번, 2주일에 한 번씩 만나 기존 도면을 고치고 또 고쳤다. 

'1층 방은 필요 없어요. 전부다 2층으로 올려주세요. 안방이 작아져도 괜찮으니 방 4개가 나올 수 있게 해 주세요. 2층에 로프트도 있어야 해요. 세탁실도 2층에 있어야 해요. 1층엔 머드룸도 있어야 하고요. 팬트리는 더 크게 빼주세요. 창문은 여긴 크게 여긴 작게. 가라지도 살짝 넓혀야 하고. 베이스먼트도 완성해 주세요. 사이드 도어 있어야 하고요. 진료실도 있어야 하고요...'

결국 기존 도면과 완전히 달라진 집이 완성됐다. 그리고 이제 짓기만 하면 된다.

6개월 가까운 수정작업, 그리고 땅을 파기까지만 1년이 걸렸다. 그리고 이 집이 모두 완성되기까지는 1년반이란 시간이 걸렸다. 집을 짓는데 2년이 걸린 것이다. 사실 6개월이면 완성될 집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자재가 안 와. 코로나 때문에 일 할 사람이 없어. 눈이 와서 못 해. 비가 와서 못 해. 나도 몰라 언제 완성될지.." 그렇게 늦게 완공된 집이었다. 세상 화려한 집도 아니고, 세상 거대한 집도 아니지만, 우리 가족이 원하는 생활반경에 맞춰 지은 집이었다. 지난 집보다 사이즈는 두 배가 늘었지만 사고팔았던 타이밍이 따라줘서 저렴하게 지을 수 있었다. 


지난여름, 드디어 우리는 앞마당과 뒷마당, 데크공사를 마쳤다. 이번엔 우리가 하지 않고 전문업체를 불었다. 그리고 잔디는 최소한으로 하고 그 대신 돌을 좀 더 깔았다. 지난번 집에서 얻은 교훈 때문이었다. 

우리가 직접 마당 시공을 하니 완성도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가뜩이나 짧은 여름 내내 일만 해야 한다는 점.

잔디를 너무 많이 깔아서 잡초가 무성해지고, 그 관리가 매우 어렵고, 물세가 심히 많이 나온다는 점.

나무데크를 만들었더니 관리가 어렵고 예쁘지 않다는 점 등등..

차라리 돈을 들여서 예쁘게 만들고, 잘 만들고, 관리를 수월하게 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이었고 우리는 그 결론에 지금 매우 만족 중이다.


나는 매주 금요일에 하는 '나 혼자 산다'를 즐겨 보는데, 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박나래 씨가 주택에 살면서 주택관리의 어려움을 보여줄 때마다 100% 공감하며 본다. 우리 집도 주택이고, 주택은 정말 손이 너무 많이 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택이 주는 즐거움이 있고 캐나다에서 살면서 주는 하우스의 장점은 아이들 키우는 가정에겐 매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캐나다에 사는 동안 벌써 두 번의 집을 지었다. 어쩌면 한번 더 집을 짓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는 아마도 주 이동을 하고 난 후가 될지 모른다. 나와 남편은 언제든 다시 한번 집을 짓게 될지 모르는 일에 매우 호의적이다. 하나부터 백까지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을지라도 우리가 손수 설계한 집이 주는 감동은 고생 그 이상으로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살고 있은 이 집도 우리 생애 마지막 집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인들은 이런 우리를 보고 "아니 왜 집을 다 지어놓고 얼마 살지도 않고 또 이사를 가?"라고 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민자고 여기저기 떠도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의 종착점이 어디가 될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절대 위니펙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언제 곤 여기를 떠날 마음이 있다. 시기가 적절해진다면, 상황이 허락된다면 언제든 주 이동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새 집이라는 이유로 이곳에 매여 계속 살기보다 새로운 곳에 또다시 정착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집이라는 건 언제든 이사 다닐 수 있듯이 언제든 지을 수 있다. 평생을 살 집을 짓기엔 우리가 아직 너무 젊기에, 평생을 살 집보다 지금 우리 가정에 맞는 집을 짓고, 그래서 그곳에 사는 동안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다. 


집을 두 번 짓고 보니 '집'이주는 감동이 꽤 많이 커졌다. 

나중에 나중에 나이가 많이 들어서 어딘가 완전한 정착을 해야 할 시기가 온다면, 그때는 남은 생을 지낼 수 있는 멋진 아늑한 집을, 풍경이 멋진 그런 곳에  짓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생겼다.





작가의 이전글 캐나다에서 생애 첫 하우스 짓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