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끊을 수 없는 매력적인 여행
나는 위니펙에 오기 전까지 '로드트립'이란 단어를 알지 못했다. 설사 그런 것이 있다 해도 로드트립을 다닐 거리와 시간을 보건대 나는 무조건 비행기를 타리라 다짐한 적도 있다. 위니펙 서쪽으로 14시간을 달려 캘거리에 다녀오고, 조금 더 20시간을 달려 밴쿠버에 다녀오는 일은 내 생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교통체증이 있어서 20시간이 아니라, 시속 100km 이상을 쉬지 않고 밟아서 20시간이라니. 그것도 아이 셋을 데리고! 그런 일은 결단코 없을 줄 알았다.
매년 여름이 되면 캐나다에 사는 사람들은 그 누구라도 여름을 즐기며 산다. 특히나 캐네디언들을 보면 마치 여름은 놀기 위해 존재하는 계절로 여겨질 만큼, 놀고 놀고 또 놀러 다닌다. 주말엔 집집마다 뒷마당에서 바비큐파티를 하고, 캠핑장엔 으리으리한 캠핑카들이 즐비하고, 평일엔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짐을 싣고 내리는 집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어떨 땐 우리 빼고 다 어디 놀러 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으니까..
여름만 되면 흔하게 주고받는 vacation 이야기들. 그리고 생각보다, 아니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이 로드트립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흔하게 들을 수 있다. 캐나다에서 차로 다녀올 수 있는 미국은 물론이고 캐나다 방방 곡곡,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미국을 거쳐 멕시코까지. 참 대단한 열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차에 짐을 싣고 그 오랜 시간, 오로지 휴가를 즐기기 위해 로드트립을 떠나다니.
나는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이라 생각했던 그 모든 곳에 사람들은 차를 타고 이동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참 경이로웠다. 그런데 그 경이로운 이야기를 6년째 듣고 있으니 이젠 나도 한 번쯤 도전해봐야 하는 분야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캐나다에 사는데 로드트립정도는 한번 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우리 가족은 지금까지 두 번의 로드트립을 다녀왔다. 2년 전, 편도 14시간을 달려 캘거리에 다녀왔고 작년 여름 그에 힘입어 편도 20시간 거리에 있는 밴쿠버에 다녀왔다. 처음 갔던 캘거리는 저녁 7시부터 달리기 시작해 다음날 오전 9시 도착이었고 두 번째 밴쿠버는 10시간씩 이틀에 걸쳐 도착한 여행이었다.
결론적으로, 두 번 다 로드트립은 너무너무 힘들었다. 휴가를 다녀온 게 아니라 훈련을 다녀온 건가 싶을 만큼, 내가 운전을 한 것도 아닌데 계속 차 안에 계속 갇혀있다 보니 그런 지옥이 없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계속계속 간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남은 시간이 분단위로 줄어드는 걸 보며 우리 집에 얼마큼 가까이 왔는지 알 수 있었고 수백 킬로미터 숫자가 하나씩 줄어드는 걸 보며 지독히도 멀리 왔구나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마 아이들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힘든 시간을 견뎌보라고 아이들은 각자의 손에 아이패드 하나씩, 이어폰 하나씩, 그리고 게임기가 하나씩 쥐어졌다. 힘들었지만 아마도 행복했으리라. 도대체 몇 시간 동안 게임을 하는 건지.. 아마 본인들 인생에 하루 동안 가장 오랜 시간 게임을 한 날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캐나다엔 휴게소가 없다. 대신 맥도널드와 팀홀튼이 곧 휴게소라 불린다. 어디를 가든, 아무리 작은 시골을 지나가더라도 중간중간 맥도널드와 팀홀튼은 반드시 있다. 그리고 그곳은 곧 휴게소가 된다. 똑같은 햄버거, 똑같은 커피, 똑같은 도넛을 파는 가게를 들렸다가, 또 들리고, 또 들리고, 또 들르게 된다. 마치 우리가 로드트립을 하는 중인지 캐나다 전역에 팀홀튼 일주를 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아까 팀홀튼 갔으니 이번엔 맥도널드. 이런 식일 뿐이지 다른 선택지는 없다. 그래서 로드트립을 다녀오고 나면 한동안 맥도널드와 팀홀튼은 눈길조차 주고 싶지 않아 진다.
위니펙은 어쩌면 로드트립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춘 것일지도 모른다. 캐나다 한 가운에 위치해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위니펙은 동쪽으로 얼마를 가든, 서쪽으로 얼마를 가든.. 아무리 차로 달리고 달려도 참! 볼 게 없다. 그냥 말 그대로 황무지만 존재한다. 위니펙에서 앨버타 주는 들어가야, 그러니까 서스캐처원 지나 10시간 가까이는 가야 그제야 아주 멀리 산도 좀 보이고, 좀 볼 게 있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다. 여름엔 들판에 핀 노란 유채꽃만 8시간은 봐야 할 수도 있고 커다란 땅덩이에 무식하게 줄 서있는 나무들만 10시간 가까이 봐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나서야 산이란 것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첫 로드트립 때. 밤새 달려 앨버타주까지 갔던 그때는 너무 캄캄해서 라이트에 의존해 달릴 수밖에 없었다. 새벽시간에 달리는 수많은 트럭들 사이로 운전했던 것도 무서웠고 어디선가 동물이 튀어나올까 봐 무섭기도 했다. 대신에 우리는 밤하늘에 우수수 쏟아질 것 같은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었다. 지금 이 시간, 이곳이 아니었다면 볼 수 없었을 수많은 별들을 보는 기쁨이 있었고 돌아올 때에는 또렷하진 않았지만 밤하늘의 오로라를 보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로드트립 때. 10시간씩 이틀 동안 달리는 일은 우리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라는 걸, 이번 경험을 통해 알았다. 아이들도 많이 지쳐했고 운전하는 사람도, 보조석에 앉은 나도 모두가 너무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또 차를 타고 그 먼 거리를 여행을 가겠느냐 하면.. 그렇다. 그리고 올여름에도 또 한 번의 로드트립이 예정되어 있다. 차를 오랫동안 타는 일은 힘들지만 어찌 보면 우리에게 요령이 없어서 그랬던 것도 같고,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그랬던 것도 같다. 이미 두 번의 경험을 해 보았으니 경험치는 점점 쌓일수록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로드트립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행하기 전엔 미리 이야기할 주제들을 정해놓고 남겨두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차 안에서 먹을 간식을 준비하는 것처럼, 차 안에서 할 수다들을 미리 남겨놓는 것. 그 대화는 늘 그렇듯 꼬리의 꼬리를 물고 진지한 이야기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음식을 가지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번 밴쿠버 여행 때 위니펙에서 사 먹을 수 없는 음식이나 살 수 없는 술종류 등등을 아이스박스에 가득 담아왔다. 비행기를 탔더라면 가지고 오고 싶어도 가지고 오기 힘들었을 음식들까지 가득 사서 실어오는 일은 오로지 로드트립을 할 때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미리 큰 아이스박스를 미리 준비해 가면 집에 돌아오는 길이 매우 든든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로드트립은 참 힘들다. 오랜 시간 차 안에 갇혀 있어야 하고 아무리 달리고 달린다고 해서 한국처럼 맛집이 즐비한 휴게소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예쁜 카페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로드트립이 주는 특별한 경험들이 있다. 가족이 좀 더 가족다워지는 경험. 아무것도 없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그동안 너무 바빠서 해오지 못했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경험. 남편과 나의 진솔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경험.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리고, 웃음소리가 들리고 그래서 행복해지는 경험. 그 경험들이 차 안에 오랜 시간 갇혀 몸이 힘들었던 느낌보다 훨씬 강렬하게 남는 것 같다.
로드트립은, 내가 한국에 살았더라면 하지 못했을 경험이다. 나이 들어서는 하고 싶어도 못 할 경험이다. 아이들이 커버리기 전에야 가능한 경험이기도 하다. 그래서 올여름, 우리는 에드먼턴으로 또 한 번 로드트립을 떠난다. 지난번 경험치에 비추어 이번엔 중간에 하루 숙박을 하고 갈 예정이다. 하루에 7시간씩 이틀에 걸쳐서. 오랜 시간 운전하고 차타느라 힘들겠지만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하하 호호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부디 지난번보다 덜 힘든 여행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