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보다 사고 싶은 게 더 많은 엄마들의 천국
캐나다 밴쿠버에 입성한 지 두어 달 지났나.. 인화한 사진을 보관할 앨범이 필요한데 어딜 가야 예쁜 앨범을 구할 수 있는지 몰랐던 나는 gym에서 운동을 가르쳐주던 선생님, 린지에게 물어봤다. 어딜 가면 앨범을 살 수 있느냐고. 린지는 우리 gym바로 옆에 있는 Winners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위너스라.. 요 옆에 있는 간판 까만 그 매장 말하는 건가?'
운동이 끝나고 바로 옆 매장인 위너스에 들어가 보았다. 들어가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뭐야? 여긴 뭐 하는데야? 뭘 팔고 싶은 거야? 여기 뭐.. 잡동사니 모아 놓은 덴가?"
진짜 말 그대로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있다. 여기는 마트도 아니고, 그렇다고 옷매장도 아닌 것 같은데 그림도 팔고, 옷도 팔고, 신발도 팔고, 주전자도 팔고, 그릇이며 가방이며.. 뭐라 말은 못 하겠지만 정말 말 그대로 잡다한 것들이 가득했다. 정신없고, 어느 코너로 가서 찾아봐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러다 어느 한 진열대에 아기자기한 액자들이 놓인 걸 보고 여기 어디 근처에 있겠다 싶어 찾아봤다. 그랬더니 그 선반 제일 구석 어딘가에서 3개 남은 앨범을 찾을 수 있었다. 뭐 이런 구석에서 앨범을 찾는 게 맞는 건가 싶을 만큼 어이가 없었지만 급한 만큼 일단 계산을 해서 집으로 가져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는 저곳에 가지 않겠다 다짐했다. 차곡차곡 정리된 매대도 아니고, 뭘 파는지도 정확하지 않은 저런 곳에서 무언가를 사러 갈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이민 온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놀랍게도 그 누구에게라도 추천할 상점이 되어버린 위너스, 그리고 그 친구들 홈센스와 마쉘이다. 나의 놀이터이자 내가 사고 싶은 것들은 모조리 모아놓은 그런 곳. 밴쿠버나 토론토처럼 명품매장이 들어선 대단한 쇼핑몰 하나 없는 이곳 위니펙에서 백화점이라 불리는 곳들은 그저 'Hudson bay'만이 유일한 백화점이며 그 마저도 한국 백화점 발 끄트머리도 못 쫓아갈 모양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백화점을 가야 신상도 보고 아기자기한 것들도 구경할 수 있듯이, 그런 의미에서 캐나다에 사는 사람들, 특히나 아줌마들에게 위너스는 아주아주 재미난 곳이다.
위너스와 홈센스, 마쉘 이 세 매장은 서로 자매 같은 사이이다. 이 세 곳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은 모두 기존 가격보다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으며 매장 위치에 따라, 그리고 운이 좋으면 명품옷이나 고급 냄비, 명품 그릇들을 저렴한 가격에 찾을 수 있다. 처음 내가 느꼈던 그대로 이 세 곳은 모두 잡화점이며 말 그대로 좋은 물건을 싼 가격에 득템 할 수 있는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그리고 이 세 곳의 또 하나의 장점은 위너스에서 산 물건을 환불받고 싶을 때 집에서 마쉘이 더 가깝다면 마쉘에서 환불을 해준다. 마찬가지로 이 세 매장 어디서 물건을 구입했든 세 매장 중 한 곳에 영수증을 가져가면 환불이 가능하다. 다만 아주 조금씩 판매하는 물건이 다르다 보니 의류를 취급하지 않는 홈센스에서는 의류 환불이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가구를 판매하지 않는 마쉘에서는 가구 환불 및 교환이 불가하다.
세 가게의 차이점을 다시 말하자면 위너스에는 옷, 신발, 그림, 그릇, 도시락통 등 보관용기, 아기자기한 스몰 가구들, 가방, 화장품, 간식 등을 판다. 위너스의 특징은 무엇하나 메인이 없고 다양한 종류의 상품들이 조금씩 모두 판매되고 있는 모양새다. 그리고 마쉘은 위너스에서 메인이 갖춰진 버전으로 옷과 신발의 종류가 훨씬 다양하고 많다. 마쉘은 스몰 가구보다는 주로 의류, 가방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마디로 마쉘은 화장품, 샴푸 등등 사람 몸에 걸쳐지는 것들을 주로 판다. 홈센스는 쉽게 말하면 주방용품 전문겸 인테리어를 겨냥한 물건들이 매우 많다. 주방에서 쓰는 작은 식기류부터 고급 냄비라던지 인테리어를 하기 위한 다양한 크고 작은 그림들, 인테리어 소품들, 집안에 놓을 아기자기한 가구들이 많으며 봄 시즌이 되면 벌써부터 여름시즌을 겨냥해 아웃도어 가구들을 내놓기 시작한다. 물론 가을이 되면 이미 크리스마스 물건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시즌을 앞서가는 상점들이라 할 수 있다.
처음 위너스를 갔던 날, 물건 위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가격표가 눈에 거슬리기도 했고, 종류가 너무 많아서 혼란스럽기도 했는데 이곳에 사는 동안 엄마들끼리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거 어디서 샀어?" 할 때마다 "위너스 가봐. 위너스 가봤어? 위너스에 이번에 뭐 들어온 거 봤어? 아니 위너스에 왜 이렇게 사고 싶은 게 많아?" 하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내가 아는 그 위너스 말이야?? 거기 도대체 뭐가 있다는 거지? 난 뭐 볼 게 없던데.. 했던 내 생각은 사람들이 자꾸만 추천하는 덕에 한두 번 더 가보게 되고 꼼꼼하게 물건들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여기서 아줌마들이 말하는 위너스란 곧 홈센스이기도하고 마쉘이기도 하다. 결국 그 세 자매에게 가봤느냐는 말이다. 이제는 너무너무 잘 안다. 이 세 자매상점에 물건이 가득 들어온 날은 얼마나 볼게 많고 사고 싶은 물건들이 많은지 말이다.
위너스의 옷들은 일반, 이름도 모르겠는 브랜드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꽤 괜찮은 브랜드들, 아주 명품은 아니지만 나름 브랜드가 있는 상품들이 많이 보인다. 예를 들면, 폴로, 나이키, 아디다스는 물론이고 요즘은 자라 옷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특히나 화장품 코너를 둘러보고 있노라면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는 환국 화장품들! 갑자기 한국 부심이 뿜뿜 생겨나고, 이렇게나 많이 한국 화장품을 쓴다고? 하는 생각에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가방도 저렴하지만 꽤 질이 괜찮은 다양한 가방들이 있는데 가끔 코치도 보이고 MK도 보이고 누군가는 구찌 브랜드도 보았다는 걸 들어보건대 점점 더 흥미로워지는 위너스다. 가끔 이곳에서 아주 맘에 드는 상품을 빨간딱지 붙은 상태로 찾아낸다면 득템 of 득템을 한 기분이다. 비록 누군가가 한번 입어봤던 걸 환불받아서 가격이 저렴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사용에 전혀 문제는 없지만 작은 하자가 있어 가격이 깎인 것 일수도 있지만 그런 것이 전혀 상관없다면, 그리고 특히나 캐나다에서 쓸 물건이라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저렴하게 사면 살 수록 이득인 이곳이다.
마쉘은 주로 내가 아이들 운동화를 살 때 즐겨간다. 신발 종류도 많고 디자인도 꽤 괜찮아서 아웃렛에서 살 때보다 저렴한 가격을 신발을 구입할 수 있다. 학교에서 실내화도 운동화로 신는 이 나라는 아이 한 명당 운동화를 자주 바꿔줘야 하는데 그럴 때 마쉘만큼 유용한 곳이 없다.
그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뭐니 뭐니 해도 홈센스다. 'Homesense'
까만 간판인 위너스를 갈 때보다, 파란 간판인 마쉘을 들어갈 때보다, 빨간 간판인 홈센스로 향하는 내 발길은 그 어느 때보다 즐겁다. 물건을 사러 가지 않아도 매장을 돌아다니는 내내 홈센스는 아이쇼핑만 해도 눈이 즐겁다. 시즌마다 바뀌는 상품들도 재밌고, 집안 곳곳에 걸려있는 그림을 다 갈아치우고 싶을 만큼 그림 종류도 다양하다. 벽걸이 시계는 또 왜 그렇게 예쁜지. 테이블 스탠드는 왜 이리 다양한지. 이번에 들어온 가구는 어쩜 이렇게 예쁜지. 사고 싶은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우리 남편은 내가 홈센스에 가서 무언가 사서 손에 쥐고 집에 들어오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대부분의 남편들이 그런 것 같다. 먹고 사는데도 돈이 많이 드는데 왜 그렇게 집을 꾸미고, 뭘 갖다 놓고, 빈 벽만 보면 뭔가 걸고 싶어 하는지 그런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들이다.
처음 이민을 왔을 때, 내 집도 없고, 남편 직장도 없고, 신분도 불안정하고 모든 것이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는 집 벽에 그림을 거는 것은 정말이지 사치스러운 행동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둘러보니 캐나다에 사는 사람들은 인테리어에 진심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 단순히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봄이 오면 집안 곳곳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장식들로 바꿔놓고, 여름이 오면 앞마당, 뒷마당 꾸미기에 진심이며, 가을이 오고 추수감사절이 돌아오면 현관문부터 가을가을하게 꾸며놓은 캐나다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막상 그들처럼 하려니 인테리어에 들어가는 금액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집 현관부터 집안 구석구석 인테리어를 신경 쓰며 사는 캐나다 사람들은 집을 가꾸며 살아가는데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이고, 돈이 들더라도 언제나 늘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해서 집을 꾸민다. 작은 소품 하나 바꿔 놓는 것이 집안 분위기를 얼마나 바꾸게 할 일인지 알기 때문이고, 가족적인 분위기를 중요시하는 캐나다에서 인테리어 소품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꽤나 크다고 생각한다. 하루하루 먹기 살기 바쁜 인생이 아니라 집을 돌보고, 가꾸고, 꾸미는 일에 시간과 돈을 쓰는 사람들이라니, 역시 캐나다 사람들은 삶의 여유가 남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됐든 홈센스를 구경하는 일은 남편에게는 마누라가 거기서 또 뭐 하나 사들고 올까 봐 벌벌 떠는 일인지 몰라도 그 마누라는 오늘도 홈센스에서 작은 물건 하나 사들고 나오며 기분이 좋아졌다는 사실을 알아주기를. 분명 남편은 그 소품을 거기 놓는다고 뭐가 크게 달라지나, 왜 저런데 돈을 쓰나 하겠지만 그 마누라는 그 소품을 거기 놓음으로써 나도 이제 점점 캐나다 삶에 익숙해져 가는 거라고 이해해 주기를.
2년 전, 지금 우리 집으로 이사를 왔을 때 두 달 동안 남편과 나는 홈센스를 하루도 빠짐없이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집이 텅텅 비었기에 어차피 사야 한 물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때 어찌나 행복했던지.. 이젠 집이 어느 정도 자리를 갖춰가고, 더 이상 그림을 사다 걸 빈 벽도 없는데 나는 아직도 종종 홈센스에 놀러 간다. 봄이 왔구나 느낄 수 있고, 여름이구나 알 수 있고, 여기 사람들은 이런 걸 사서 이렇게 쓰면서 사는구나 알 수 있어서. 그리고 그게 너무 좋아서.
나에게도 충분히 놀 시간이 있다면 몇 시간이고 이곳에서 놀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은 심심하면 놀이터를 가듯, 아줌마인 나는 심심하면 홈센스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