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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현 Nov 24. 2023

능력주의 세상에서 생존자이자 피해자가 되다

심리상담가의 사색13(작성: 2023.5.21.)


본 글은 심리상담가로서 상담하고 생활하며 느낀 바를 나누는 글이며, 1인칭 시점의 독백체의 글로 이루어집니다.

아울러 본 글에서 언급된 사람의 이름, 직업, 나이, 지역 등 배경정보는 각색되어 창작되었으며, 실제 인물이나 기관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repules, 출처 Unsplash


며칠 전 아이의 어린이집에서 연사를 초청하는 강의에 다녀왔다.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행사 중 하나였던 터라, 당연히 시간을 비우고 가긴 했지만 특별히 어떤 주제의 강연인지는 방문하는 당일에서야 확인을 했다.

강연 주제는 능력주의 세상에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사회학자 출신의 연사가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 강연은 내가 살아오면서 추구했던 학력이나 전문성에 관한 나의 입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강연이었는데, 그만큼 불편하기도 하고 피하고 싶기도 했던 주제였다. 아무래도 나도 이 능력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배경을 갖고 있다 보니 더욱 그랬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강연 내용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생각해볼 거리를 상당히 많이 던져주었다. 


연사가 강연 내내 강조했던 점은 능력주의가 이상적으로는 결코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필연적으로 능력이 없는 사람을 비아냥거린다거나, 차별과 배제에 대한 정당화가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이 문제라는 점이었다. 아울러 이와 같은 정당화가 사회 전체적으로 만연하면 우리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이 능력 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가해자가 되는데, 당사자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하였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는 성적으로서 순위를 가른다. 그리고 1등을 상당히 칭찬한다. 누가 보면 다소 과할 정도로 1등만을 인정해준다. 문제는 이 과한 칭찬과 인정이다. 1등을 과할 정도로 칭찬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1등이 아닌 자를 패자로 만든다. 그리고 등수의 하위권에 있는 사람들은 '게으르다, 부족하다, 못 났다' 등의 프레임을 씌우게 된다. 단지 성적이 안 나오는 것인데, 게으르고 부족하며 못 난 인간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이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결국 자기 스스로를 패자로 바라보게 되고, 이에 대해 힘들어하며 이 프레임(틀)에서 생존하기 위해 더욱 더 승자가 되고 싶어 한다.

강연 내용은 내가 이 때까지 나도 모른 채 능력주의 프레임으로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강하게 불러일으켰다. 나 또한 1등을 하고자 엄청 노력했던 사람이었고, 거기에서 소위 말해서 사회가 인정하는 학력을 갖춘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연사가 전달했던 내용 중에 이와 같은 글이 있다.


'차별과 혐오가 심해지면, 차별과 혐오를 피해 노련하게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불평등은 대수롭지 않은 개인의 문제가 된다.'


개인적으로 강연 중에서 가장 많이 나를 돌아보게 했던 문구였다.

고등학교 때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좋은 대학가야, '잘' 살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알고 있었고, 그것이 자연스러웠다 보니 나도 거기에 맞추어서 가고자 했다. 대학에 와서도 좋은 곳에 취업하거나 좋은 경력을 쌓는 것이야말로 '잘' 살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열심히 살았다. 이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왔다. '내가 사는 사회가 그러니까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열심히 해야지.'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면서 말이다.




나는 지극히 사회에 순응하는 사람으로서 살아왔고, 개인적으로는 다행스럽게도 능력주의/학벌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되었다. 그러면서 나 또한 연사가 말했던 것처럼 무언가를 열심히 하지 않거나 좋은 결과를 얻어내지 못 하는 사람들을 보면 거시적인 관점보다는 개인의 문제로 많이 바라봤다. 즉,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경쟁의 달리기에서 출발선 자체가 다를 수 있다는 인식, 달리는 과정에서 차이를 만드는 거시적인 요인이 있을 수 있다는 점, 경쟁 방식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는 인식 등을 보지 못 한 채 이른바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개인'만 바라봤던 것이다.  


한편 지극히 순응하면 생존자로서 살아왔지만 동시에 잃어버린 것도 있었다. 순응 방식에 길들여지다 보니,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규칙이나 틀 자체의 문제가 있다는 생각보다는 '원래 그런 것이니' 거기에 맞춰버리는 사고방식만 갖게 됐다. 그리고 그 규칙 내에서 생존하지 못 하면, 나의 노력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생각해버렸다. 마치 능력주의 세상에서 1등이 되지 못 한 자가 패자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능력주의 세상에서 승자처럼 비춰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나 또한 패자가 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선후배 및 동기가 좋은 곳으로 유학을 가게 될 때 느끼게 되는 열등감, 나는 갖지 못한 학력이나 전문성, 유명세를 얻은 사람을 볼 때 느끼는 패배감 등 말이다. 다르게 말하면, 능력주의라는 것에 철저히 길들여지다 보니 이것 자체가 삶에서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 버렸고, 이로 인한 고통과 괴로움이 생겨나서 내 삶을 지배해버렸다. 쇠사슬에 묶여 매일 매일 간을 쪼이게 되는 프로메테우스처럼 매일 매일 이 기준으로 끊임없이 나를 비교하고 평가하니 말이다.

어찌 보면 나 또한 능력주의 세상의 피해자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중요한 것은 사회가 능력을 중요시하고, 이것만 엄청나게 중요시되는 사회적인 분위기 자체를 문제 삼아야했던 점인데 말이다.


내가 글을 이렇게 썼다고 해서, 나 또한 피해자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고 해서, 능력주의나 나 자신을 옹호한다거나 방어할 마음은 없다. 충분히 이것은 비판받을 부분이 있으니까 말이다. 다만 능력을 중요시하는 세상은 사실 모든 사람을 패자이자 피해자로 만드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소 다른 관점을 얘기해본 것이다.

아울러 이번 강연이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최초의 사건은 아니다. 나도 모른 채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이와 같은 생각을 하게 한 이전의 수많은 사건들이 나에게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들이 차근차근 쌓여오면서 현재 이 순간 내가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심리상담가로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계속해서 나의 내면을 피하지 말고,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솔직하게 직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심리상담은 상담가 자체가 중요한 도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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