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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현 Nov 24. 2023

심리상담은 특수한 관계에서 시작된다

심리상담가의 사색12(작성: 2023.5.7.)  


본 글은 심리상담가로서 상담하고 생활하며 느낀 바를 나누는 글이며, 1인칭 시점의 독백체의 글로 이루어집니다.

아울러 본 글에서 언급된 사람의 이름, 직업, 나이, 지역 등 배경정보는 각색되어 창작되었으며, 실제 인물이나 기관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cdc, 출처 Unsplash


얼마 전, 한 지인이 나도 알고 있는 D를 만나고 왔었다. 그리고 요즘 D가 심리적으로 힘들어 한다며 심리상담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며 이야기를 했다.

이 외에도 오랜 만에 친구들을 만났는데, 자신이 요즈음 심리적으로 힘드니 심리상담 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심리상담을 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이중관계(상담자-내담자 관계 하나 뿐만 아니라 이외의 추가적인 관계)는 맺지 않는다는 걸 오랫동안 배워왔고, 그러니 당연히 나의 지인에게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심리상담사의 윤리 강령에도 명확하게 이중관계나 다중관계를 금지하고 있고,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지만 개인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면서 이번에 이런 경우를 경험하면서 과연 나는 이중관계나 다중관계를 왜 조심하고 있는지 생각해봤다. 


나는 왜 이중관계를 경계하고 지키려고 할까?


나의 생활 반경에서 발견되는 내담자가 종종 있다. 내가 운동을 하러 센터에 가다가 그 곳에 같이 다니는 회원인 경우도 있고, 내가 차 한 잔 하러 자주 가는 카페에서 손님으로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을 발견하는 순간, 다소 긴장감을 느끼며 가급적 그들의 눈길을 피하고자 한다. 지인과 같이 가면 이후에 뭔 일 있냐고 물을 정도로 예민하게 나의 변화된 무언가를 감지하는 일도 더러 있었다.

개인적으로 내담자에게 사생활을 노출하고 싶지 않고, 나의 사생활은 사생활로서 지키고 싶은 욕구가 자리하고 있다. 어찌 보면 과도하게 방어적이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것들이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심리상담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다. 한 사람으로서 다수의 사람이 보일 법한 마음과 행동을 나도 갖고 있다. 때때로 나도 우울함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있고, 자신을 돌보지 않은 채 번아웃이 오는 경우도 있으며, 나만의 방향성을 잃은 채 쳇바퀴 도는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아울러 아내와의 관계에서 나 또한 섭섭하고 화나는 경우가 있고, 자녀 양육에서 일관적이지 못 한 감정적인 아빠가 되기도 한다. 

어찌하겠는가. 나 또한 하나의 인간일 뿐인 데 말이다. 

반면, 심리상담은 내담자의 치료와 회복을 위한 시간이다. 이를 위해 돈까지 지불하는 특수한 시간이며 특수한 관계를 맺는다. 그렇다보니 상담가인 나 또한 이들에게 그 목적과 기대에 부합되는 역할의 옷을 입고 행동한다. 심리상담에서 내담자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전달하고, 공감과 같은 기법으로 그들을 보듬고 북돋아주기도 한다. 가급적 비난, 비평, 판단 등을 배제한 채로 말이다. 이 외에도 내담자의 치료와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그와 관련된 말이나 행동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특수한 관계에서 비롯되는 심리상담이기 때문에 내담자와 나는 좀 더 솔직해질 수 있다. 상담사의 말이나, 내담자의 말이나 행동이 조금은 더 오해 없이 서로에게 전달될 수 있게 된다. 이같은 솔직하고 진솔한 시간을 통해 내담자는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점점 느껴가며, 치료와 회복이라는 상담 목표가 점점 달성된다.

만약 상담 장면 밖에서 상담자와 내담자 간에 개인적인 관계가 있었다면, 그 때 비롯된 누군가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상대에 대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생길 수 있으며, 상대에 대한 실망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잠재적으로 심리상담에 방해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으며, 그렇다면 결국 이로 인해 심리상담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가진 시간이 아쉽게도 만족스럽지 않게 될 수 있다.


사실 어찌 보면 반쪽짜리 인간으로 내담자와 만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거짓되고 조작된 만남이 아니냐며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결코 거짓된 반쪽자리 만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의 일부를 보여주는 것은 맞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순간 보여주는 나의 마음과 태도만큼은 진실하게 그들을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내담자의 치료와 회복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나의 마음이나 행동은 솔직한 나의 진심을 드러낸 것이지, 결코 그것이 거짓된 마음이라거나 조작된 행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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