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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현 Nov 24. 2023

심리상담치료는 기적의 마법가루가 아니다.

심리상담가의 사색18(작성: 2023.7.30.)


본 글은 심리상담가로서 상담하고 생활하며 느낀 바를 나누는 글이며, 1인칭 시점의 독백체의 글로 이루어집니다.

아울러 본 글에서 언급된 사람의 이름, 직업, 나이, 지역 등 배경정보는 각색되어 창작되었으며, 실제 인물이나 기관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onthesearchforpineapples, 출처 Unsplash


유료로 상담센터를 운영하면서 느끼는 점 하나는 무료로 상담하는 곳과는 달리 내담자가 첫 회기에 결정하는 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번 상담사와 심리상담을 더 해보면 좋을지, 아닌지를 빠르게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무료로 심리상담치료를 진행해왔던 상담사에게는 꽤 충격적인 일이다. 짐작하겠지만, 바로 나의 이야기다.

내담자를 만나서 나름대로 열심히 심리상담이 어떤 접근을 통해 치료와 성장을 목표로 하는지 안내하고 구조화한다. 또한, 첫 회기인 만큼 상담받으러 오는 내담자의 어려움이 무엇인지와 어떻게 변화하고 싶거나 해결하고 싶은지도 이야기를 나눈다. 동시에 최대한 내담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내담자와 신뢰로운 관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그다음 상담 약속에 노쇼를 한다거나, 중간에 취소하는 경우가 꽤 발생한다. 이것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처음으로 상담받으러 온 H는 배우자와의 관계로 인해 너무 답답하고 힘들다고 했다. 또한 자신이 부부 관계에서 매우 억울하고 희생만 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의 답답한 마음과 희생한 것 같은 억울한 마음을 따라가며, 그의 마음에 공감하고 이해해주고자 했다. 

동시에 H는 배우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나에게 질문을 했다. "선생님, 제가 갈라서는 게 맞을까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더 맞춰야 할까요?" 등 나의 의견을 물었다.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자연스레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질문의 방향을 내담자로 향하게 한다.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H의 생각을 물어보았다. H는 적잖게 당황스러운 표정을 하며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하기는 하였지만, 무엇인가 아쉬운 표정과 함께 주춤주춤했다. 이후 남은 시간 동안에서도 H는 심리상담에서 무엇인가 답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에 나에게 여러 질문을 했다.

나는 H가 답을 얻고 싶은 하는 마음을 알아주면서도 동시에 정답은 내가 갖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가져나가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해주었다. 그는 이것에 대해 당연히 알고 있다고 했지만, 그렇더라도 심리상담 전문가로서 나의 의견과 견해는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후에 나는 몇몇 상황에 대해 나의 의견을 전달해주었고, 다음 약속 시간을 잡고 첫 상담 시간을 마무리하였다.

며칠 후 H는 심리상담을 더 진행할 것에 대해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는 문자와 함께 상담 진행을 멈추었다.


개인적으로 H와의 상담이 중단된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아무래도 첫 상담이 H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H는 나를 전문가로 보았고, 전문가로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기대했다. 그리고 그것이 첫 만남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심리상담치료가 분명히 내담자의 치료와 성장을 위하여 마련되는 시간이긴 하지만, 그와 같은 변화를 이뤄내는 것이 첫 회기에 이루어지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첫 시간에 기적같이 해결을 만들어내는 마법가루가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내담자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 상담사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비록 문제를 바라보는 프레임이 협소하고 제한적이었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본인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생각을 어느 누구보다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심리상담사가 내담자를 단 한 번 만나서, 그의 문제나 어려움을 듣고 모두 이해한다는 듯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내담자가 경험하는 삶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가볍게 보거나 혹은 과소평가하는 태도일 수 있다. 

아울러 상담의 치료 효과는 상담자와 내담자와의 신뢰 관계로부터 비롯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 그의 어떠한 말이나 행동도 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파트너와 다툰 상황에서 파트너가 옳은 소리를 하더라도 그것을 듣기 싫은 것처럼, 상대를 적대적으로 혹은 거리를 두면서 바라보면 그의 말과 행동이 가슴에 와닿기는 어렵다. 반면에 사랑에 빠진 당사자는 애인의 어떠한 말과 행동에도 좋은 의미를 부여하고 그 모습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신뢰는 대체로 시간이 쌓여가며 만들어지는 일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볼 때, 내담자와 좋은 관계를 만들고, 내담자 삶의 고통과 무게감을 존중해주는 것은 상담 시간에 끊임없이 상담자가 해야 할 작업이다. 그리고 꾸준히 노력해서 서로 간 신뢰의 토대가 단단해질 때야말로, 상담사의 어떠한 제안이나 조언도 효과를 낼 가능성은 커진다.


때문에 심리상담치료의 첫 만남이 기적을 만들어내는 마법가루가 되어 극적인 변화와 해결을 이루어내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을 기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내 삶을 내가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며, 그래서 심리상담사에게 자기 삶의 권리를 넘기는 일이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인정할 수는 없다. 내담자의 삶은 마땅히 그의 것이고, 그의 것이어야 한다. 

물론 엄청난 대가(大家, master)를 만나서 도움을 받는다면 첫 회기의 기적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만약 대가를 만나서 이와 같은 변화를 이룬 것은 내담자가 이미 그 대가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심리상담치료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심리적 작업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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