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가의 사색31
쾌(快)와 불쾌(不快)는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
본 글은 심리상담가로서 상담하고 생활하며 느낀 바를 나누는 글이며, 1인칭 시점의 독백체의 글로 이루어집니다.
아울러 본 글에서 언급된 사람의 이름, 직업, 나이, 지역 등 배경정보는 각색되어 창작되었으며, 실제 인물이나 기관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patrickperkins, 출처 Unsplash
어릴 때부터 행복은 좋은 감정을 유지하는 것으로 생각해왔었다. 이것이 사회의 메세지였는지, 부모님의 메세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에게 있어서 행복은 좋은 감정인 것만은 확실했다. 그래서 행복한 삶이라고 하면, 웃고 기쁘고 긍정적인 정서가(valence)를 누리고 유지하는 삶이라고 그렸다.
정신분석학의 시초라고 평가받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도 초기 시절에는, 무의식은 쾌락을 추구하고 불쾌를 멀리하는 쾌락원칙에 따라 움직이고, 무의식에 지배를 받는 인간 또한 동일하게 바라보았다. 이후에 쾌락원칙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인간의 심리를 보면서, 이후에 그는 쾌락원칙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직관적으로 쾌락을 추구하고, 불쾌는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그래서 행복은 쾌락을 유지하는 상태로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 보니, 쾌락을 경험하는 행위나 심리, 불쾌를 경험하는 행위나 심리가 마치 다른 종류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밥 먹는 것은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고 공부해서 1등 하는 것은 좋은 것으로 보이나, 밥 먹지 않고 굶고 있는 것은 나쁜 것이고 공부에서 꼴찌 하는 것은 기분 나쁜 일로 생각하기 쉽다.
나 또한 계속해서 쾌락과 불쾌를 다른 것으로 분리하고 생각해왔는데, 점점 이 생각이 아닌 듯싶다. 지금은 두 가지가 사실은 하나로 이어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세히 말해보자면, 쾌락이 있는 곳에 불쾌가 동시에 있다는 것이다. 쾌와 불쾌가 개별적이고 독립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동일한 행위나 심리의 다른 측면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 있겠다는 점이다. 마치 "사과냐? 배냐?"라는 다른 것을 이해하는 질문이 아니라, "손의 앞면이냐? 뒷면이냐?"라는 질문과 같이 같은 것을 다르게 보는 질문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심리 상담을 수련 받을 때, 지도 교수님께서는 내담자의 두려움의 자리로 그를 데려가고, 함께 머무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가령, 내담자가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을 떠올린 다음 생생하게 느끼면서도 상담사가 그 자리에 같이 있으라는 말씀이었다. 혹은 회사에서 승진을 못 할 것 같은 불안감으로 힘들어하는 내담자에게는, 실제로 승진을 못 할 것 같으면 어떨 것 같은지 물어보면서 그가 두려워하는 자리로 데려가라는 말씀이었다.
처음에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 말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상담은 사람을 나아지게 만드는 건데, 왜 힘든 걸 하라는 거지?'라는 의문이 있었다.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의 자리를 가는 것이 내담자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건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었다. 또한 이러저러한 여타의 이유로 내담자를 두려움의 자리로 데리고 가는 것들을 주저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다 보니, 이후에 느꼈던 주된 생각들은 바로 상담이 겉돈다는 느낌이었다. 더 솔직하고 속 깊은 이야기가 되지 않고, 어느 수준에서만 계속 맴도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상담하고 나서 수퍼바이저에게 사례를 지도 받으러 가면, 왜 직접적으로 내담자가 힘들어하는 것을 묻지 않았는지,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는지 등과 관련한 피드백을 받았다.
이후에 피드백을 반영하고, 나 또한 상담가로서 노력을 하면서 점점 내담자가 두려워하는 지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탐색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상담은 점점 솔직하고 속 깊은 지점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스스로 느끼기에 진정으로 내담자와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의 진실한 인간성을 경험하는 듯한 느낌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두려움과 공포의 지점에서 내담자의 솔직한 욕구와 바람이 드러난다는 것이었다.
상담 시간에 내담자 C는 왕따를 당한 경험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는 매우 상처받은 기분, 버려지는 기분, 쓸모없는 기분 등 괴롭다고 여겨질만한 정서 경험을 하고 있었다. 동시에 자신을 무시하고 왕따시켰던 대상들에게 느껴지는 화나 분노감 또한 경험했다. 또한 왕따 상황에 대항할 수 없었던 무력감, 주변이나 환경에서 자신을 도와주지 않았던 점에 대한 실망감 같은 정서도 경험했다. 이와 같은 자신의 아픔에 대한 경험을 충분히 하고 차분해진 후,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단지 저를 믿어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한 사람만이라도 저를 믿어주길 바랐어요. 그거면 충분했을 텐데요."
이와 같은 경험들을 점점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두려움과 공포라는 부정적인 감정에는 사실 그 사람의 진정한 욕구와 바람이 담겨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심리상담에서는 내담자의 욕구나 바람을 많이 묻는다. "무엇을 원하세요?", "무엇을 바라세요?", "어떠했으면 좋겠어요?" 등 그의 욕구나 바람과 관련한 질문을 한다. 다르게 말하면, 이 질문은 욕구와 바람이 채워지지 않을 때 당사자가 예상하는 두려움과 공포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과도 동일하다. 반대로 두려움, 공포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묻는다. "원하는 일이 안 되었을 때, 어떨 것 같아요?", "그때 실제로 얼마나 괴로웠나요?", "어떤 부정적인 감정일까요?"와 같은 질문들을 묻게 되는데, 그건 바로 그의 마음 안에 담겨있는 자신의 솔직한 욕구 혹은 바람을 확인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묻는다.
이처럼 쾌락과 불쾌도 다르지 않다. 두려움과 공포가 불쾌와 관련된 대표적인 예라면, 욕구와 바람은 쾌락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회사에서 승진이 누락되는 것을 불쾌라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승진을 하고 싶다는 욕구인 쾌락이 동시에 있다. 공부에서 1등을 하고 싶다는 바람인 쾌가 있다면, 1등이 되지 못했을 때 자신이 느낄만한 두려움과 공포의 불쾌가 있다. 즉, 쾌와 불쾌는 하나로 이어져있는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