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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현 Mar 03. 2024

질문하는 사람

심리상담가의 사색 32


질문하는 사람_심리상담가의 사색 32


본 글은 심리상담가로서 상담하고 생활하며 느낀 바를 나누는 글이며, 1인칭 시점의 독백체의 글로 이루어집니다.

아울러 본 글에서 언급된 사람의 이름, 직업, 나이, 지역 등 배경정보는 각색되어 창작되었으며, 실제 인물이나 기관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kellysikkema, 출처 Unsplash


새벽에 일어나 명상하는 경우, 아직 잠에서 덜 깨어나서 멍하다거나 졸게 되는 경우가 이따끔씩 생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매일 명상을 하는 이유는 하루 중에서 새벽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어느 것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순간 중 하나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명상을 해가고 있다.


하루는 문득, 멍하거나 피로하지도 않은 채 또렷하게 명상을 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내 마음에서 '질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그날 새벽 한 시간 동안의 명상에서는 결국 이 '질문'이라는 화두에 대한 나의 마음을 여러 갈래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질문'이라는 단어가 어째서 갑작스럽게 마음에서 떠올랐을까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질문이라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도 정리해 볼까 싶다.




심리상담에 대한 여러 고정관념 중 하나는 상담사는 듣기만 하는 앵무새, 혹은 질문만 하고 해답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것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실 이것이 틀린 고정관념도 결코 아니다. 실제로 나의 상담에서도 내담자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고, 내담자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듦으로써 그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기도 하니 말이다.


그럼 왜 질문하고 듣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다.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 질문이야말로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질 높은 질문이 제공된다면, 자신을 이해하거나 수용하거나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생각해 보고, 이를 표현하면서 언어로 정리해 봄으로써 내담자 스스로 자신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거나, 자기의 마음을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아무래도 이렇다 보니, 나는 다른 사람에게 질문이 많다. 직업병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을 알아가게 될 때 그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고, 내 이야기를 대체로 먼저 시작하지는 않는다. 즉, 나는 말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질문하고 듣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무작정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결코 아니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고, 관심 없는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혹은 다른 여러 이유로 무작정 상대방이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듣지는 않는다. 또한, 상대와의 관계를 맺을 때 나도 그 사람과 결이 맞는지 아닌지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나 또한 내담자를 알아가거나, 혹은 개인적인 관계를 맺어갈 때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노력이나 시도를 하게 되는데, 그중에서 많이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질문하기다.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질문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질문의 방향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즉, 내가 관심 있어 하는 것을 바로 알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앞서 밝혔다시피, 좋은 질문은 자기를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상대의 답변을 통해서 나와 결이 맞을지 아닌지를 확인하게 해준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질문이란, '관계'이다. 좋은 질문은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 기초가 된다. 때문에 아무 질문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위해서 좋은 질문을 하고자 노력한다. 




새벽에 명상에서 '질문'이 떠오른 것은 아무래도 내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고, 관계를 맺고 싶은 개인적인 욕구에서 발휘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좀 더 많은 사람이 질문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더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떠올랐을 것으로 생각한다.


심리상담가라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 매우 큰 정체성임에는 부인하고 싶지 않다. 한때 평생을 심리상담가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해왔을 만큼 중요한 정체성이다. 하지만 지금은 평생 심리상담가로 살겠다는 마음이 있지만, 이 하나만의 정체성으로 내 남은 삶을 정하고 싶진 않다. 거기에서 하나 추가하고자 하는 정체성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질문하는 사람'이다.


나는 앞으로 질문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고, 그들이 좀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데 있어서 내가 조금이라도 역할을 하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는 심리상담가로서뿐만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으로서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고, 구체화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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