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폴앤모닝 Nov 22. 2023

커피숍에서 웰에이징을 경험하다

나이 드니 좋읍디다~

나이가 드는게 서러울 때 있나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나이가 드니까 좋은 점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봐요. 몇 개 말해 볼까요.


지난 주 일요일 아침에는 친구와 커피숍에 갔더랬지요. 친구와 아침 산책을 하고 이 시간에 커피숍이 문을 열까 하면서 갔는데 막상 가보니 사람들이 들끓고 있습디다. 덩달아 그 곳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쉴 새 없이 바빠 보였구요. 본사에서 고심하며 디자인 해 놓았을 계산대 뒤 동선 안에서 직원들이 수 십 가지의 메뉴를 만들고 주문 받고 그릇을 꺼내고 씻고 헹구고 각종 재료들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그들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더란 말이에요. 진땀 나는 삶의 현장이랄까.


그럴 때의 커피 주문은 앞에 사람이 많지 않아도 기다림이 필요하지요. 동동거리던 한 직원이 눈빛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을 0.5초 나에게 지어주며, 잠시만요 이것만 먼저 처리해 드리고 주문 받겠습니다 했지요.


바로 이 때, 저는 제가 웰에이징하고 있다고 느꼈답니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의 나는 여유가 없어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봐 주기 싫어서, 이런 상황에서 불편한 기색 먼저 보인 다음, 나의 억지 기다림을 그 사람의 탓으로 돌리며, 그 기다림의 댓가로 그 직원에게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게 하기 위한 바디랭기지를 은연 중에 내뿜었었단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달라졌답니다. 죄책감 유발성 스멀거리는 바디랭기지 대신, 가벼운 눈미소를 지으며 네 찬찬히 하세요 했지요. 일찍 애를 낳았으면 저만한 장성한 자식이 있었겠다는 측은지심에서부터 타인을 따뜻한 시선으로 처다볼 때 내 삶이 더 풍요로워지게 된다는 깨달음까지. 그 눈미소의 이유는 결국 제가 잘 나이가 들고 있다는 팩트에서 나오는 거더라 이 말입니다. 이것이 제가 나이가 드는 것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첫번째 이유입니다.


네 찬찬히 하세요 이 후에도 그 직원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널을 뛰며 바빠보였는데요. 그 사이에 저의 매의 눈에 띈 것은 바로 설거지 통에 담겨 있는 컵 위로 콸콸 쏟아지는 수도꼭지 물이었답니다. 우리의 지구 지키기. 건전하게 웰에이징하고 있는 개개인이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누가 한단 말입니까. 웰에이징한다고 느끼기 2탄은 바로 이 순간에 이루어졌는데요. 극강의 I이자 극강의 F인 제가 불편함을 무릅쓰고 직원에게 저 물 좀 잠가 주시지요 하고 말했단 말이지요. 왜냐하면 우리의 잠깐의 감정적 불편함보다 우리 후손이 살아갈 지구가 더 소중하니 말입니다. 지구의 소중함과 지구의 후손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이 고운 마음 역시 제가 잘 에이징하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마지막으로 제가 나이 들고 있음을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지구가 소중하다며 바쁜 사람 수돗물 잠그라고 꼰대짓을 해도, 그럽디다 저럽디다 '디다'체를 남발해도, 이제는 저에게 뭐라 싫은 소리 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입디다. 아무리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써봤자, 우리는 모두 많던 적던 시간이라는 저울 위에서 꼰대의 무게를 조금씩 늘려가고 있지 않습니까. 꼰대는 꼰대 나름의 배포를 지니게 되는 법. 이렇게 두둑한 배포를 얻을 수 있으니 이 또한 나이들어 좋은 점일 수 밖에요. 커피숍에서 따끈한 커피도 마시고 자신이 잘 늙고 있다는 증거도 줄줄이 얻었으니 오늘 커피는 비싼 값 했네요.


뭐 아님 말고.



작가의 이전글 나의 작은 그녀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