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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앤모닝 Jan 16. 2024

아이오와 김치볶음밥

한인마트에 다녀왔어요.


아삭한 김치가 미친듯이 그릴워 질 때.

위장에 뜨끈한 라면국물을 연료로 부어주지 않으면 신진대사 작동이 멈출 것 같을 때.


미쿡 도착 1주일차.


ㅈ마켓은 이곳 아이오와 시티에 터줏대감 한인마트입지요. 구글맵이 친절하게 알려주는 대로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요. 간판에서 세월이 느껴집니다.

그 당시 젊디 젊었을 주인장이 야심차게 걸어올렸을 간판은 닳을대로 닳아있었는데요. 자음하나 알아볼 수 없더라구요.

초라한 겉모습과는 달리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하.. 숨통이 탁 트이며 하~ 살 것 같은 이 기분.

익숙한 언어. 익숙한 색깔. 익숙한 냄새.


당당히 홈메이드라고 적힌 바로 너! 팔천만 김치! 80MILLION KIMCHI! 오늘은 너로 정했닷!

돼지고기랑 푹 끓인 김치찌게는 왜이렇게 먹고싶은지. 온통 그 생각이 며칠동안 나를 사로 잡았는데요.

가격도 가격이지만, 양념 슬슬 무쳐 시원한 맛으로 담겨진 맛김치로 김치찌게는 좀 무리지요.

요 녀석은 밥이랑 라면이랑 아껴아껴 먹어야겠다 싶었지요.



그리고 이틀째,

아들녀석이 '엄마, 김치볶음밥 해주면 안돼?'

고민.. 고민.. 김치 살짝 아깝..


그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나의 모토가 '해보고 후회하자' 아니던가!

아까운 김치를 김치볶음밥에 섞어먹는 데 내 모토를 사용해야하다니 어불성설, 얼토당토 안해도 일단 마음 먹은 일, 까이꺼 해주자 마음먹은 내 눈빛을 보고 아들은 벌써 들떠 있으니 어쩌누.

자! 이제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아이오와 김치볶음밥 레시피 들어갑니다.



아이오와 김치볶음밥 레시피:

1. 올리브유에 다진 김치를 볶는다.

2. 그새 냅비밥에 달인이 된 나는 살짝 굳어있는 식은 밥을 전자렌지에 30초 데운다.

3. 작은 후라이팬을 달궈 계란 후라이 만든다. 후라이 없으면 끝장이다.

4. 반투명해져 흐믈해져가는 뜨겁게 볶아지고 있는 김치 위에 은근 데워진 밥을 시크하게 올린다.

5. 뒤집고 누그고 밥,김치, 그리고 김치에서 나오는 국물을 섞는 전투적인 행동을 반복한다. 이때 살짝 치치 소리가 들리면 매우 잘하고 있다는 뜻이다.

6. 김치볶은밥을 접시에 담기 전 '아들~ 다 되가~' 하고 말한다.

7. 김치볶은밥을 접시에 정성껏 담고 계란후라이도 그 위에 보란듯이 올린다. 아들의 눈에서는 보석같은 빛이, 침샘에서는 폭포같은 침이 나오는 걸 온 몸으로 느낀다. 펄쩍펄쩍 뛰는 아들을 보면 요리하는 기쁨이 배가 된다.

8. 윤기와 향을 책임질 참기름 반스푼 호로록 돌린다.

9. 김치가 아까워 딱 1인분만 만들었으므로 나는 아들 옆에 앉아 호호불며 김볶을 먹는 아들을 쳐다본다.

10. '맛있어?'를 매 숟가락질마다 묻는다.

11. '응응 최고!'과 엄지척을 날리는 아들을 보며 흐뭇해한다.



한국 식재료는 아무래도 가격이 비싸다보니, 만리길 너머 아이오와에서는 아무래도 음식을 아껴먹을 수 밖에 없지요. 그 이전 어느 때보다 우리 세 식구는 음식의 소중함을 많이 느낀답니다.



음식 남기지 않기. 그리고 항상 감사하게 먹기.


저 교훈을 온 가족이 몸소 느끼고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이 멀리 떨어져 살면서 식재료 아껴아껴 먹는 수고스러움은 상쇄되는 것 같기도 하구요.


만리길 너머 아이오와 생활.

오늘도 무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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