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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둥이 May 27. 2024

주간 감사 일기 2024.5.22~5.26



2024. 5. 22. 수요일. 감사 일기



커피 마시느라 방치해 뒀던 차를 시원하게 한 잔 담아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햇살은 약간 따갑지만 바람이 아직 시원하다. 요 근래에는 비가 자주 내려서인지 잠깐의 햇빛이라도 참 감사하다. 흐린 날을 겪어봤기에 맑은 날의 소중함을 안다. 겪어보지 않아도 알면 참 좋을 텐데. 하지만 서서히 알아 간다는 것의 의미는 그것보다 더 크겠지.



가끔 책을 구입하기도 하지만 자금과 공간의 압박을 이유로 빌려보는 게 수월하다. 보고 싶은 책을 예약해 두고 며칠 혹은 몇 주간의 기다림 끝에 마주했을 때의 기쁨은 생각보다 크다. 언젠가 내 차례가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왠지 특별한 이벤트에 당첨된 것 같은 기분이다.


- 시원한 차 한 잔과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2024. 5. 23. 목요일. 감사 일기


아침에 반가운 전화가 왔다. 두 달 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내 안부가 궁금해서, 그리고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했다고 했다. 틈틈이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또 한 시간가량을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아서 전화를 끊고 한참을 아쉬워했다.


호흡이 짧은 글, 목소리를 듣고 감정을 교류하는 통화, 긴 템포로 써 내려간 일기 형식의 편지 등 모두 그것대로의 의미가 깊지만 오늘의 통화는 하루의 시작에 활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어쩌면 하루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속이 시원했으니까. 오래가겠지 싶었다.


나는 뭐가 그리 어려워서 전화 한 통 하지 못하고 사는 걸까. 왜 스스로 고립되어 있는 걸까.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세상을 마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쁨을 알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2024. 5. 24. 금요일. 감사 일기


어젯밤 조용하던 집에 펑 소리가 울렸다. 놀라 부엌으로 나갔지만 별다른 이상을 찾을 수 없었다. 분명 '펑'하는 소리였음에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서였는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식사 준비를 하려고 인덕션의 전원을 눌렀는데 반응이 없다. 어젯밤의 정체 모를 소리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얼른 A/S 신청을 했더니 다음 주 화요일에 방문이 가능하다고 했다. 요리를 하지 않고 며칠을 버틸 수 있을까?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니 종류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요즘 과일과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없었고, 아이는 김자반에 밥을 비벼주거나 에어프라이어로 조리가 가능한 식품, 혹은 돈가스 배달 등으로 며칠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랑은 일터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오면 되는 일이다.


문득 우리가 얼마나 편하게 살고 있었고 무엇 하나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또 다른 편리함이 우리 옆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정말 좋은 세상에 살고 있었네.


사실 어제 에어컨 청소를 맡기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에어컨 덕분에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고 얼마나 좋아, 내 힘 들이지 않고 청소 업체에서 깨끗하게 청소도 해주고 말이야. 그런데 한편으론 의구심이 들었다. 한여름이면 가족 모두가 거실에 나와 선풍기 하나 켜고 잠들었던 시절. 그때는 정말 그게 불편했을까. 세상이 이만큼 발전하면서 정말 편해지고 좋아진 게 맞을까.


나는 그저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편리함을 포기하고 아날로그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냥 이렇게 주어진 나의 생활에 감사하며 살아야지.


-불편함 속에서 편리함을 찾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2024. 5. 25. 토요일. 감사 일기



이사 오고 처음으로 영화관에 갔다. 아이와 함께 하는 영화관람이라 장르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웬일로 팝콘을 먹고 싶다고 해서 한통 샀다. 음료는 미리 집에서 텀블러에 담아왔다. 리클라이너 좌석이라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그 시간을 즐겼다. 깊은 생각 없이 그저 깔깔 웃고 마는 내용이라 더 좋았나 보다.


평소에 혼자만의 시간으로 독서를 즐기는 편인데, 이참에 영화도 종종 보러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약 두 시간가량을 온전히 영화관 안에서 보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이번에 다녀와보니 집에서 영화관까지 걸어서 5분 거리라는 점과 편한 좌석이 주는 메리트가 참 크게 느껴졌다. 더 이상 건물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책 읽는 만큼은 아니라도 앞으로 영화와 더 친해져야지.


- 아이와 웃으며 영화를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2024. 5. 26. 일요일. 감사 일기


오늘은 아이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날이다. 한 달에 한 번이면 딱 좋겠다 싶지만 보름 정도 의도적으로 미룬다. 집에서 이발을 한다는 생각만으로 귀찮음이 밀려온다. 하지만 막상 덥수룩하던 머리가 단정해지면 뿌듯하다.



아기 때면 몰라도 지금은 유아용 이발기와 미용 가위를 구매해서 최대한 깔끔하게 마무리하려고 노력한다. 다행히 초2인 우리 집 아이는 아직도 엄마가 머리카락 잘라주는 것을 좋아한다. 예민한 탓이기도 하다. 어찌 됐든 돈 아끼고 시간 아끼고 좋다.


언젠가는 저도 미용실에 가겠다고 하는 날이 오겠지. 머리카락에 손도 못 대게 하지는 않을까. 그게 지금은 아니니까 더 이상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그날이 오면 그때의 나와 아이가 알아서 잘하고 있을 거다.


- 아이와 함께 TV를 보며 이야기를 하며 머리카락을 잘라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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