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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Mar 20. 2024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58

기쁘고 즐겁게 삽시다.

<The Merry Drinker, 1629>
- Frans Hals

보통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희로애락의 감정을 경험한다. 혼자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서 희(喜)와 락(樂)을 맛보기도 하지만 분노 유발자들의 무례한 언동에 로(怒)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 소식에는 애(哀)를 느끼기도 한다. 

이런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들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다. 그간 감상했던 미술작품들 중에도 인물의 표정에 희로애락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들이 있다. 대표적인 작품 하나씩 소개해 보고자 한다. 선정 기준은 '내 맘'이다.


1. 喜

Judith Leyster <The Merry Drinker>.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술병을 들고 있는 아저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차림새나 표정이 약간 과하지만 기분이 매우 좋아보인다. 관람자에게 건배를 제의하는 듯한 포즈다. 그림 설명에 따르면 이 아저씨는 당시에 인기있었던 광대라고 한다. 사람을 웃기는 직업이었기 때문에 늘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실제 마음 속은 어땠을 지 몰라도).


아무렇게나 후다닥 칠한 거 같은 화풍에서 Frans Hals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그의 작품은 아니다. 그의  제자로 추정되는 Judith Leyster의 작품이다. 그녀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여류화가였다. 당시 여성으로선 드물게 화가조합의 회원으로 활동했고 자신의 스튜디오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Leyster는 남성 일색의 미술계에서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떨쳐내고 실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항상 외로웠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술 한잔에 위로받으며 맘껏 웃고 싶은 심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2. 怒

Artemisia Gentileschi <Judith and Holophernes>. 우피치 미술관.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대노(大怒)를 넘어 피도 눈물도 없는 단호함이 압권이다. 유디트는 적장 홀로페르네스가 이스라엘 마을을 함락하기 직전 시녀와 함께 적진으로 가서 그를 만취하게 한 후 목을 잘랐다. 이스라엘판 논개다. 굳게 다문 입술과 적장의 목을 슥삭슥삭 베어버리는 오른손에 극대노가 서려 있다. '너 이 xx 오늘 죽어봐라!!' 하고 가차없이 처단하는 강인한 전사의 모습이다. 


젠틸레스키는 어릴 때 아버지의 동료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겪은 악몽이 작품 속에서 복수심으로 발현된 것 같다. 아마 작품 속 유디트의 얼굴은 젠틸레스키 본인이고 목이 잘리는 사람은 자신을 성폭행했던 사람이 아닐까.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장면 묘사가 사실적이고 명암법도 강렬하다.


3. 哀

Vincent van Gogh <Sorrowing Old Man>. 크뢸러-뮐러 미술관.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 머리를 두 손에 묻은 채 괴로워하고 있다.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자세만 봐도 깊은 슬픔과 절망이 느껴진다. 사모님이 돌아가셨을 수도 있고 자녀들에게 안좋은 일이 생겼는 지도 모른다. 시공을 초월해서 이런 자세는 극도의 좌절을 느낄 때 나오는 것이다. 작품 감상자조차 마음이 안좋다. 


이 작품은 고흐가 1890년 오베르쉬아즈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던 시절에 그린 그림이다. 어쩌면 본인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느끼는 감정을 노인에 투영한 게 아닐까. <감자 먹는 사람들>처럼 분위기가 어두침침하진 않지만, 고흐 특유의 역동적인 붓터치로 인해 노인의 슬픔이 고스란히 감상자에게 전해진다.


4. 樂

Jacob Jordaens <The King Drinks>. 벨기에 왕립미술관. 

제대로 된 즐거운 술판이 벌어졌다. 가운데 왕관을 쓴 할아버지는 흥에 겨워 어쩔 줄 모른다. 왼쪽 아저씨는 부어라 마셔라를 외치고 있고, 왼쪽 하단에 나오는 아저씨는 술을 게워내는 중이다. 오른쪽 아주머니는 응가를 싼 아이 엉덩이를 닦아주면서 동시에 술자리 분위기를 타고 있다. 등장인물 모두가 행복하게 이 순간을 즐기는 중이다. 


17세기 플랑드르 바로크 화가인 Jacob Jordaens가 그린 그림이다. 주현절(막 태어난 예수께 경배한 동방박사 세 사람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 축제일에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식사를 같이 하는 장면이다. 보통 축제일에 왕으로 임명된 사람이 왕관을 쓰고, 파티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에게 건배를 제의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바로크 화가 아니랄까봐 역동적인 인물 표현과 과장된 감정이 작품에 그대로 묻어나 있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기쁜 일이 있으면 환하게 웃으며 한 잔 하고, 적이 쳐들어오면 극대노 상태에서 무자비하게 처단한다. 깊은 슬픔에 빠지면 머리를 싸매고 고통스러워 하고, 기쁜 일이 생기면 모두 모여 흥겨운 파티를 한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다만 매일 발생하는 怒와 哀 vs 喜와 樂의 대결에서 후자의 비중을 높여가는 건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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