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상예찬 Apr 16. 2024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66

19세기 퓰리처상 수상자는 바로 이 분!

<The Massacre at Chios 키오스섬의 학살, 1824>

- Eugene Delacroix


(좌) The Terror of War, (우) Waiting Game for Sudanese Child. (구글 다운로드)

인터넷 서핑하다가 우연히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 모음을 봤다. 하나같이 다 훌륭하지만 특히 두 작품이 눈에 띄었다. 베트남전의 참상을 알린 <The Terror of War, 1973>와 수단 내전 당시 굶주린 소녀를 노리는 독수리를 담은 <Waiting game for Sudanese child, 1993>이었다. 어떤 말과 글도 현장을 더 잘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찰나의 순간을 제대로 포착했다. 사진 한 장이 세상을 움직이고 역사를 바꾼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사진들을 보다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그림 하나가 떠올랐다. 낭만주의의 거장 외젠 들라크루아의 <키오스섬의 학살>이다. 1822년 그리스 독립운동 시기 오스만 군대가 키오스섬에서 그리스인 수만 명을 죽이고 포로로 끌고 갔던 사실을 알린 그림이다. 작품을 그리기 전 화가는 이 사건에 관한 기사와 책도 많이 읽고 목격자들의 진술까지 들었다고 한다. 당시엔 사진기가 발명되기 전이었으므로 이 작품이 사실상 전쟁 보도사진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Eugene Delacroix <The Massacre of Chios, 1824>. 루브르 박물관.

책에서 도판으로 봤을 때는 몰랐는데 실물이 너무 커서(419*354cm) 놀랐다. 덕분에 인물들의 표정과 작은 움직임까지 잘 볼 수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오스만투르크 식민지로 있던 그리스에서 1822년 독립운동이 일어났을 때 오스만 군대가 키오스섬에서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한 사건이 작품의 배경이다. 


그림 전면에 오스만 군대의 살인과 약탈에 모든 희망을 잃고 사실상 '처분'을 기다리는 그리스 사람들이 보인다. 저 뒷편에 연기가 자욱한 걸로 보아 아마 저 동네에서도 방화와 약탈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뒤에 보이는 아름다운 에게해 바다와 참혹한 양민학살의 현장이 대비되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이미 죽은 엄마의 배 위로 올라가며 젖을 찾는 아기가 보인다. 그 옆엔 나체상태로 몸부림치며 오스만 군대에게 끌려가는 여인이 있다. 승리한 자의 전리품이다. 왼쪽 아래에는 한 커플이 전의를 상실한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고, 그 옆엔 벌거벗은 여인이 한 남자에게 키스를 하고 있다. 얼굴 색깔이 이미 잿빛이 된 것으로 보아 이미 죽은 것 같다. 할머니의 망연자실한 눈빛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도륙의 현장을 겪으며 이미 넋이 나간 듯하다. 


낭만주의 거장의 작품답다. 등장인물들의 감정표현이 강렬하고 전체 상황이 극적이다. 아마 신고전주의 화가가 이 상황을 그렸다면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이 나왔을 것이다. 가지런하게 오와 열을 맞춘 깔끔한 장면을 묘사했을 것이고, 주제도 패전국 국민의 끔찍한 얼굴보다는 승전국 장수의 의기양양한 표정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을까. 


이 작품은 외젠 들라쿠르아가 1822년에 벌어진 역사적 사실을 충분한 고증을 기반으로 그려서 1824년에 살롱전에 출품했다고 한다. 이 작품의 영향인지 이후 유럽문화의 원류인 그리스 독립전쟁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급증했다고 한다.


Vassili G. Chudiakov <The Massacre of Chios>. 아테네 베나키 박물관.

키오스섬에서 벌어진 양민 대학살 사건은 그리스인들에게도 엄청난 충격이었나 보다. Vassili G. Chudiakov라는 그리스 화가도 들라크루아 작품보다 30년 후인 1854년에 같은 제목의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에도 이미 죽어서 널부러져 있는 사람, 도망가는 사람, 오스만 군대를 저지하려는 사제(아마 창에 찔려 죽었을 듯..) 등 그날의 참상이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다. 아마 그리스인들도 이 사건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6.25노래 가사처럼 '아~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후략)..'을 되뇌이지 않을까 싶다.  


들라크루아는 역사의 현장을 뜨거운 가슴으로 진실하게 보도했던 진정한 기자였다. 지금으로 치면 그의 그림은 세상을 움직이고 역사의 흐름을 바꾼 훌륭한 보도사진이다. 1842년에 퓰리처상이 있었다면 대상작이 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진심으로 리스펙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