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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Apr 22. 2024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67

도박은 절대 손도 대지 말자. 

<The Cheat with the Ace of Diamonds, 1635-1638>

- Georges de LA TOUR


(좌) <타짜> 중 개평들고 다시 도박하러 가는 호구 교수, (우) <카지노> 중 바카라에서 작업당하는 호구형. 구글 다운로드.

오랜만에 영화 <타짜>를 다시 봤다. 2006년 영화이니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가는 작품이다. 명품배우들의 열연은 말할 것도 없고, 도박하는 사람들의 심리상태와 도박판의 생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수작이다. 특히 다 털리고 나서 개평받은 걸 들고 다시 도박하러 들어가는 한 교수는 인간의 허황된 욕망의 끝을 잘 보여준다. 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 <카지노>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호구형이 등장한 적이 있다.


영화 속 호구 교수를 보니 그림 하나가 떠올랐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봤던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의 작품이다. 이 화가는 주로 어둠 속에서 촛불 앞에 앉아 있는 여인을 그리는 분인데 이번엔 도박판을 그리셨다. 


Georges de LA TOUR <The Cheat with the Ace of Diamonds>. 루브르 박물관.

실제로 영화 <타짜>를 보는 듯 가슴 졸이는 화투판(?)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딱 봐도 지인들끼리 동전치기 친목 고스톱 치는 게 아니다. 사기도박단 세 명이 호구 한 명을 등쳐먹고 있다. 맨 오른쪽 호구 청년은 차림새로 보아 부잣집 자제 같다. 도박을 처음 배웠는지 표정도 순진무구 그 자체다. 


맨 왼쪽 남자는 자기 패를 등 뒤에 숨겨놓고 관람자에게 이를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자신이 사기를 칠 거라는 걸 미리 알려준다. 마치 <타짜> 대사처럼 "걱정하지 마라. 손은 눈보다 빠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관람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공범이 되고 있다. 중앙에 앉아 있는 여주인은 곁눈질로 여종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고 그녀는 술을 따라주면서 남자가 어떤 패를 꺼내고 있는지 주인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런 작업이 진행되는 것을 꿈에도 모르는 오른쪽 호구총각은 표정이 진지하기만 하다. 자기 앞에 남아 있는 동전이 금세 다 털리기 직전인데. 카라바조의 키아로스쿠로 기법(명암법) 영향을 받았는지 배경이 어둡고 중앙 인물에 빛이 집중되고 있다.


Caravaggio <The Cardsharps, 1590-1594>. 구글 다운로드. 

이렇게 도박판에서 타짜들이 작업해서 어리숙한 사람을 거덜내는 건 수백 년전에도 횡행했나 보다. 카라바조도 사기도박단이 사기치는 장면을 그렸다. 가운데 사람이 왼쪽 사람의 카드를 훔쳐보고 반대편 공범에게 손가락으로 신호를 해주고 있다. 검은 옷의 호구 청년은 상황을 전혀 모른채 자기 카드만 보고 있다. 동네에서 한두 따봤다고 기고만장해서 진짜 '선수들'이랑 대결하고 있는 순진한 청년의 모습이 안타깝다.


Valentin de Boulogne <Soldiers Playing Cards and Dice, 1615>. 구글 다운로드. 

위 카라바조 그림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그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 테이블 오른쪽 두 명은 주사위 게임을 하고 있고 왼쪽 두 명은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왼쪽 맨 뒤 군인 복장을 한 사람이 바로 앞 청년의 카드를 보고 건너편 공범에게 어떤 패가 들어왔는지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내주는 중이다. 불쌍한 청년 곧 다 잃겠다. 속이고 속는 도박판의 긴장감이 잘 나타나 있다. 여기도 또 카라바조 영향인지 배경은 어둡고 인물에 대해서만 조명이 집중적으로 비치고 있다. 


이런 작품들 보면 사람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도박판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속고 속이는 작업이 횡행하고, 곧 다 털리고 거지신세로 쫓겨날 호구 한두 명 반드시 있고. 


김혜수 같은 미인이 꼬셔도 도박은 무조건 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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