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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May 25. 2024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76

<최후의 만찬>은 다빈치가 짱!

<The Last Supper, 1495-1497>

- Leonardo da Vinci


학창시절 기계적으로 외운 몇몇 미술작품들이 있다. 예를 들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 모네의 <수련>, 고흐의 <해바라기> 같은 것들이다. 그림도 잘 생각나지 않고 내용도 거의 잊어버렸지만 수십 년이 지나도 머릿 속에 남아 있다. 그 중 여태껏 책 도판으로만 접하면서 늘 궁금해 했던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지난 주말 드디어 만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수도원.

실물을 보고 사이즈(880cm*460cm)에 놀랐다. <모나리자>랑 큰 차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클 줄이야! 500년 전 수도원 식당이었다는 홀의 한쪽 벽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수도사들은 식사를 하러 이 홀에 하루에 세 번씩 드나들었을텐데 그 때마다 이 거대한 그림을 바라보며 신앙심을 다졌을 것이다.  


이 작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날 밤 제자들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하는 시간을 담았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신할 것이다(마태 26:21, 누가 22:21)'라고 폭탄발언을 했을 때 그들의 다양한 반응을 묘사했다. 제자들의 몸짓으로 볼 때, "아니, 그게 누굽니까!!", "저는 아니죠??", "저 녀석인가봐", "너 혹시 누군지 알아?" 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벽화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 여섯 명씩 앉아 있는 안정적인 구도이다. 르네상스하면 균형이니까. 더 자세히 보면 세 명씩 네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수십년 전 마사초(Masaccio)로부터 시작된 원근법도 충분히 표현했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에 보면, '마치 또 하나의 홀이 수도사의 홀과 이어져 그 안에서 최후의 만찬이 이루어진 것 같다'는 표현이 나온다. 실물을 보니 정말 그러했다. 바로 옆 다른 홀에서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 다빈치가 그림을 그릴 때 그런 효과까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쉬운 점은 왜 이걸 식당 벽에 그렸을까 하는 점이었다. 음식 만들 때 나오는 열기와 밀라노의 습기가 작품을 망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빈치는 당시에 유행했던 프레스코 기법 대신 템페라 기법으로 그렸는데 여기에 쓰이는 계란 노른자가 부식을 촉진했다고 한다. 다빈치같은 천재라면 이런 결과를 충분히 예상했을 것 같은데 왜 부식이 빠른 템페라 기법으로 그렸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다빈치가 살아있을 당시부터 그림이 망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수도사들이 그림 속 식탁 부분을 뚫어 문을 만들기도 했고, 나폴레옹 군대가 밀라노를 점령했을 때는 수도원을 마구간을 사용했다고 한다. 게다가 제2차 대전 때는 수도원이 폭격을 맞기도 했다고 하니 이 상태로 보존된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긴 하다.


(좌) Dieric Bouts <The Last Supper>, (우) Domenico Ghirlandaio <The Last Supper>. 구글 다운로드.

사토 아키코의 <세계의 명화>라는 책에 따르면, 다빈치 이전에 그려진 다른 화가들의 <최후의 만찬>에는 보통 유다만 분리해서 혼자 테이블 반대편에 앉히거나 배제하는 구도였다고 한다. Dieric Bouts 작품을 보면 유다 혼자 뒤에 서있고, Domenico Ghirlandaio 작품에는 유다만 식탁 건너편에 앉아 있다. 아마 배신자 유다를 부각시키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다빈치는 유다를 격리시키지 않고 같은 무리 속에 포함시켰다. 다만 얼굴을 좀 시커멓게 처리해서 다른 제자들과 구분지어 놓았을 뿐.


Pieter Paul Rubens <The Last Supper>. Brera Museum.

밀라노 Brera Museum에는 플랑드르 바로크 회화의 거장 루벤스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 소장되어 있었다. 이 작품은 나폴레옹이 밀라노를 점령할 때 루브르에 있던 작품을 브레라 미술관으로 옮겼다고 한다.


다빈치 작품이 수평적으로 안정적인 구도를 보이는 반면, 루벤스 작품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제자들이 둥그렇게 앉아 있다. 어두운 배경과 밝은 식탁의 대비가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하고, 루벤스 그림답게 붓질이 전체적으로 꿈틀거리는 것 같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발언에 깜짝 놀라 웅성대지만 맨 맨 앞에 있는 유다만 자신이 배신자임을 들킨 것이 찔리는 듯 불안한 눈빛으로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다. 유다 발 밑에 있는 개도 눈빛이 영 맘에 안든다. 보통 그림 속 개들은 사랑스러운 모습인데 이 작품 속에선 늑대의 눈처럼 매우 무섭고 사악하기까지 하다.  


다빈치 전후 '한가락'하는 많은 화가들이 <최후의 만찬>을 작품으로 남겼지만 다빈치를 넘는 건 어려워 보인다. 인물의 생동감 있는 몸짓과 표정, 안정적인 구도, 사이즈 등 모든 측면에서 다빈치가 압도적인 금메달이라 생각한다. 수백년 간의 풍파를 이겨내고 살아남아 준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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