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구현(일명 '참교육')
<The Judgement of Cambyses, 1498>
- Gerard David
지난 주 뉴스에 중국에서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성범죄자들이 사형선고를 받은 후 곧바로 처형됐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저런 흉악범들은 찢어 죽여야 해'라고 장삼이사들이 저잣거리에서 말하는 것들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정의구현이다. 중국은 속된 말로 '얄짤없다'. 사실 이런 식의 철저한 복수는 도덕적 잣대를 대기 전에 인간 본성에 부합하기도 한다. 고조선 8조법금에도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라고 되어 있고, 성경이나 함무라비 법전에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구절이 있는 걸 보면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 마음은 똑같다.
벨기에 브뤼헤(Brugge) Groeninge Museum에는 '정의구현'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 하나 있다. 15세기 플랑드르 화가인 Gerard David가 그린 <The Judgement of Cambyses>란 두폭 제단화(diptych)다.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한다.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캄비세스란 왕이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한 재판관 시삼네스(Sisamnes)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바로 살아있는 상태에서 가죽을 벗기는 것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정신이 사회를 지배하던 시대에 누구보다도 준법정신이 투철해야 할 재판관이 비리를 저질렀기 때문에 더더욱 가혹한 벌을 내린 셈이다. 더구나 그 가죽을 후임 재판관 의자의 깔개로 씀으로써 재판관이 항상 법을 지키면서 살도록 무언의 압력을 가했다고 한다.
재판관 Sisamnes가 체포되는 장면이다. 붉은 법복을 입고 온갖 똥폼을 다 잡고 있다가 반부패범죄수사대(?)에 체포되고 있다.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정의구현의 본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양팔의 가죽을 벗기고 있다. 칼을 입에 문 푸른색 옷 아저씨는 이미 왼쪽 다리 가죽을 허벅지까지 벗긴 상태다. 머리쪽에 있는 사람은 가슴을 열고 있다. 내용을 모르고 보면 Rembrandt의 <해부학 실습> 그림처럼 사람들에게 시체 해부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더 끔찍한 것이 있다. 우측 상단을 보면 어떤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는데 이 사람이 바로 가죽이 벗겨지고 있는 Sisamnes의 아들이고 의자에 깔린 하얀 천(?)이 바로 아버지의 벗겨진 가죽이라고 한다. 부정부패로 걸리면 즉결처분하고 아들의 엉덩이 깔개가 되어 버린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다. 이 그림은 브뤼헤 시청사 벽면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관리들이 오가면서 이 그림을 보면 뒷구멍으로 돈 받아 먹는 건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같은 주제로 그린 작품이 하나 더 있다. 바닥에 깔려서 극형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 Sisamnes이고, 좌측 뒷쪽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 그의 아들이다. 이 그림엔 아버지 가죽이 아예 벽에 걸려 있다. 지금 봐도 끔찍한데 15-16세기에 살던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오줌을 지릴 정도로 공포스러웠겠다.
세상이 흉흉해지면서 천인공노할 범죄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금수만도 못한 것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현대 형법과 인권관념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끔찍한 형벌이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마음 한 켠에서나마 이런 극형을 상상할 수도 있겠다. 사랑과 교화만으로는 많이 부족한 게 현실이니까. 흉악범들은 정말 '참교육' 시켜야 하는데..
c.f.) 미술관 설명을 보니 이렇게 정의구현하는 내용의 그림을 Exemplum iustitiae라고 한단다. 알아두면 조금 유식한 '척'은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