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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린 Dec 17. 2018

사랑보다 더 쉬운 증오라니

하키를 바탕으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 <베어타운>

실로 간만에 인생 소설을 만났다. 600쪽에 가까운 두꺼운 책이었지만, 이마저 아껴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천천히 곱씹으며 읽었다. 책을 읽다가 멈추었다가 배크만의 표현을 곱씹는 순간이 많아졌다. 베어타운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였기에, 그 모두의 입장이 하나하나 섬세하게 다뤄진 게 놀라울 뿐이었다. 배크만의 말대로,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친구와 적, 우리와 그들, 선과 악으로 나누면 세상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훨씬 덜 무서워할 수 있다’지만, 이 소설은 단순히 그 양면성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600쪽에 걸쳐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에게 가르쳐준다. 세상과 사람은 그렇게 둘로 나누기에 단순하지 않은 거라고. 서로 다른 사람이 모여 세상을 이룬다는 걸 이해하게 해준다.


증오는 매우 자극적인 감정일 수 있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친구와 적, 우리와 그들, 선과 악으로 나누면 세상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훨씬 덜 무서워할 수 있다. 한 집단을 똘똘 뭉치게 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어렵다. 요구사항이 많다. 증오는 간단하다.
그래서 갈등이 벌어지면 우리는 제일 먼저 편을 정한다. 양쪽의 생각을 같이하는 것보다 그러는 편이 더 쉽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의 믿음을 뒷받침 할 만할 증거를 찾는다. 그런 다음에는 적에게서 인간성을 거세한다. 그러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간단한 방법이 이름을 제거하는 것이다. (...) 어떤 인간을 더이상 인간으로 보지말자고 서로를 설득하는 건 금방이면 된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많은 시간동안 침묵하면 목소리를 내는 소수가 너나 할 것 없이 악을 쓰는 듯한 인상을 풍길수 있다.



소설 <베어타운>은 하키를 사랑하는 '베어타운'이라는 마을에 대한 이야기다. 베어타운 만의 이야기라고 하기엔 우리 주변에서도 볼법한 사람들의 이야기고, '하키'라는 스포츠에 대해 이야기하기엔 우리의 인생 이야기에 더 가깝다. 어쩌면 ‘하키’라는 말 대신 ‘인생’으로 바꾸어도 말이 될만큼,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스포츠인 하키 이야기에 그렇게 빠져 들었다. 

숲속 작은 마을 베어타운에도 잘 사는 사람들이 사는 하이츠와 중산층이 사는 중심가, 그리고 임대 아파트에 사는 할로로 나뉜다. 그리고 그날 밤을 둘러싸고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뉜다. 하키 선수들 사이에선 영웅과 벤치에 앉아있는 자로 나뉘고, 하키를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 자로 나뉜다. 이익을 둘러싸고 하키 구단의 이익만을 좇는 자와 이익이 아닌 하키, 그리고 선수들을 더 생각하는 자로 나뉘는 곳이다. 그 작은 베어타운에서도 이렇게 사람들이 나뉜다. 다양한 기준으로 다양한 갈래로 갈린다. 한 사람이 이쪽에 속하기도 저쪽에 속하기도 한다. 특정한 누군가를 비난할 수 없고, 특정한 사람들만을 옹호할 수 없다. 우리네 사는 세상이 꼭 그렇다. 이렇게 당연한 진리를,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금 깨달았노라고 고백하고 싶다. 어쩔 땐 가장 당연한 진실이 가려져, 뭐가 옳고 그른지 모를 때가 많다.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이 주인공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 속에서 주인공이었다. 그만큼 배크만의 소설 속 인물들에게는 하나하나 그들만의 힘이 있었다. 

말은 하찮은 것이다. 다들 얘기하길 말로 일부러 상처를 주려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다들 자기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남자아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들은 여자아이가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말허리를 자르고 그녀가 어떻게 했는지 질문을 퍼붓는다. (...) 그녀는 열다섯 살이니 부모의 동의없이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나이라고 하고, 그는 열일곱 살이지만 다들 '어린애'라고 표현한다. 그녀는 '젊은 아가씨'다. 말은 하찮은 게 아니다.



하키를 끔찍이 사랑하는 베어타운 사람들. 베어타운 하키 청소년팀이 우승하는 명예를 위해, 선수들을 아니 아이들을 이용하는 어른들 (이사단, 후원자들), 그리고 하키를 빼면 살 수가 없을 만큼 하키가 전부인 아이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순수할 것 같은 마을에, 하키 선수 중 영웅으로 손꼽히는 케빈이 인기도 없는 중산층 소녀 마야를 성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야기는 절정에 치닫는다. 사람들은 진실을 알면서도 알지 못한다. 보이는 것도 보이지 못한다고 한다.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가해자를 피해자인 양 걱정하고 우둔한다. 진실이 무엇인지에 상관없이 집단이 된 사람들의 한마디는 큰 흉기로 되어 마야를 덮친다. 우리의 삶에도 있을 법한 일이기에, 소름이 끼칠만큼 무섭고 슬픈 이야기란 걸 알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 하키 경기가 눈앞에 그려지듯 생생하다가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하키 경기를 앞둔 그들의 각오가 느껴질 때면 손에 땀이 났다. 마야와 아나가 세상에 둘만 남겨진 듯 힘들어할 때면 나도 그들과 함께 울었고, 벤이 그만의 방법으로 세상에 반항할 때 나는 그의 옆에 있어주고 싶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나를 돌아보았고 반성했다. 말 한마디가 얼마나 날카로울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따뜻할 수 있을지, 책을 읽는 내내 느끼고 또 느꼈다. 이 책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이 책 한 권을 읽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배크만이 사람을 얼마나 섬세하게 관찰하고 묘사해 낼  수 있는지, 그의 책을 모두 정독하고 싶어졌다. 당분간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내가 느낀 이 감동을, 그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오베라는 남자'를 쓴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베어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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