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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린 Feb 08. 2019

여행, 책, 사람 - 내가 이 모두를 사랑하는 이유

항상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방법

긴 여행을 마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건, 여행, 책, 사람이라는 걸.
항상 새로운 자극에 목말랐던 나는, 우연찮게 남편의 제안에 일상에서 벗어나 긴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하루 24시간을 꼬박 1년 넘게 함께 한 우리 둘에게조차, 우리의 여행은 서로에게 다르게 읽혔다. 내가 미술 전시를 보며 행복해할 때, 그는 미술관 앞 골목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는 게 더 행복했고, 내가 광장에서 사람들 구경하면서 맥주 한잔 하고 싶을 때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축구 경기를 보러 가고 싶어 움찔거렸다. 나에게 세계여행은, 단순히 새로운 나라를 많이 돌아다닌 게 아니었다.


매일 쫓기듯 살았던 시간이 처음으로 온전히 내 것인 것 같았고, 이 세상 모든 걱정을 떠안고 살았던 것 같았던 내 하루가 ‘오늘 뭐 먹을까’라는 하나의 생각만으로도 보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 옷이건 화장품이건 갖고 싶은 게 많았는데, 막상 여행을 하다 보니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다이어리와 커피 한잔, 그리고 읽을 수 있는 책 한 권이었다. 그리고 이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 하나면, 충분히 행복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온통 내 시간뿐이라면, 가장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 마음껏 책 읽기였다. 이럴 거면 회사 다니기 전에 학생일 때 많이 읽어둘걸, 학교를 다 졸업하고 나서 회사원이 되고 나서야 다시 책을 찾다니. 원래 시험을 앞두고는 공부 빼고 다 재밌어 보이지 않은가. (심지어 뉴스까지). 회사를 다니면서는 다시 공부를 하고 싶어 질 만큼 다시 공부 욕심이 솟는 걸 보면, 나도 참 말 다했다.


그렇게 나는 여행하면서 수시로 책을 읽었다. 사실 적어도 세 권은 가져가고 싶었는데, 배낭 무거워진다는 잔소리에 빼고, 휴대폰에 전자책을 다운로드하여 보기로 합의했다. 그때 처음 전자책을 접했다. 휴대폰으로는 기사 한 편도 끝까지 못 보는 내가, 그래도 책은 틈틈이 하루에 몇 분이라도 꼭 보고 잠드는 습관이 생겼다. 좋은 책 한 권을 다 읽을 때마다, 나는 사람이 그리웠다. 회사 다닐 땐 사람들을 모아 독서모임이라도 꾸준히 했는데, 이제 좋은 책을 만나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남편은 책을 싫어한다) 좋은 책을 만나고 나서 흥분한 마음에 아무나 붙잡고, 당신에겐 이 책이 어떻게 읽혔는지 물어보고 싶었고 내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인터넷도 원활하지 않고 불규칙했던 여행기간 동안, 결국 나는 혼자 다이어리에 내 생각을 쏟아냈다.


언젠가 ‘책은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게 정말 무슨 뜻인지 확 와 닿았다. 그만큼 여행하면서 하는 독서는, 새로운 곳에서 책 속에 여러 인물들을 만나면서 어우러지는 시너지 같은 게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여행하면서 하는 독서를 너무 사랑하게 되었다.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모두가 다 책이었다. 여행을 오기 전엔 퇴사든 세계여행이든 모든 게 막연하고 두려웠는데, 막상 세계 여행자가 되고 보니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용기 한 줌만 들고 나온 사람들이었다. 누구의 도전이 더 값진지 누구의 경험이 더 뜨거운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각자 저만큼의 인생을 내려놓고 나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서로에게 더 공감했고, 서로에게 더 뜨거웠다.

여행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하나씩 알아갈수록, 그땐 미처 몰랐지만 나는 한 명 한 명의 책을 읽었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내 인생밖에 몰랐던 내가, 다른 사람의 삶의 어느 순간 언저리에 존재했던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얼마나 영광스러운 순간인지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여행을 마치고 나서 그들이 내게 그런 존재였다는 걸 알고 나서야 알았다. 그들이 보여준 삶이 그랬다. 그들 저마다의 자신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그랬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나 혼자 거울로 아무리 비춰봐도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책처럼, 여행처럼, 사람도 저마다의 다른 모습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벌써 한국에 온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나는 여전히 여행자인 기분이다. 회사 점심시간에 빈 회의실에서 이렇게 끄적이는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여행자이다. 내 앞엔 사무실 책상들이 빼곡하지만 여전히 뜨겁고 여전히 설렐 수 있어서, 난 여전히 여행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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