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는 4시간만 일한다>를 읽고
책을 집어들면서도, "말도 안돼"라는 생각 뿐이었다. 이런 책들은 제목만 번드르르하거나 혹은 평범한 직장인과는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를 떠들겠지, 하며 나는 보통 이런 책을 잘 읽지도 않는 편이다. 그러다 지은이가 <타이탄의 도구들>을 쓴 팀 패리스라는 걸 보고 그냥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4시간만 일하기위해 일을 위임하고 자동화하는 것들을 계획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했지만, 아무래도 실제 직장인들이 써먹기엔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 글쎄, 미국이라면 조금 더 쉬울까? 책을 읽다 덮을까 했지만, 그래도 책에서 말하는 메시지들은 건질 만 했다. 취할 것만 취하고, 버릴 건 버리기로 맘 먹고 다시 책을 읽으니, 확실히 다시 읽혔다.
적당한 타이밍이란 없다. '언젠가'라는 말은 꿈만 꾸다가 생을 마감하게 할 병이다. 당신에게 어떤 일이 중요하고, '결국'에는 그 일을 원한다면 지금 바로 시작하라.
나는 '언젠가' 리스트 작성 전문가다. 인생은 길기에 버킷리스트를 적고 또 업데이트하며 산다. 하지만, 가끔 의문이 든다. 내가 정말 이걸 다 하고 죽을 수 있을까? 도전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를테면, 지금!
일단 시도한 후에 해명하라. 사람들이 '안돼'라고 말할 기회를 주지마라.
하기도 전에 사람들과 상의하면, '안돼'라고 말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미 저질러 놓은 후라면, 사람들은 '안돼'라고 하는 대신 응원해주기 마련이다. 혹 잘못 되더라도 어차피 온전히 내 책임이니 누굴 탓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와 상의한다는 건, 내 스스로 확신이 없어 그 사람에게 나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위임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나 조차 확신하지 못하면서, 상대방이 내 선택에 확신해주길 바라는 바보같은 생각.
사실 난 항상 나 스스로 결정한 적이 없었다. 항상 중요한 결정을 앞두면, 가족과 친구, 지인들에게 내 상황을 다 늘어놓고 조언을 구하곤 했다. 내 생각에 그들도 동의하면, "그래? 그럼 나도 해야겠다!" 하며 그제야 안심하고 자신감이 생기는 나였고, 그들이 "안돼"라고 말하면 계속 내 생각에 동의해줄때까지 설득하거나 혹은 "아, 그래? 이게 그렇게 별로야? 그럼 포기해야겠다"하고 바로 접어버리곤 했다. 그렇게 살았다. 항상 내 선택보다는 내 주변 사람들의 선택이 더 공정하고 정확하다고 믿으며 살았다. 나는 내 선택을 믿지 못했다. 그건 내가 나를 못 믿는다는 것과 얼추 비슷한 의미였는지 모른다.
두려움을 떨쳐내기 전에 먼저 두려움을 규정해야 한다.
- 영화 <스타워즈:제국의 역습> 중에서 요다
요즘 나는 내 마음을,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연습 중이다. 여행 전만 하더라도, 사실 나는 나 자신이 모든 것에서 가장 마지막이었다. 친구의 마음에 상처가 됐을까봐 맘 졸이면서 잠도 못 잤으면서, 정작 내가 나를 할퀴는 것도 모르며 살았다. 그러던 내가 여행하면서 찬찬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내 감정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온 세상 걱정을 다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항상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두려웠고, 다니지 않을 때도 두려웠다. 여행을 가기 전에도 두려웠고, 여행 중에도 난 여행 후를 벌써 걱정하느라 두려웠다. 하지만 정작 나는 뭐가 그렇게 두려웠던 것일까. 정작 두려움의 실체도 없으면서 난 습관처럼 혼자 막연하게 두려워만 하고 있던 게 아닐까.
책에선 두려움을 정확하게 정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이렇게 하면 안될거야. 막연하게 혼자 두려워하고 혼자 추측하지말고, 아예 두려움의 실체를 구체화시켜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에라, 최악은 틀림없이 내가 해외에 있는 동안 사업이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고장이 중간에 잘못되는 바람에 전달되지 않아 내가 고소당한다. 내 사업은 문을 닫게 되고 재고는 선반 위에서 썩어 나간다. 그동안 나는 아일랜드의 차가운 해안가에서 불행을 느끼며 고독하게 발가락이나 후비고 있겠지. 빗속에서 울면서...' 라고 나는 상상한다. 은행 잔고는 바닥날 것이고 차고 속의 내 차와 오토바이는 분명 도둑맞을 것이다. 내가 길 잃은 개에게 음식물 찌꺼기를 먹이는 동안, 누군가 높은 발코니에서 내 머리 위에 침을 뱉을 것이고, 그 때문에 놀란 개는 내 얼굴을 정통으로 물어버린다. 오, 신이시여, 인생은 잔인하고 냉혹합니다.(중략)
팀 패리스는 이처럼 최악의 시나리오를 아주 구체적으로 상상했다. 그러자 재미있게도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목표 아래 그는 막연한 불안과 모호한 걱정거리로부터 빠져나왔으며, 전만큼 걱정스럽지도 않았다고 한다.
당신은 1년 전보다, 한 달 전보다, 일주일 전보다 더 잘 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의 사정도 저절로 나아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보다 미래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내게 서른도 그랬다. 서른이 되면, 그래도 좀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아니면 내 삶에 대한 확신이 있거나 혹은 내 천직 같은 거라도 찾고 그렇게 살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당황스럽게도, 20대에서 30대로 접어들었는데도, 딱히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뭐랄까, 난 그대로 있는데 달력만 한장 더 넘어간 느낌? 결국 나이를 나이답게 먹게 하는 건, 나 자신에 달린 게 아닐까. 내가 성숙해지는 연습, 어른이 되는 연습, 혹은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하게 사는 연습을 해야, 나는 내 나이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우습지만, 나는 항상 24살 정도로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대학교 4학년 졸업반 정도. 아직 학생과 사회인 중간에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20살 때보다는 조금 더 현실을 아는 나이. 하지만 아직 사회에 나갈 준비가 덜 된 막내 느낌이었다. 그만큼 사회에서 살아남는 게 두려웠는지 모른다. 아직 막내니까, 실수해도 괜찮아. 하지만 지금부터는 아니다. 아직 우리 팀에서 나는 여전히 막내지만, 이제 실수가 귀여워보일 나이는 아니다. 사회생활을 할때도 여유가 있어야 하는 나이다. 서른이란, 그런 나이인 것이다. 이제 스스로 책임질 나이. 올해엔 내가 나에게 좀 더 책임질 수 있기를.
우리의 적은 지루함이지 어떤 추상적 개념의 '실패'가 아니다.
지루한 거 말고 나를 흥분시키는 일을 찾아 하라는 말에, 나는 두근거렸다. 하루에 10시간씩 야근하면서 일해봤자 BMW를 탄 뚱뚱보가 된다며, 그렇게만 되지 말자며 자신을 다독거렸다는 팀. (난 "BMW를 탄 뚱뚱보"라도 되고 싶다)
무엇이 나를 흥분시키는가. 글쓰는 순간이 그렇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나는 사람들을 모아 같은 뜻으로 뭔가를 해나갈 때 가장 흥분하는 것 같다. 그만큼 뜻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기 어렵고, 함께 시작하는 그 순간은 짜릿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자신감이 없다면 알아두라. 세상의 다른 사람들도 거의 다 그렇다는 것을. 경쟁에 대해 너무 과대평가하지 말고 당신을 과소평가하지도 마라.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니까.
결국, 어느 책이든 하나의 메시지라도 나에게 주는 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다. 코웃음치며 읽기 시작했던 책이지만, 그래도 이 책은 내게 몇가지 메시지를 남겨줬고, 적어도 이 글을 쓰고 있는 1시간의 시간동안 나는 내 삶을 돌아보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이어리에도 적고 내 생각도 적으면서, 나는 오늘도 짜릿함을 느낀다. 자, 이제 나는 뭘 시작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