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음식을 오감으로 표현한 책이 있을까? <단지, 뉴욕의 맛>을 읽고
먹는다는 소중한 의식을 빼앗긴다면 하루의 중심이자 근본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도 사라진다.
출간되자마자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식업계 버전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책. 정말이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패션업계 이야기라면, 이건 미식업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수많은 레스토랑에 가지만 제대로 경험할 수 없다는 건 고문이지. 하지만 그보다 일상적인 것들이 그립지. 아침에 맡는 커피향이라던가, 극장의 팝콘 냄새라던가. 일요일 아침에 먹는 갓 구운 베이글 냄새 같은 것들.
‘먹는다’는 건 일상 속 당연한 행동이라 의식조차 하지 않았는데, 음식은 먹는게 아니라 '음미'하는 거라는 미식업계 사람들의 이야기. 책은 꽤 두꺼웠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먹을 때 미식가가 된 듯 천천히 음식을 음미하며 먹어보기도 했다. 문학을 전공하고 푸드 블로거로 활동하는 작가였기 때문에, Food Lit이라는 독특한 소설 장르를 써낼 수 있지 않았을까. 음식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냄새가 나고 입에 넣을 땐 무슨 느낌인지, 음식을 '먹을' 때의 오감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그대로 표현한 걸 읽으면서, 나는 주인공 티아 먼로로 완전 몰입해 있는 걸 느꼈다. 분명 이 책은 일상 속 먹는 순간들, 음식 향, 느낌마저 새롭게 느끼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그냥 티아에게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순진한 대학원생 티아 먼로의 푸드 에세이가 우연찮게 뉴욕 타임즈에 실리고 뉴욕타임즈 푸드 섹션 에디터인 헬렌 란스키의 극찬을 듣게 되면서, 음식학에 꽂히게 된 티아. 하지만 그 뒤로 티아의 인생이 특별하게 달라진 건 없었고, 뉴욕에서 살아남기란 어려웠다. 그러다가 유명 레스토랑 평론가 마이클 잘츠의 달콤한 제안을 받아, 철저한 이중생활을 하게 된다.
어쩌면 뻔한 스토리일 수도 있을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스토리 전개와 꽤 비슷하게 흘러가 친숙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티아를 이해할 수 밖에 없도록 설득 당했다. 분명 티아는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하는 남자친구에게조차 원치않는 거짓말을 해야하는 이중 생활을 해왔지만, 그녀는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고 이를 빛나게 해줄 수 있는 기회를 갈망해왔던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헬렌 란스키의 인턴으로 일할 기회만을 노리며 그녀의 비밀스러운 이중생활을 이어나갔다.
이중생활의 대가는, 어마어마한 럭셔리 브랜드로 자신을 치장하고 대접받을 수 있다는 것과 다음 학기 헬렌과의 인턴 기회. 게다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높게 사주는 마이클 잘츠 덕분에, 뉴욕 타임즈에 정기적으로 글까지 실리다니! 이런 달콤한 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자기 형편과는 다르게 하루 아침에 자신을 명품으로 치장하고 귀한 대접을 받기 시작하는 티아를 보면서, 어느 정도 대리만족도 한 것 같다. 마치 내가 그런 명품들을 몸에 두르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녀를 무작정 비난할 수만은 없는 건, 바로 내 안에도 티아와 똑같은 인정 욕구와 성취욕, 그리고 야망이 있기 때문일거다. 적어도 음식학에 누구보다 열정을 가지고 임하는 티아를 보면서, 나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임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돌아보기도 했다.
패션은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왜 그런 겉치레와 허세에 의지해야할까? 아직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꼭 나쁜 것일까? 마치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각각의 옷들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진입로가 된다. 옷이 나에게 그런 일을 해줄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이제는 그 또한 순진하나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것도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 어떤 것을 너무 원하면 그 욕망이 말그대로 이마에 네온사인처럼 새겨질 수 도 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다르게 살아도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 나는 남들보다 특별히 잘나지 않았고 모두가 원하는 그 상을 나만 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대고 내가 그 상들을 원한다고 말하거나 가장 예쁜 드레스를 꺼내입고 매혹적인 미소를 흘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 어떻게든 헤치고 나가 앞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의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실 제목만 봐선 그렇게 끌리지 않았지만, 나의 독서 스펙트럼을 더 넓혀준 책. 원제 <Food Whore(음식을 위해 뭐든 할 사람)>이 이 모든 스토리를 한마디로 정리해준다. 적어도 선입견으로 책을 다시 집지 말아야겠다는 걸 내게 알려준 책. 특히, 사회 초년생이라면 더 흥미롭게 읽힐만한 책인 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