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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린 Feb 13. 2019

처음으로 회사에 가기 싫어졌다.

내가 나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의 무게란

어제저녁, 집에서 남편과 이야기하다 내 웃음소리가 새삼 어색하게 들렸다. 내가 오늘 하루 웃은 적이 있던가.


"어? 오빠, 나 오늘 처음 웃은 거 같아."


유독 회의가 긴 날이었다. 이런저런 이슈로 자료를 만들고 회의를 반복하면서 너무 신경을 쓴 탓에 다 내려놓고 싶었던 날이었다. 그날 저녁, 내가 회사에서 한 번도 웃은 적도 없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갑자기 나 자신이 측은해졌다.


"나 너무 힘들어." 한국에 돌아온 지 어언 1년 만에, 그리고 직장에 들어간 지 9개월을 막 앞둔 지금, 처음으로 내뱉었다. 힘들다고. 처음으로 월요병이 생겼고, 아아, 처음으로 회사에 가기 싫어졌다.


여러 부서 간의 의견 조율과 고객사 요청사항에 대한 대응, 그리고 프로젝트에 대한 개발 현황과 이슈들을 챙기고 보고해야 하는 초보 PM(Project Manager)으로서, 나는 매일같이 새로운 문제에 부딪쳤다. 6개의 프로젝트를 담당하면서, 어쩜 그렇게 매일 이슈가 생기고 매일 부서 간 협의가 되지 않아 회의를 소집해야 하는지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좋았다. 적어도 이 일에 만족스러웠고, 해결방법을 몰라 끙끙거릴 때도 늘 조언해주고 도와주는 선배들이 있어서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었다. 의견 차가 커서 혹은 대책이 없어서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문제들도, 어떻게든 늘 해결이 되었다. 일하면서 무례한 상사도 만나고 협조하지 않는 동료도 있었지만, <원래 나쁜 사람은 없다. 자리가, 일이 그렇게 만들 뿐>이란 말을 믿으며 끈기 있게 웃으며 상대를 대했다. 이미 회사를 오래 다닌 사람들은 그게 어디 쉽냐고 했지만, 오랜만에 회사생활을 시작한 나에겐 일종의 주문이었고, 다행히 믿는 대로 일이 풀리기도 했다. 내가 회사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니 일과 회사생활이 이렇게 기분 좋을 수 있구나 득도한 사람처럼 무릎을 치기도 했고, 매일 꾸역꾸역 회사에 몸을 쑤셔 넣는 직장인 친구들도 나처럼 상쾌하게 아침을 맞길 바라며 아침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런 내가 갑자기 방전된 사람처럼 웃음기를 잃었다. 길었던 이번 설 연휴 다음부터, 그러니까 저번 주 금요일부터였다. 언제나 주말과 연휴를 보내고 나서는 에너지를 다시 충전하고 출근하는 나였다. 비단 이번 직장에서만이 아니라, 전 직장에서도 난 항상 주말이나 휴가를 보내고 나선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모든 사람들이 '제 일이 더 급하다'며 앞다투어 내게 일거리를 주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야속했다. 아니, 사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처리하겠다만, 누가 할지 모르는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일이라며 다 PM에게 던지는 일감들이 새삼 무겁게 느껴졌다. 모두가 날 주저앉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 모든 걸 그동안 잊고 지냈던 게 아니었을까.

힘든 건, 역시 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일이 많으면 혼자 욕하면서도 꾸역꾸역 다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좀 다른 문제다. 특히 일에 사람이 끼는 순간, 나는 그 사람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뒤에 있는 팀을 대하는 것과 같았다. 업무에 따라 다르지만, 그와 개인적으로 풀 수 있는 문제보다는 그 팀과의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여러 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결론을 도출시킬 수 있을 때까지 거듭된 회의를 거쳐 최종 공지하는 것까지 이 모두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사람을 좋아한다고 자부해왔던 내가 결국 사람에 무너졌다. 전 직장에서도 사람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했으면서, 겨우 1년 남짓한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그것도 감당할 수 있다며 자신했다. 여행 중 수시로 떠올렸던 직장생활은 정말 내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도 꽤 적성에 맞았고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왜 더 꼼꼼하게 챙기지 못했을지, 왜 더 싹싹하게 다가가지 못했는지 도리어 아쉬움이 남을 정도였다. 한 발짝 떨어져 보았을 때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하며, 나는 다시 입을 앙다물며 이 시기를 잘 이겨내자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잠깐 넘어지긴 했지만, 툭 털고 다시 일어나 한 발짝씩 내디뎌본다. 여행 전과 여행 후, 나는 여전히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안갯속을 걷고 있지만, 적어도 오늘을, 내 하루를, 내 인생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확실히 알았으니까.




그렇게 마음먹은 오늘 아침, 참 우연히도 몇 달 전 요즘처럼 마음이 답답한 날 다이어리에 적었던 페이지를 발견했다. 내 프로젝트에 또 이슈가 터졌고, 어떻게 대책을 마련하고 유관부서와의 협의를 이끌어내야 하는지 감이 안 왔던 때였다. 혼자 나름대로 고민처럼 끄적이고, 내가 나에게 전하는 위로처럼 남겨뒀던 페이지를 오늘 아침 선물처럼,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그 페이지는 내가 썼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새삼 내게 큰 위로의 말로 다가왔다.


<내가 나에게 전하는 메시지>

서로 다른 부서 간의 이해관계를 이해하자. 이미 알고 있듯, 나쁜 사람은 없다. 다만 자리가, 부서가, 맡은 일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니라며 남 탓하지 말자. 내 일에 대한 해명도, 남 탓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누굴 탓하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나한테 왜 그럴까"하며 피해의식에 젖어있는 PM이 되지 말자.

지금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10년 뒤의 내 모습을 만든다는 걸 기억하자. 지금 내 마음가짐과 내 표정이 10년 뒤에도 같다면, 나는 지금 무슨 마음으로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혼돈 속에서 단순함을 찾고, 불협화음 속에서 조화를 찾고, 고난의 한 복판에 기회가 있음"을 기억하라. 리스크가 많은 상황일수록 더 차분하게 상황을 들여다보자. 답은 항상 있다. 베테랑 PM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아마추어처럼 답답하다고 징징대지 말자.

나만 힘든 게 아니고,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항상, 언제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어날 일인데, 겨우 이따위 일로 주저앉을 것인가.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생각하자.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 생각을 실생활에서 적용하지 어려운 거라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내가 적은 것처럼 생각하고 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쩜 저 모든 걸 다 지킨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초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누군가 건네준 말보다 내가 나에게 건네는 글귀의 무게가 사뭇 다르다. 내일 아침 출근길, 나의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워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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