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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린 Nov 10. 2018

금요일 저녁, 이슈가 터졌다.

역시 직장생활은 매일매일 부딪치며 배워가는 맛..

어제 첫 야근을 했다. 우리 회사는 칼퇴 문화가 잘 자리잡혀 있어, 개발자들을 제외하곤 야근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아직 정리할 게 남아 7시까지도 남아있으면 "왜 안가고 있어, 얼른 집에가고 내일 해"라며 보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한다. 이런 분위기인데, 어제는 하필 금요일에 이슈가 터져 하루종일 회의에 메일을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End user에게 판매 완료된 차량 110대를 제외한 222대에 대하여 수정된 젠더 케이블 및 24P conn을 전면 교체하는 Rework을 진행하기로 협의 완료 되었습니다. 차주 화요일부터 엔지니어 현지 출장 대응 예정입니다."

이슈가 발생했을 때 PM의 역할은 유관 부서와 빠르게 회의를 소집해, 현황과 심각성을 파악하고 각 부서에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 대응책을 도출해 내도록 유도한다. 협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모든 부서에 내용을 공유하고, 이슈 해결이 될때까지 각 부서에서 잘 대응하고 있는지, 고객사의 입장에 따라 상황이 바뀌지는 않았는지 지속적으로 체크해야 한다. 회의를 몇 차례 했음에도 현지 상황이 좋지 않아 이슈가 더 커졌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했다. 특정 부서의 귀책을 따지고 일방적으로 대응하는 방향으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슈를 해결하는데 각 부서의 협조가 절실했지만, 부서간 이해관계가 부딪치면서 해결책을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빠르게 현지에서 대응할 출장자를 결정하고 대책서를 업데이트하여 고객 대응을 하기로 했다. 

"책임님, 이렇게 이슈를 정리하긴 했는데, 고객사에서 또 어떻게 나올지, 어떻게 이슈를 해결해야 할지 막막해요." 



여러 부서들 사이에 치여 어쩔 줄 몰라하는 내게, 우리 팀 책임님은 차분히 말해주셨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아요. 위에서도 **씨보고 직접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이슈가 생기면 유관 부서 모아 회의하고, 지금 현황과 대책을 그대로 유관부서와 윗 사람들에게 Noti만 잘해줘도, PM으로서는 잘하는거에요. 그렇게 계속 공유하고 노티하면, 문제는 해결되게 되어있어요." 


(우리 책임님은 정말 이렇게 사원 나부랭이인 내게 항상 존칭을 써가며 말해주신다ㅠㅠ 쏘 스윗..)



그렇게 책임님 한마디에 또 멘탈을 부여잡고, 연구소장님께 이슈를 보고하는 메일을 썼다 지웠다 하며 겨우 보내고 퇴근했다. 나는 여전히 '문송'한

 문과생이라 24P 커넥터가 어쩌고 BOM상에 PCB 품번이 어쩌고 젠더 케이블에 아날로그 라인이 어쩌고 하는 회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아직 버겁다. 전 직장에서도 다이캐스팅이 어쩌고 금형 원재료에 따라 다르다는 걸 듣고 배우면서, 버겁다고 생각했다.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고, 나는 해도 안될 거라 생각했다. 내가 할 줄 아는 걸 다시 찾아 나서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 내가 지금 또 자동차 부품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이번엔 전자업계라 전 직장에서 그나마 배웠던 것들과도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다만, 내 마음가짐이 조금 바뀌었다고 할까. 그전엔 해도 안될 것 같았는데, 해도 안되는 건 내 마음이었다. 예전보다 나는 일을 배우는 데 있어 조금 더 적극적이다. SMT친 PCB 용어는 아직도 모르지만, 대신 세트를 들고 개발자 분들을 찾아가 직접 물어보기도 하고, 이해가 될때까지 물어보고 적어가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문득, 전 직장에서도 이렇게만 했으면, 내 회사 생활이 좀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 모니터만 들여다보며 난 모른다고만 하지 말고, 아무나 붙잡고 좀 많이 물어볼걸. 그땐 그렇게 물어보는 게 뭐 그리 부끄럽다고, 내가 자꾸 물어보면 귀찮아하시는 게 아닐까 눈치보며 몸을 사렸을까.


요즘 나는 내 회사 생활에 대해, 내 업무에 대해 꽤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 매일매일 처음 해보는 업무, 처음 듣는 용어가 아직도 한 가득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배울 게 많다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처음 입사하자마자는 PV단계만 진행하는 파생 프로젝트 위주로 맡았지만, 이젠 어느덧 하나의 플랫폼 담당 PM으로, 큼직큼직한 프로젝트들을 어찌어찌 힘들게 끌고가고 있다. 매일매일 이슈의 연속이지만, 당황하지말고 모르면 물어가며 배워나가자. 어차피 지금 내게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문제를 그때그때 공유하고 문제를 해결해갈때마다 혹은 부서간 커뮤니케이션 할 때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조금더 고민하며 다가가자. 그냥 문제에 부딪치고 넘길 게 아니라, 내가 오늘 무엇을 배웠고 내일은 어떻게 더 발전시켜나갈지 고민하면서 일하자. 지금까지는 오늘 해야할일만 기록하며 챙겼지만, 그로 인해 오늘 무엇을 배웠는지 업무일지를 적어나가야겠다. 


야근했는데 이상하게 뿌듯한 사원 나부랭이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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