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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린 Oct 31. 2019

사람을 좋아하지만 사람때문에 무너지는 나, 비정상인가요

나는 내 일이 나한테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심리검사나 자기소개를 할 때 나는 늘 혼자 하는 것 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고 말한다. 혼자 일하는 것보다는 함께 일하는 걸 좋아하는데다, 실제 업무의 반 이상이 타 부서들과 회의하면서 소통해야하는 업무가 꽤 적성에 맞았다. 아직 경험은 부족하지만 이슈가 생기면 가장 앞에 나서서 해결하고 리드해야 하는 포지션인지라, 어렵고 힘든만큼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고 PM(Project Manager)으로서의 비전을 그리면서 더 잘해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힘든 것도 역시 사람 때문이었다.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무색하게, 나는 때때로 사람 때문에 무너졌다. '나한테 정말 이 일이 맞는 것일까', '내가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고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에게 자꾸만 되묻는 일이 많아졌다. 결국, 일보다는 사람이었다. 


"아니, 이거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결할거에요?"

당연한 거지만 이슈가 터지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PM을 찾았다. 어쩜 이렇게 매일 새로운 이슈가 터지는지, 매번 새로운 이슈니 매번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막막했다. 어떻게 할거냐며 나를 몰아세우면 나 역시 머리를 싸매느라 조바심이 났고 자연히 스트레스로 이어졌다. 이미 터진 일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었다. 이미 터진 이슈를 '어떻게' 잘 여밀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팀장님 말씀처럼 PM은 일을 어떻게든 '되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나 혼자 고민하고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혼자 하는 일이면 좋았을 것을, 나 혼자 결정 할 수 없고 대부분의 의사결정들은 유관 부서들을 소집해 합의안을 도출해 추진해야 했다. 가장 빠른 일정으로, 최대한 많은 부서가 힘들지 않은 선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모두에게 평화로운 방안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부서가 관여되는 만큼 그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방안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문제 해결을 위해 결국 누군가는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부서간 의견이 충돌되는 경우는 서로의 입장이 분명한지라, 그 중간지점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서로 상충할 수 밖에 없는 개발과 품질, 영업, 서비스 부서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건, 아직도 내게 큰 숙제로 남아있다. 아직 리더십이나 경험이 부족해서기도 하겠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역시 프로젝트 매니저는 Knowledge나 Skill보다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나 리더십과 같이 사람의 성향과 역량에 더 크게 좌우할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잘 안풀리면 '역시 내가 부족한 탓인가' 하며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하고, 순간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느라 빈 회의실 창문 너머를 한참 바라보면서 흥분을 가라앉히기도 하고, 화장실에 가서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최근엔 내가 사람들과 일하는 것보다는 혼자 일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한번 꽂히면 몇 시간이고 집중해서 만들어내는 걸 좋아하는데, 이는 나의 성취욕구와도 관련이 있다. 혼자 문서작업하고 일하면, 적어도 사람 스트레스는 없지않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예산을 짜거나 발표 자료를 만드는 등 엄청난 시간을 들여 문서를 만드는 것을 꽤 좋아했다. 이쯤 되니, 나는 어떤 걸 좋아하는 사람인지 혼란스럽기 시작한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사람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기도 한다. 사람들과 활동적으로 일하는 걸 좋아하지만,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고 나 혼자만 열심히 노력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작업을 선호하기도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아마 회사생활을 계속하면서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해가면서 좀더 분명해지지 않을까.


결국 나는 일상에서 나를 잃고싶지는 않다. 그 누구의 일상이 힘들지 않을 수 있겠냐만은, 이런 상황에서도 툴툴 털고 일어나야한다. 일과 삶, 그리고 나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어쩌면 갑자기 찾아온 번아웃처럼 내 균형이 깨지려고 하니, 이제서야 다시 나 스스로에게 찬물 끼얹듯 정신이 또렷해진다. 다시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일로 자책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프로 PM이라면 어떻게 해결했을까 가만히 떠올려본다. 결코 나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스트레스 받지 않을 것이다. 당황하지 않고 지금 당장 검토할만한 몇 가지 안을 떠올려보고, 객관적으로 유관부서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최적안이 무엇일지 결단 내려줄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내게 그런 리더십을 바라는데, 내가 지레 겁먹고 스트레스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걸 다 쏟아내고 나서 텅 빈 상태로 다시 시작해보기로 한다. 내가 그리는 PM은 스트레스 받으면서 어깨 축 쳐져 있는 모습이 아니니까. 다시, 사람을 믿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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