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 일간 수필집>을 읽고
책을 읽으면서 한 사람이 얼마나 다양하고 입체적일 수 있는지 생각했다. 6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이슬아,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가족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2주간 읽으면서, 그녀가 얼마나 다양한 매력을 지녔는지, 그리고 얼마나 다채로운 매력과 이야기를 가진 사람인지 떠올렸다. 한 사람과 그를 둘러싼 이야기가 이토록 두꺼운 책 한 권으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다가, 이내 우리 개개인이 모두 책이라는 생각에 금세 수긍한다. 어쩌면 내가 놀란 건 그녀와 지인들의 이야기 그 자체가 아니라, 이슬아만의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그녀의 관찰력과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만날 준비가 얼마나 되어있나.
우리 일상에 남이 앉을 자리라는 것은 얼마큼인가.
만나서 마주앉아 이야기해도 진짜로는 안 만나지는 만남도 많은 것 같았다.
누구의 마음에나 용량의 제한이 있고 체력의 한계도 있고
관계말고도 애써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슬아의 모든 글에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무심하게 툭툭 묻혀 있었다. 친구와 시답잖은 농담을 하는 자리에서도, 자신은 겪어보지 않았지만 부모에게 들었음직한 타지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갈 때도, 그녀의 눈은 끊임없이 사람을 향해 있었고, 그 눈빛은 절대 냉소적이지 않고 따뜻했다. 책을 사이로 둔 다른 시공간에 있는 나에게도, 그 따스함이 전해질 정도였다. 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이 이렇게 따뜻할 수도 있구나, 라는 걸 이슬아의 글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동시에 나 자신은 얼마나 입체적인 사람일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들었고, 나의 주변 사람들을 그저 가만히 눈으로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더 따뜻하게 보일 수 있다는 걸 새로이 깨달았다. 특히 단순하고 따분하다고 믿어왔을 법한 한 인간의 삶이, 다른 사람들 하나하나를 만나면서 프리즘 통과하듯 무수한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참 흥미로웠다. 어쩌면 그게 이슬아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서평’이라고 하지만 정작 저자 이슬아 자체를 논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책 자체가 지극히 개인적인 그녀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녀의 시선으로 하여금 나의 세상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매력을 분명 알고 있다. 그 작은 체구에 자신감이 넘쳐 내가 위축될 정도였다.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 한 꼭지를 쓰기 위해 수없이 들여다봤을 자기 자신.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내가 모르고 지나친 나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싶어 졌다. 내가 나를 잘 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멋진 일이며 절로 자존감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거니까.
나는 찬이에게 고마워졌다. 그가 기쁜 일을 만들었기 때문에.
또한 내가 그의 기쁨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해주었기 때문에.
그것은 자신에게 영혼을 되돌려주는 일이기도 하다고 아까의 그 책은 말했다.
타인의 슬픔을 슬픔으로, 타인의 기쁨을 기쁨으로 느끼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게된다면 그건 영혼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일이랬다.
내가 좋아하는 책의 기준은 책을 읽으면서 그 사람만 보이는 책이 아니라, 그 너머의 생각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드러나는 책이다. 그래서 나로 하여금 중간중간 책을 덮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을 좋아한다. 이슬아의 대부분의 글에는 타인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녀 자신에 대한 성찰이 주를 이루었다. 그녀는 자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아웃풋’의 양이 많기 때문에, 끊임없이 책과 같이 남의 이야기를 ‘인풋’하여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녀의 타인을 향한 호기심 어린 사랑이 ‘인풋’이 되어 그녀로 하여금 그녀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아웃풋’이 되어 나오는 과정이 보였다. 그만큼 그녀는 타인을 통해 자신을 다시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타인에 관해 이렇게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가에 놀라면서, 동시에 나는 타인에게 이토록 관심을 가질 줄 아는 사람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책을 펼칠 때만 하더라도 지극히 개인적인 누군가의 일기장을 들여다본 느낌이었는데, 다 읽고 난 지금은 그녀의 삶에 푹 담갔다 나온 기분이다. 그녀의 글을 읽는 내내,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니더라도, 꾸준히 자신을 단련하고 돌아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게 글이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