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모임에 가는 이유?
나는 따라쟁이다. 자신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물들어 곧잘 따라하곤 한다.
열 살 무렵 학교에서 붓글씨를 써 본 적이 있다. 화선지에 먹물을 떨어뜨리면 금세 차르륵 퍼져 나가곤 했다. 쉬이 물들어가는 모습이 나랑 많이 닮았다.
그런 내게 글 모임은 고마운 배움터이다. 각자의 색깔대로 멋지게 살아가는 동료들을 만나며 내 삶도 알록달록 물들어가니까.
정갈한 전 선생님을 보면 선생님 집의 잘 정돈된 베란다가 떠오른다. 햇살 가득한 그곳엔 맨들맨들 윤이 나는 항아리가 가득했다. 삼 형제 잘 키워낸 삶의 지혜가 그 안에 소복해서일까? 쓰는 글마다 감동이고, 다음 이야깃거리는 무엇일지 늘 기대하게 된다.
미소가 고운 최 선생님을 작은 도서관에서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똑 닮은 네 살 배기 손녀의 손을 잡고, 방긋 웃으며 서가 여기저기를 둘러봤었다. 어린 손주들을 돌보다 생긴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면 듣는 사람까지 행복해진다. 선생님처럼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
논술 강사로 단단하게 자리매김한 동갑내기 이 선생님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선생님이 수업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선생님이 더 신났는데? 저렇게 신나게 가르치는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참 행복하겠다.’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까지 하니 참 부럽다.
이렇게 멋진 선생님들을 만나게 해 준 박 선생님은 대단한 기획자이다. 작은 싹을 놓치지 않고, 활짝 꽃 피울 수 있도록 물 뿌리고 거름 주는 능력이 탁월하다. 좀처럼 교집합을 찾기 힘든 우리를 ‘글쓰기’라는 연결고리로 맺어준 고마운 사람이다.
“글 모임에 가는 이유가 뭔가요?” 내게 묻는다면, 주저 없이 글 모임 동료들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쉰셋에 만난 최고의 인연인 동료들이 보고 싶어서 가고, 그들의 멋진 삶에 물들고 싶어서 간다.
작년 여름, 작은 도서관 글쓰기 수업을 통해 처음 만난 우리다. 그 당시 나는, 어릴 적부터 시작해 대학까지도 꾸준히 써오던 일기 쓰기마저 그만둔 상태였다.
“일기를 쓰면 자꾸 더 우울해져.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 같아. 일기 따윈 쓰지 않을 거야.”
지나친 자아성찰이 독이 되었나 보다. 일기를 쓰며 에너지를 얻기는커녕 자꾸 침잠하던 시기가 꽤 길었다. 그 후론 간간히 육아일기를 쓰는 것 외에는 내 삶에서 일기, 혹은 글쓰기는 지워진 페이지가 되었다.
그런데 글 모임을 시작하면서 글쓰기가 더는 우울하지 않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쓰면서 내가 얼마나 사랑받으며 성장했는지 깨달았다. 가족과의 일상 이야기를 쓰면서는 함께하는 현재에 감사하게 되었다. 동료들의 글을 읽으며 ‘우와!’ 소리 내어 감탄하는 일이 많아졌다. 글을 쓰면서 조금은 달라질 미래를 꿈꾸게도 되었다.
수요일 오전 11시, 새 화선지를 펼칠 시간이다. 어렵게 시작한 글쓰기가 지속되기를 바라며, 고운 빛깔로 서로에게 사부작사부작 물들어가는 우리이길 바라며, 오늘도 글 모임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