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바라기 Apr 18. 2024

대화가 필요해

지난 주말에 시댁 모임에 다녀왔다. 잠실로 이사를 한 큰집의 집들이를 겸한 모임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쳐 그간 자주 만나지 못한 터였다. 그 사이 아주버님은 정년퇴직을 하고, 형님은 명예퇴직을 하는 등 여러 변화가 있었다. 오랜만에 사 형제 부부까지 모두 모이니 시끌벅적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예약한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다시 큰집으로 갔다. 형제들은 거실 소파에 앉고, 동서들은 식탁 앞에 모여 앉았다. 웬만하면 다함께 앉으련만 시댁에서의 오랜 습관 때문인지, 동서들끼리 편히 대화하고 싶어서인지 나누어 앉았다. 아이들 군대 얘기며 대학 얘기, 재취업을 한 큰동서의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특히 우리 남편의 모습이 놀라웠다. ‘저 사람이 원래 저렇게 말이 많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수다스럽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보통 금요일 저녁에 집으로 와서 일요일 저녁에 지방으로 내려가는 남편이다. 일주일 중에 이박삼일을 함께 지내는 셈인데, 길게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 생각해보니 최근 한 달 사이에 우리가 나눈 대화의 총량보다도 오늘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이 원래 말이 많았나?’라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좀 애매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선택적 수다가 가능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어색한 자리에서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지만, 마음 편한 모임에서는 이야기를 줄줄 쏟아내는 사람이니까. 돌이켜보니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는 그나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살았던 것 같다. 주로 딸이 어땠고, 아들은 어땠다는 식의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남편이 지방근무를 시작하면서는 주로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잘 일어났느냐는 안부로 시작해서 잘 자라는 밤 인사까지, 제법 다정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너무 길어졌나 보다. 어느새 우리는 카톡으로 말다툼을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일방적인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과음하지 말라, 과속하지 말라, 설마 또 담배 피우는 건 아니지?……. 끝도 없는 나의 말은 ‘네, 알겠습니다.’라는 영혼 없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대화가 필요해’라는 철지난 개그 프로그램이 있다. 경상도 출신의 아버지와 가족들의 식사시간을 소재로 한 개그였다. 말 한마디 없이 식사를 하다가 누가 한마디라도 할라치면 버럭 성을 내며 ‘밥 묵자’를 외치는 아버지의 모습이 폭소를 자아냈다. 지금, 우리 가족의 식사 시간은 어떤가? 죽이 잘 맞는 딸과 아들은 자기들끼리 끊임없이 쫑알거리며 식사를 한다. 나는 가족들 챙기며 분주히 오가느라 대화에 낄 틈이 별로 없다. 먹는 데 진심인 남편은 식사에만 몰두하는 편이다. 간간히 아이들의 대화에 말을 얹기도 하지만 왠지 겉도는 느낌이다. 


벚꽃 피는 날 석촌호수에서 만날 약속을 뒤로하고 집으로 오는 길, 남편이 말을 건다. 

“동서들 만나서 수다 떠니까 스트레스가 좀 풀려?”

“응, 다들 보니까 좋네.”

기분 좋게 몇 마디 더 주고받았지만 운전 중이라 긴 대화는 못했다. 얼마지 않아 싸한 느낌이 들어 흘낏 보니 남편은 그새 꾸벅꾸벅 졸고 있다. 오랜만의 폭풍 수다에 꽤나 피곤했나 보다. 가족끼리 대화를 많이 해야 서로 신뢰가 깊어지며 유대감이 강화된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부부는 참 많~은 대화가 필요해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이 오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