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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바라기 May 06. 2024

자전거 여행

아빠, 손 놓지 마. 꼭!

오월의 열차 안은 황금연휴를 환호하는 들뜬 숨결로 가득하다. 해맑게 웃는 아이들, 놓칠세라 손을 꼭 잡은 젊은 부모 모두 상기된 표정이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뵈러 나선 길이라 내 마음도 적잖이 들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늦봄의 푸름에 넋을 놓다가 가져온 책을 꺼내 들었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 자전거를 타고 세상 속으로 저어간 여행기가 담담하면서도 깊다. 가을이 무르익은 태백산 어디쯤의 내리막길에서 자전거 후미등이 깨졌다. 작가는 급한 대로 손전등을 켜서 배낭 위에 매달고 밤길을 달렸다고 한다. 깜박깜박 위태로웠을 그 불빛을 따라 헛둘헛둘 나도 모르게 발을 굴렀다.


“아빠, 손 놓지 마. 꼭!”

몇 번씩 다짐을 하고 약속을 받았지만 아버지는 눈치껏 손을 떼셨고, 어린 나는 비틀거렸다. 철퍼덕, 자전거와 함께 넘어질라치면 내 비명보다 먼저 주변의 장탄식이 들렸다.

“아이고, 아프겄다. 살살해라이.”

마을회관 앞마당에 줄줄이 앉아 구경하시던 동네 할머니들이 혀를 차며 훈수를 두시는 게다. 동네의 육 학년짜리들이 죄다 나와 자전거 연습을 하던 매해 여름이 심심치는 않으셨나 보다.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던 나는 육 학년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자전거 타는 연습을 시작했다.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가려면 자전거가 가장 유용한 이동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자전거 짐받이를 붙잡으셨고, 나는 겁에 질린 채 자전거 바퀴를 굴렸다.

여름 땡볕에 구슬땀을 흘려가며 보낸 덕에 금세 자전거 타는 일이 익숙해졌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중고등학교 육 년을 잘 다녔다. 학교까지는 자전거를 타고도 족히 반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잔뜩 긴장하고 달렸지만, 나중엔 숫제 양손을 놓고 달리는 객기도 부렸다. 누가 더 오래 손을 뗄 수 있나 친구들과 내기까지 했으니, 참말로 아찔한 사춘기였다.

신록의 가로수 길을 달리며 달콤한 감성에 취하기도 했다. 예고 없이 소나기가 내린 한여름 하굣길엔 쉬어갈 생각도 못하고 비를 쫄딱 맞으며 달리기도 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린 겨울에는 만원 버스에 겨우 끼어 가며 마당에 두고 온 자전거가 못내 아쉬웠다. 생각해 보니 내 사춘기는 자전거와 함께 덜컹거리며 지냈나 보다.


한참 회상에 잠겨있다 보니 어느새 정읍역이다. 부지런히 택시를 타고 부모님 집에 도착해서 보니 앞마당 차고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버지께서는 재작년에 허리 수술을 한 후로 차를 처분하고 면허까지 반납하셨다. 그 바람에 차고는 텅 비어 있었는데, 지금은 전동차가 덮개를 뒤집어쓴 채 덩그러니 놓여 있다. 자전거 대신 타겠다며 구입했지만 생각보다 불편한지 방치되어 있는 중이다. 그 옆에는 녹슨 자전거도 함께 기울어져 있다.

젊어서는 어린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고, 은퇴 후엔 친구들과 자전거 타는 낙으로 사셨다. 그런 아버지의 먼지 낀 차고를 보니 애잔한 마음이 든다. 함께 자전거 타던 친구들은 아프거나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더는 자전거 타기가 어려우신 형편이다. 어린 나도 그립고, 젊은 아버지도 그립다. 하지만 언제나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 하지 않던가. 자전거가 안 되면 쉬엄쉬엄 걸어서라도 함께 오월의 푸른 산야를 둘러보리라.

“아빠, 엄마! 저 왔어요.”

쉰이 넘은 나이지만 열대여섯의 그날처럼 호들갑스럽게 문턱을 넘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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