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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치 Jan 29. 2024

나의 온도

점직하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표준국어대사전


지난주 3박 4일 여행을 다녀오고,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엔 동생 결혼식이 있었다.
여행과 가족행사로 겹친 피로를
몰아서 풀 수 있는 일요일이었다.
적당히 늦잠을 자고 일어난 폭신한 일요일이었다.
집에서 tv를 켜놓고 방송 프로그램을 보다가,
각자 휴대폰도 하다가, 도란거리기도 하다가,
같이 혹은 각자 무언가 먹기도 하며
잔잔한 물결 같은 평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다음 달 이사를 앞두고
안 쓰는 물건을 정리해야겠다 싶었다.
당근에 무료 나눔을 올리자마자 쏟아진 메시지 중
먼저 연락 온 분과 약속을 잡고 있었다.


남편이 심심했는지,
"콘치랑 놀고 싶어!"라며 애교 섞인 말로
장난을 건넸다.
나는 이거 하는 중이었어-라는 뜻으로
"나 지금 당근에 안 쓰는 물건 올리고 있었어."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아, 그래?"라고 답했고,
대화가 끝이 났다.
'나 이거 하고 있어서 못 놀아.'라는 뜻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전달된 것 같아 잠시 당황하고,
이내 하던 것에 다시 빨려들어가버렸다.



이것이 바로 나의 문제다. 나의 고질적인 문제.
무언가에 잘 빨려들어간다.
그리고 잘 빠져나오지 못한다.
집중력이 좋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결이다.
무언가에 빨려들어가버리면
잠시 끊고 어떤 대화나 다른 일로 전환을 해야 하는 때에도 끊기가 어렵다.
남편이랑 있을 때만큼은
남편이 하는 이야기로 한걸음에 빠져나오고 싶다.


내가 무언가 집중을 하던 상황에서
남편이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면

".... 어? .. 어.. 그러게.."

누가 봐도 다른 생각하다 못 들어서
대-충 알아듣는 척하는듯한 말로
머무적거리며 대답을 한다.
그러고 나면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공기를 읽게 된다.
'차라리 못 들었다고 이야기하고 다시 성의 있게 들을걸.'
후회가 듦과 동시에
어느새 나도 모르게, 정말 나도 모르게
원래 머물고 있던 것으로 빨려들어간다.
내가 그래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때는
그것에 대한 흥미가 다- 한 뒤나
그 일을 완수한 후이다.
그땐 본격적으로 안타깝지만 너무 늦어버린 때이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자주 서운할 것이다.


이런 나의 모습이 무례하고 거리감 느껴질듯한데,
무언가에 빨려 들어간 상태에서
내 스스로 그 집중의 탄성을 끊어내야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나의 의식을 어디에 놓고 온 것만 같아 멍한 상태랄까.


늘 나의 모든 것을 받아주는 남편이라
나도 최선의 것을 주고 싶어 매번 다짐하는데,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수준조차도 낮은 아내라 미안하다. 나에게 정이 떨어져 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나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나의 흥미 혹은 미련의 블랙홀에서 가뿐히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길 자유롭게 할 수 있을지.


그렇게 성심성의껏 메세지에 응답해주느라
정작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소홀했음에
내 자신이 용납이 되지 않는,
마음이 천근만근인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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